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27

2010.03.16

좌장의 반란이냐, 충정의 발로냐

김무성 의원, 박근혜 눈 밖에 난 행보 … 신(新)측근 對 구(舊)측근 갈등 시선도

  • 송국건 영남일보 서울취재본부장 song@yeongnam.com

    입력2010-03-10 11:19: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좌장의 반란이냐, 충정의 발로냐
    “각하, 제가 친박(친박근혜)에서 ‘넘버1’입니다. 제가 나가면 배신자가 됩니다. 각하 수하가 어디 가서 배신자 소리를 들어서야 되겠습니까.”

    2007년 초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분위기가 무르익던 무렵 김영삼(YS) 전 대통령이 김무성 의원을 서울 상도동 자택으로 불렀다. 김 의원은 YS를 통해 정치에 입문한 뒤 문민정부 시절 범(汎)상도동계 핵심으로 활동하면서 권력의 중심에 선 바 있다.

    YS는 자택으로 찾아온 김 의원에게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갑자기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으로 화제를 돌렸다. “박근혜, 안 된다. 이번 선거는 이명박이 된다.” 그러니 이명박(MB) 후보를 밀라는 은근한 ‘지시’였다. 그때 김 의원은 자신이 친박계에서 ‘넘버1’이란 말로 빠져나갔다. 그러자 YS는 “네가 넘버1이었나? 몰랐다”라고 말하고는 더 이상 MB 지원을 권유하지 않았다. 김 의원은 나중에 이렇게 술회했다.

    “사실 나도 MB가 될 줄 알고 있었다. 세상 사람이 다 알고 있었는데 내가 어떻게 몰랐겠나. 하지만 나는 박근혜 대표 시절 10개월 동안 사무총장을 하면서 이뤄낸 성공을 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박 전 대표를 모시게 됐고, 여기까지 왔다. 내가 어떻게 박 전 대표를 배신할 수 있겠나.”

    오래전부터 ‘자기 정치’ 하고 싶어 해



    그런 김 의원이 요즘 친박계 일각으로부터 ‘배신자’ 소리를 듣고 있다. 세종시 원안 추진을 강력히 요구하며 MB와 대립각을 세운 박 전 대표에게 반하는 내용으로 ‘폭탄 발언’을 했기 때문이다. 김 의원은 세종시 해법으로 ‘7개 독립기관 이전안’을 제안한 뒤 “박근혜 전 대표에게 부탁하고 싶은 점은 관성에 젖어 바로 거부하지 말고 심각한 검토와 고민을 해달라는 것”이라는 말까지 했다.

    이에 박 전 대표는 대변인 격인 이정현 의원을 통해 “한마디로 가치가 없는 이야기”라고 일축하면서 “친박에는 좌장이 없다”고 덧붙였다. ‘친박계 좌장’으로 불리는 김 의원을 ‘직위해제’한 셈이다.

    애초 김 의원을 친박계 좌장에 올린 사람은 박 전 대표 본인이다. 박 전 대표는 2007년 11월 선출직 최고위원 보궐선거에서 김무성 의원과 김학원 의원이 경합하자 김무성 의원에게 “캠프의 좌장 노릇을 했고 저와 더 가까우니 양보해달라”고 했다. 박 전 대표는 이듬해 4월 총선에서 생환한 이후 친박계 모임에서도 김 의원이 친박계 좌장임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최근 김 의원이 ‘반기(反旗)’를 든 것처럼 보이는 행동을 하고 이를 박 전 대표가 단칼에 응징하자 정가에서 소문이 무성하다. 김 의원이 친이계의 포섭 작전에 말려 ‘탈박(脫朴)’에 나섰다는 말에서부터, 이명박 정부에 입각하거나 전당대회에서 친이계의 지원을 받아 당 지도부 입성을 노릴 것이란 관측까지 나왔다. 또 5월 중순쯤 실시될 차기 원내대표 경선에 나서지 않겠느냐는 견해도 있다.

    사실 김 의원이 박 전 대표의 눈 밖에 났고, 본인도 ‘자기 정치’를 하고 싶어 한다는 말은 오래전부터 여의도 정가에 나돌았다. 지난해 5월 친이 핵심부에서 제안한 ‘김무성 원내대표 추대’ 카드를 받으려 했다가 박 전 대표의 “당헌·당규를 어겨가면서 그런 식으로 원내대표를 하는 것에 반대한다”는 말 한마디에 바로 무산된 사례가 대표적이다.

    김 의원은 또 세종시 문제가 처음 불거진 지난해 10월 이미 세종시 수정에 찬성을 표명했고, 정운찬 총리와의 만찬, 진영 의원 상가 등에서 수정안 지지 발언을 해 친박 진영으로부터 눈총을 받았다. 나아가 친이계와 친박계가 첨예하게 대치하던 1월에는 친이계 공부 모임인 ‘아레테’에 가입하기도 했다.

    특히 세종시 문제와 관련해 김 의원은 타협안을 제시하기 직전 부산지역 언론사 기자와 만나 “현재 당은 파괴적이고 비정상적인 상황이다. 감정에서 벗어나 이성적인 대화와 토론을 해야 한다. 조만간 (친이계 핵심인) 이상득 의원과 이재오 국민권익위원장을 만나서 풀겠다”고 말했다. 그는 “전쟁을 하더라도 적과 대화는 해야 한다. 내가 (친박계로부터) 욕을 먹더라도 두 사람을 만나 묵은 감정을 풀고, 해법을 마련하는 계기를 만들겠다”고 덧붙였다.

    지방선거 전후 본심 드러날 듯

    이런 김 의원이 기자회견까지 열어 세종시 타협안을 제출하고 이를 의원총회에서 공론화하자 친박계에서는 “이미 우리와 결별했다”는 말이 나왔다. 박 전 대표의 비서실장을 지낸 유정복 의원은 “같은 가치관과 신념을 가져야 친박인데, 김 의원은 다르지 않느냐”고 했다. 박 전 대표가 직위해제를 시킨 데 이어 아예 친박계에서 ‘파문(破門)’ 선언을 했다고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김 의원은 이런 모든 억측을 강하게 부인하면서 답답하다는 반응이다. 그는 “박 전 대표의 최측근에 있었던 사람이나 국회의원으로서 개인 소신이 있을 수 있는 일”이라며 “친이-친박 싸움, 그리고 김무성이 박근혜와 갈라서느냐 마느냐, 여기에 자꾸 관심을 쏟을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또 사석에서 “내가 딴마음을 가질 이유는 전혀 없다. 박 전 대표의 지지율이 35~40%를 넘어가고, 가장 유력한 대권주자인데 내가 왜 다른 마음을 품겠느냐”는 말도 했다고 한다.

    결국 김 의원은 박 전 대표와 결별할 의사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가장 민감한 사안인 세종시 문제를 놓고 반기를 들었다. 왜일까. 그를 잘 아는 정치권의 한 인사는 “김 의원의 성격으로 볼 때 어떤 계산을 한 것은 아닐 것이다. 단순한 충정에서 나온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김영삼 정부 시절 내무부 차관을 지냈을 때의 경험에서 행정부처가 분리돼선 안 된다는 신념이 강한 것으로 알려진다.

    친박계인 한나라당의 고위 당직자도 “자신의 소신을 밝힌 것으로 이해한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시점이 미묘하다. ‘강도론’ 등으로 가장 민감한 때 김 의원이 치고 나간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선 김 의원이 상반기 중 단행 가능성이 높은 개각이나 5월 원내대표 경선, 7월 전당대회를 염두에 두고 지금이 적기라고 판단했을 것이란 견해도 있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김 의원이 친이계의 지원을 받아 요직에 오를 경우 그의 지역구인 부산에서 정치적으로 매장될 것이 뻔한 만큼 그럴 가능성은 매우 낮다. 이보다는 친박계 내부의 알력 측면에서 김 의원의 행동을 이해하려는 시각이 많다. 이는 ‘충정론’과도 관련이 있다.

    김 의원은 현재 박 전 대표 주변을 감싸고 있는 유정복, 이정현 의원 등 이른바 ‘신(新)측근’ 그룹의 보좌 방식을 마땅찮게 생각하고, 이들 역시 김 의원을 비롯한 ‘구(舊)측근’에 대한 불신이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세종시 문제를 놓고 신측근들이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사태를 악화시킨다는 판단에서 김 의원이 치고 나섰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과연 김 의원의 본심은 뭘까. 현재의 권력과 미래의 권력 사이 갈등이 표면화할 지방선거 전후 그의 본심은 드러날 수밖에 없어 보인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