주간동아 732

2010.04.20

욕구불만 세상 행복한 표류기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공기인형’

  • 강유정 문학평론가·국문학 박사 noxkang@hanmail.net

    입력2010-04-15 10: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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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욕구불만 세상 행복한 표류기

    ‘공기인형’은 관계맺기에 실패한 인간 군상의 외로움을 다룬다.

    ‘공기인형’은 예쁜 이름과 달리 남성의 성욕 배출을 위해 만들어진 섹스기구를 뜻한다. 간혹 코미디 영화에서 보았던 희극적이면서도 그로테스크한 그 인형 말이다. 배두나 주연의 영화 ‘공기인형’은 이 에어돌에 대한 이야기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공기인형’은 “과연 어떤 사람들이 에어돌을 사용할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한다. 에어돌의 주인 히데오는 에어돌을 ‘노조미’라고 부르며 애인처럼 대한다. 직장에서 있었던 일, 화가 난 일을 노조미에게 털어놓고, 머리를 감겨주고 목욕을 시킨다. 히데오에게 노조미는 성욕을 배출하는 기구이면서 유일한 대화 상대다.

    ‘공기인형’에 등장하는 인물은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되지 못하는 외로운 사람들이다. 그들은 사람들과 제대로 관계를 맺지 못하는 데서 오는 외로움을 나름의 방식으로 해결해나간다. 중년 부인은 뉴스 사회면에 나오는 범죄 기사에 집착하고, 젊은 독신여성은 먹고 토하기를 반복하며 집 안에 갇혀 지낸다. 매일 볕바라기를 하는 노인, 여성의 뒷모습을 훔쳐보며 자위행위를 하는 남학생 등은 외로움을 만성적 질병처럼 안고 지내는 이들이다. 노조미는 섬처럼 외따로 떨어진 그들 사이를 자유롭게 유영한다.

    중요한 것은 체온이 없는 노조미가 그들 가운데서 가장 생기발랄해 보인다는 사실이다. 더군다나 어느 날 갑자기 노조미는 ‘마음’까지 갖게 된다. 비디오 대여점에서 우연히 본 직원 준이치에게 반해버린 것이다. 노조미는 갓 태어난 아이처럼 말을 배우고 사람들의 행동을 따라하며 점차 인간처럼 행동하려고 한다. 배울 것이 산더미처럼 쌓인 이 세상은 무척 신나고 즐거운 놀이터다. 무엇보다 그에게는 사랑하는 사람까지 있지 않은가.

    그러던 어느 날, 날카로운 모서리에 찔려 노조미의 공기가 죄다 빠져나가는 사건이 발생한다. 준이치는 노조미의 몸속에 입김을 불어넣어 다시 공기를 채워준다. 사랑하는 사람의 입김이 닿은 노조미는 자신을 만들어준 제작자를 찾아가 감사를 표한다.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줘서 무척 감사하다고. 이 아름다운 세상을 경험하게 해줘서 고맙다고. 그렇다면 과연 진짜 인간을 향한 공기인형의 사랑은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한 고레에다 감독의 대답은 잔인하고 잔혹하다.



    노조미의 사랑은 영화 속에 잠시 언급된 안데르센의 동화 ‘인어공주’를 떠올리게 한다. 인어공주는 왕자를 사랑해 말을 버리고 두 다리를 얻는다. 하지만 말을 잃은 공주는 사랑을 전하지 못하고 마침내 물방울로 사라지고 만다. 인어공주 역시 공기공주였던 셈. 그녀의 순수한 마음과 달리 준이치에게 노조미는 생명이 없는, 그래서 사람에게는 해서는 안 될 욕구를 채워줄 수 있는 인형에 불과하다.

    노조미는 햇빛, 유리구슬, 바람만으로도 행복을 느낀다. 하지만 사람들은 햇빛, 건강한 신체, ‘오늘’ 등 어느 것에도 기뻐하지 않는다. ‘공기인형’의 비극은 여기서 시작된 것이리라. 행복불감증. 어쩌면 우리는 행복과 사랑, 고통을 느끼는 에어돌보다 더 무미건조하고 생명력 없이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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