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32

2010.04.20

‘神도 가고 싶은 직장’ 아십니까?

한국거래소, 평균보수 1억 원에 최고의 복리후생 … 7년 만에 감사 방만 경영 여전

  •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입력2010-04-14 14: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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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神도 가고 싶은 직장’ 아십니까?
    공공기관들은 제각각 별명을 갖고 있다. ‘신의 직장’ ‘신도 못 가는 직장’ ‘신도 모르는 직장’…. 낮은 성과에도 안정된 정년과 고임금을 자랑하는 공공기관의 방만한 경영 행태를 빗댄 별명들이다. 3월 31일 감사원이 발표한 ‘증권거래제도 운영실태’ 감사결과에서도 이런 사실이 여실히 드러났다. 113쪽에 이르는 감사 보고서에 드러난 한국거래소는 ‘신의 직장’을 넘어 ‘신도 가고 싶은 직장’이었다.

    2009년 한국거래소 직원 1인당 평균보수는 1억여 원으로, 여타 금융공공기관과 비교해도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영업비용도 7200여만 원으로 역시 업계 최고. 한국거래소는 “실적이 높은 만큼 정당한 보상을 받았다. 돈을 많이 받은 것이 잘못은 아니다”라고 강변한다. 실제 2009년 한국거래소는 영업이익 3669억 원에 순이익 1945억 원을 기록했다. 2005년 주식회사 체제로 개편된 이후 최대 실적이다.

    일각에선 한국거래소가 개미들로부터 과도한 수수료를 받아 직원들만 돈 잔치를 벌인 것이 아니냐고 비판한다. 한국거래소는 주식과 선물거래 수수료가 주요 매출이다(예를 들어 증권거래 수수료=증권거래 금액×일정 수수료율). 거래 규모가 늘면서 해마다 천문학적 이익을 얻고 있다. 2009년 12월 금융위원회는 한국거래소 심의를 통해 수수료를 17.3% 인하하도록 결정했지만, 감사원은 줄일 수 있는 영업비용 128억 원과 누적 이익잉여금 운용수익(연평균 630억 원) 등을 수수료 책정에 반영하면 대폭 인하도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최고 수준의 보수에 대한 싸늘한 여론을 의식했는지 한국거래소는 직원 1인당 평균보수를 낮추기 위한 꼼수도 불사했다. 인건비에 포함해야 할 사항을 누락해 전체 인건비를 줄이거나 직원 수를 늘려 계산함으로써 직원 1인당 평균보수를 대폭 낮춘 것. 일반적으로 공공기관은 직원 보수를 공시할 때 연차수당과 시간외근무수당 같은 각종 수당은 물론 학자금, 상품권 등의 복리후생비용을 인건비에 포함해야 한다. 하지만 한국거래소는 2007년부터 2009년까지 연차수당과 시간외근무수당, 상품권 지급 등 66억~165억 원의 급여성 복리후생비를 임의로 누락했다.

    따가운 여론 의식 보수 낮추기 꼼수



    2009년도 직원 1인당 평균보수 산정 과정을 보면, 한국거래소는 위와 같은 방법으로 직원들의 총보수를 실제 예산 편성액(837억여 원)보다 165억 원 적은 672억여 원으로 산정했다. 직원 수는 2009년도 예산편성 시 적용한 720명이 아닌 737명을 기준으로 했다. 그 결과 직원 1인당 평균보수는 정당한 금액인 1억1600여만 원보다 2500만 원 적은 9100만 원이 됐다. 지난 2년간 실제 직원 1인당 평균보수는 1억900만 원에서 1억1600만 원으로 증가했음에도 이런 편법을 통해 오히려 1억 원에서 9100만 원으로 줄어든 것처럼 공시했다.

    복리후생 수준 역시 내로라하는 공기업들도 부러워할 정도다. 초·중학교에 다니는 자녀를 둔 직원은 학습지원비 명목으로 1인당 연간 120만 원에 달하는 사설학원비를 지원받는다. 대학생 자녀에게는 1인당 600만 원의 학자금이 무상 지원된다. 다른 금융공공기관의 사택지원 기준보다 1.5~2배 높은 아파트 사택을 제공하며 직원이 부담해야 할 사택관리비(연 총 1억여 원)까지 지원한다. 노동조합 창립일 등에는 매년 1인당 230만 원 정도의 상품권을 지급한다. 요양비로 1인당 연간 최대 4340만 원까지 지원 가능하고, 2008년 1인당 평균지원액이 200만 원을 초과했다.

    ‘神도 가고 싶은 직장’ 아십니까?

    감사원 감사 결과 한국거래소는 직원의 보수가 많고, 복리후생비용을 과다 지출하는 등 여전히 방만한 모습을 보인 것으로 드러났다.

    한편 상장제도 검토와 코스닥시장 매매시스템 프로그램을 관리, 운영하는 한국거래소 직원들이 차명계좌를 이용해 금융투자상품을 부당 매매한 사실까지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한국거래소 임직원은 급여액의 일정 부분을 증권저축하는 경우 외에는 자기의 계산으로 금융투자상품을 매매할 수 없다. 자기의 계산으로 금융투자상품을 매매하는 경우에도 ‘자기 명의’로 해야 하며, 월 20회를 초과해서는 안 된다.

    2007년 10월 29일 한국거래소 직원 A씨는 금융투자상품을 매매할 목적으로 친구 B씨의 명의로 증권저축이 아닌 위탁증권 계좌를 만들었다. 그리고 같은 해 11월 7일부터 이 계좌를 이용해 자기의 계산으로 637회에 걸쳐 5억8800만 원의 금융투자상품을 매매했다. 2009년 2월 4일 자본시장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같은 해 11월 13일까지 동일 계좌를 이용해 모두 244회에 걸쳐 2억9300만 원의 금융투자상품을 매매했다. 자기 명의로 계좌를 개설했으나 거래횟수가 월 20회를 초과한 직원도 있다. 임직원이 차명계좌를 개설한 뒤 휴대전화 등을 이용해 불법으로 주식을 매매하고 있는데도 한국거래소는 이를 점검하는 체계를 구축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 밖에 감사원은 △한국거래소 상장 추진에 따른 초과이윤 과소 산정 및 임직원에 과도한 상장차익 배분 우려 △주식워런트증권(ELW) 유동성 공급업무 평가 부적정성 △노동조합 전임자 과다 운용 등 노무 관리 부적정성 △상장법인에 대한 조회 공시업무 부당 처리 등을 지적하면서 이에 상응하는 조치를 한국거래소에 취할 것을 요구했다.

    “감사원 역작” 표적 감사 볼멘소리

    이에 대해 한국거래소는 “(감사원의) 심혈을 기울인 역작이 나왔다”는 말로 불편한 감정을 대신했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사실 이번 감사를 두고 전임 이사장을 찍어내기 위한 타깃형 감사라는 말이 무성하지 않았는가. 감사원이 지적한 부분은 이미 다른 감사를 통해 수차례 나왔던 부분이고, 거래소 자체적으로 시정해나가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는 2009년 10월 사임한 이정환 전 한국거래소 이사장을 두고 한 말이다. 2008년 초 취임한 이 전 이사장은 정권교체 후 산하기관장 물갈이 차원에서 직간접적으로 사퇴 압박을 받았다. 이 전 이사장이 이를 거부해 당국과 마찰을 빚자 한국거래소에 전방위적 압박이 들어왔다. 실제 한국거래소는 지난 2년간 감사의 연속이었다. 2008년 5월에는 ‘공기업 비리 척결’을 내건 검찰의 압수수색이 있었고, 2009년 6월 8일 금융감독원은 5명의 감사인력을 한국거래소에 파견해 경영 전반에 대한 강도 높은 감사를 벌였다.

    2009년 1월 19일 공공기관으로 지정됨으로써 2002년 이후 7년 만에 감사원의 감사까지 받았다. 하지만 이 전 이사장이 자진 사임해 금융업계에선 감사원 감사가 김이 샜다는 말이 나돌았다.

    한국거래소는 감사 의도가 어찌 됐든 감사원에서 제기한 방만한 경영 부문과 여타 지적사항들을 고쳐나가겠다는 방침이다. 다만 “지난 2년간 검찰, 감사원, 금감원이 샅샅이 감사를 벌였지만 개인 비리가 연루된 사건은 하나도 없었다”는 말로, 부도덕한 신의 직장으로 매도되는 것에 대해서는 분명한 선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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