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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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시간 근로 도입 ‘뚜렷한 시각차’

“인건비만 더 늘어나” vs “여성 저임금자 양산” …‘괜찮은’ 일자리로 자리 잡아야 확산

  •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입력2010-03-09 18: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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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연근무제는 근로자의 수나 임금이 아닌, 근로 형태와 시간, 장소 등을 조정해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확보하는 제도다. 그중 주 40시간보다 적게 일하고 그에 비례해 임금을 줄이는 ‘단시간 근로’는 정부가 중점적으로 추진하는 근무 형태. 그런데 정부는 “‘단시간’이되 ‘상용직’인 근로, 즉 근무 시간만 짧을 뿐 임금 체계나 복지 제도, 해고 조항까지 전일제 정규직과 동일한 근무제를 공공 부문을 시작으로 민간 부문까지 확산하겠다”고 밝혔다. 또 전일제 1인의 업무를 시간제 2인이 담당하는 직무공유제와, 전일제의 시간제 전환을 지원하는 방안 등도 적극 고려 중이라고 했다.

    단시간 근로 도입 ‘뚜렷한 시각차’
    하지만 노사는 각각 정반대의 시각에서 이를 반대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배상근 경제본부장은 “단시간 근로를 도입, 확산해야 한다”는 총론엔 동의하면서도 “전일제 정규직에 대한 과도한 보호로 인해 노동시장의 경직성이 개선되지 않은 상태에서, 비용만 느는 단시간 상용직 근로는 기업으로선 받아들이기 어려운 점이 많다”고 주장했다. 단시간 상용직으로 채용할 경우 사회보험, 상여금, 유급휴가, 교통비, 공간 사용비 등 인건비가 추가로 발생한다. 또 배 본부장은 “단순하고 획일적인 업무를 제외하고는 대다수 일은 ‘무 자르듯’ 나누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민주노총 김경란 정책국장은 정부의 단시간 상용직 근로에 대해 “정규직에 한참 못 미치는 상용 ‘파트타임’으로 ‘풀타임’ 전환이 어렵고, 임금도 어중간한 근무제가 될 것”이라며 부정적인 생각이다. 특히 김 국장은 “여성을 대상으로 한 단순노무 저임금 일자리만 양산해 남녀 간 고용 격차를 더 악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근로시간 50% 줄면, 임금도 50% 줄어야

    전문가들은 “현 상황에서 단시간 근로를 무작정 확산하면 사회적 부작용만 커진다”며 “단시간 근로에 대한 명확한 정의, 관련 법제의 정비, 보상체계의 확립 등 몇 가지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여성노동법률지원센터 문강분 회장은 “단시간 근로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단시간 근로는 짧은 근로시간을 의미할 뿐, ‘정규직이냐 비정규직이냐’에 대한 개념은 아니다. 즉 단시간 정규직도, 전일제 비정규직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전일제=정규직 근무이자 좋은 일자리, 단시간=비정규직 근무이자 좋지 않은 일자리’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 문 회장은 “법제의 정비를 통해 단시간 근로에 대해 명확한 정의를 내리고, 근로 조건이나 활용 유형, 차별금지 방안 등을 명시해야 한다. 이를 통해 단시간 근로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만드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이화여대 사회학과 이주희 교수는 ‘비례보상체계’의 확립을 가장 중요한 조건으로 들었다. 이 교수는 “근로시간이 50%로 줄면, 임금도 50%로 준다는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 하지만 현재는 약 30%밖에 받지 못한다(표 참고). 이런 상황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단시간 근로의 확대는 노동의 질만 악화시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네덜란드는 1993년 동등처우법을 통해 비례보상체계를 법제화해 단시간 근로자와 전일제 근로자 간 차이를 줄였고, 이를 통해 단시간 근로자의 수를 성공적으로 증가시켰다. 특히 남성 단시간 근로자가 18%에 이르렀다(1998년 기준).

    비례보상체계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이주희 교수는 “단시간 상용직 근로를 활성화하는 가장 좋은 전략은 역설적이게도 비정규직에 대한 보호를 강화하는 것”이라며 “비정규직보호법 등 제도 정비뿐 아니라 기업별 단체협약을 통해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을 줄이면, 노동의 유연성은 자연스레 따라온다”고 덧붙였다.

    단시간 근로 도입 ‘뚜렷한 시각차’

    외국인 관광객에게 우리의 문화유산을 알리는 ‘문화재 해설사’는 특히 고령층에게 맞는단시간 일자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단시간 근로가 허드렛일 중심의 저임금 일자리만 제공한다는 편견을 없애려면 안정적이고 고임금인 분야에서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도 중요하다. 한국노동연구원 허재준 사회정책연구본부장은 “의료나 관광 등 서비스 분야에서 고부가가치를 낼 수 있는 단시간 일자리를 많이 만들 수 있다”고 했다.

    예를 들어 한국 병원을 찾는 외국인 또는 외국 병원을 찾는 한국인 대상의 의료 전문 통역사, 종묘 등에서 외국인 관광객에게 우리의 문화유산을 알리는 ‘문화재 해설사’ 등은 전문성을 갖추면서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임금 수준도 괜찮은 단시간 일자리라는 것. 허 본부장은 “특히 정부 차원에서 다양한 사례를 개발해 보여주고, 민간에 확산해야 한다”며 “정부가 먼저 나서지 않으면 민간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긴 쉽지 않다”고 강조했다.

    삼성경제연구소 손민중 연구원은 “경쟁이 적고 고용이 보장된 공공 부문에서 먼저 단시간 근로를 적용할 만한 대상을 찾아야 한다. 경찰, 상담원 등 대민 서비스가 그 예”라고 말했다. 즉 대민 서비스 분야에서는 기존 8시간 3교대 근무제를 6시간 4교대로 바꾸기가 수월하고 3~4시간만 근무하는 단시간 근로자도 다른 분야보다 쉽게 뽑을 수 있다. 사회복지 서비스도 정부가 앞장서 단시간 근로를 시행해볼 수 있는 분야. 호스피스, 간병인 등 사회복지 서비스 종사자는 소득수준이 높아지고 고령화 사회가 될수록 수요가 많아지고 고급화된다.

    기업에겐 세제 혜택 등 지원책

    단시간 근로를 도입하는 기업에 대한 구체적인 지원책을 마련해 독려하는 것도 중요하다. 정부는 “단시간 상용직 근로자를 채용하는 기업에게 늘어나는 비용 일부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배상근 경제본부장은 “단순히 금액을 지원하는 것으로는 기업의 참여를 이끌기 힘들다. 세제 혜택과 같은 장기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주희 교수도 “어느 정도 추가 비용을 감내할 수 있는 대기업이 앞장서 도입하도록 정부 차원에서 독려책을 써야 한다”며 “자금 압박이 심한 중소기업에게는 정부가 구체적인 컨설팅을 해주고 재정 지원책을 마련해주는 등 혜택을 주는 게 좋다. 모범 기업을 발굴해 홍보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했다.

    또 기업에선 근로자가 단시간 근로를 택하더라도 임금이나 경력 관리상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인사 및 평가를 해야 한다. 근무시간보다는 업무결과에 따라 성과를 평가하고, 전일제와 단시간 근로의 상호 전환이 용이하도록 제도적 장치를 두는 것도 중요하다. 장시간 근로를 당연시하는 관행도 없어져야 한다.

    한편 단시간 근로가 출산, 육아 등의 이유로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여성을 주 대상으로 한 만큼, 이 제도의 도입이 여성의 경력 단절을 당연시하고 남녀 간 업무 분리나 고용 격차를 오히려 악화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김경란 정책국장은 “여성이 일과 육아를 병행할 수 없게 하는 상황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과 대책이 필요하다”며 “보육시설 확충과 심각한 남녀 간 임금 격차 및 차별적인 인사 평가 관행부터 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문강분 회장은 “일부 여성계나 노동계에서 단시간 근로를 무조건 반대하는 것도 잘못된 처사”라고 주장했다. 단시간 근로를 선호하는 수요가 분명히 있기 때문. 여성이냐, 남성이냐를 떠나 일과 육아를 병행하려는 사람이나 체력이 좋지 않은 고령자, ‘투잡’ 또는 일과 학업을 함께 하려는 청년층 등에서는 단시간 근로를 자발적으로 택하는 사람이 있다. 문 회장은 “실제로 모 백화점에서 일하는 상당수 단시간 근로자가 전일제 전환의 기회가 있었는데도 단시간 근로를 택했다”고 설명했다.

    물론 단시간 근로는 한계가 명확하다. 단시간 근로가 보편화된 유럽이나 북미의 선진국에서도 고위 관리직은 대다수가 전일제 근무자다. 이주희 교수는 “북유럽의 경우 고위 관리직에 여성의 비율이 낮은데, 이는 여성이 단시간 근로를 많이 택하기 때문”이라고 꼬집으면서도 “‘열심히 일해 고위 관리자로 갈 것이냐’ 아니면 ‘일과 생활이 양립되는 삶을 살 것이냐’가 근로자 개개인이 본인의 가치관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문제라는 게 우리나라와의 차이점이다. 이는 사회보장제도가 어떻게 갖춰져 있느냐와도 연관 있다”고 설명했다.

    단시간 근로를 본격 도입하기에 앞서, 기업과 근로자가 이보다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다른 유형의 유연근무제를 시범적으로 실시하는 것도 좋다. 2008년 6월부터 도입한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가 그 예가 될 수 있다. 이는 3세 미만 영유아를 둔 근로자가 1년 이내의 기간에 단시간 근로를 희망하는 경우 주 15~30시간에서 단축 요구가 가능하며 사용자는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허용해야 하는 제도로, 단축 기간이 끝난 후에는 이전과 같은 수준의 업무로 복귀할 수 있어야 한다. 실제로 국민은행은 일주일에 20시간 근무하는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를 시행하고 있다. 급여는 정상근무 대비 57% 수준. 평가는 전일제 직원과 다르게 하나 복지후생, 성과급 등은 동일하다.

    단시간 근로 도입 ‘뚜렷한 시각차’

    전문가들은 “공공 부문 대민 서비스에서 먼저 단시간 근로를 적용할 만한 대상을 찾으라”고 조언한다.

    CEO의 철학과 의지가 중요

    초과 근무한 시간을 ‘저축’해놓아 필요한 시기에 단축 근무를 하는 ‘근로시간 저축제’나 출퇴근 시간을 자유롭게 하는 ‘탄력근무제’, 주 40시간 범위 내에서 1일 근무시간을 자율 조정하는 ‘선택적 시간근무제’, 사무실이 아닌 공간에서 근무하는 ‘원격근무제’ 등도 기업에서 도입할 수 있는 유연근무제 유형이다. 외국계 기업에선 어느 정도 보편화됐고, 공무원도 정부가 발표한 ‘공공기관 유연근무제 활성화 계획’에 따라 올해 하반기부터 선택할 수 있게 됐다. 이렇듯 조직의 근무 형태가 유연해진다면 ‘뜨거운 감자’인 단시간 근로의 도입 역시 수월해질 수 있다.

    손민중 연구원은 “근로자 개개인의 사정을 고려, 배려해주는 ‘인간 중심’의 기업에서 단시간 근로를 포함해 유연근무제 도입이 가능하다. 이를 위해선 CEO의 철학과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단시간 상용직 근로자를 다수 채용하고, 다양한 근무 형태를 선택한 직원이 많은 부서의 임원에게 CEO가 인사고과를 후하게 준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독려책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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