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26

2010.03.09

한숨은 삶고 눈물은 볶고 고단한 셰프의 꿈

최소 10년 노력 끝에 주방장 올라도 박봉 … 조리학과 졸업생도 중도 포기 속출

  •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입력2010-03-04 11: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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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숨은 삶고 눈물은 볶고 고단한 셰프의 꿈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와인 비스트로 ‘오름’의 주방 모습. 정혜진 셰프(맨 왼쪽)는 “요리사는 힘든 직업이지만, 늘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일이기에 즐겁다”고 말한다.

    “급해서? 그게 새우 탓인가? 뇌에 칼집 좀 내줄까? 그래야 정신 차리지? 다시!”

    입에서 나오는 대로 독설을 퍼붓는 셰프. “예, 셰프!” “잘못했습니다, 셰프!”를 외치며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요리사들. MBC 인기드라마 ‘파스타’는 10명의 요리사가 쉴 새 없이 음식을 만드는 고급 이탈리아 레스토랑 주방을 주 무대로 삼는다.

    대중매체에 잘나가는 요리사들이 묘사되고 외식산업이 날로 번창하면서 어느새 요리사는 선망의 직업 중 하나로 떠올랐다. 프라이팬을 잡은 젊은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주방의 왕, 셰프는 ‘파스타’ 주인공 최현욱(이선균 분)처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애용한다는 수십만 원짜리 가방을 들고 1억원 하는 수입차를 탈 수 있는 영광의 자리일까.

    취업·인사 포털사이트 인크루트가 최근 발표한 대졸 직장인 연봉 자료에 따르면 1년차 평균연봉은 2123만원, 10년차는 4131만원이다. 그렇다면 서울 강남의 한 고급 레스토랑에서 근무하는 7년차 요리사 A씨의 월급은? A씨는 “140만원인데 세금 떼고 나면 130만원이 조금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실력 있다고 소문난 레스토랑에는 돈 받지 않아도 좋으니 일하게만 해달라는 젊은 요리사가 줄을 서기 때문에 나는 운이 좋은 경우”라고 했다.

    강남권 유명 셰프 월급 300만원 안팎



    서울의 모 특급호텔 요리사인 B씨는 전문대학 호텔조리과 출신. 그는 100명 가까운 동기 사이에서 가장 성공한 케이스로 불린다. 특급호텔 취업에 성공한 사람이 그를 포함해 두어 명에 불과한 탓이다. B씨는 “전국에 호텔조리학과가 숱하게 많지만, 호텔에선 요리사가 필요할 때마다 한두 명씩 모집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어렵사리 구한 번듯한 직장이지만 그는 몇 년 뒤 고향에 내려가 작은 식당을 낼 생각이다. 업무강도가 무척 센 데 반해 급여가 월 140만원에 그치기 때문. B씨는 “호텔은 승진도 매우 더딘 데다, 30년 가까이 근무해도 300만원이 안 되는 걸로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요리사의 일상은 화려하게 묘사되며,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나오는 스타 셰프들은 카리스마 넘치는 부자다. 그러나 현실의 요리사들은 박봉과 과로에 시달리고 있다.

    “새벽 6시 반까지 출근해 8시간을 쉴 틈 없이 일합니다. 20~30kg의 식재료를 들고 몇 층을 오르락내리락하죠. 식재료를 납품하는 분들이 ‘노가다 하면 더 벌겠다’고 농담하는 것도 틀린 말은 아닙니다.”(B씨)

    호텔이나 대기업이 운영하는 식당에는 주 5일, 하루 8시간 근무제가 정착돼 있다. 그러나 대개의 요리사는 식당 영업시간에 맞춰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까지 하루 12시간을 근무한다. 손님이 가장 많은 주말에 일하는 것은 물론이다. 서울 압구정동의 이탈리아 레스토랑 ‘부띠끄 블루밍’의 스태프 요리사 김승련(26) 씨는 “손님이 많은 날엔 마무리하느라 11시 넘어서 퇴근하기도 한다”며 “다른 식당에서는 셰프가 지시한 일들을 하느라 주방에서 밤을 새운 적도 많다”고 말했다. 미국 뉴욕의 요리학교 CIA를 졸업하고 뉴욕과 서울에서 요리사로 일한 정서영(33) 씨는 “생리를 시작한 날, 너무 바빠 하루 종일 화장실 한 번 못 간 적도 있다”고 했다. “식당 문을 닫고서야 화장실에 갔는데 생리대가 터질 듯 불어 있었어요. 아픈 데요? 허리, 팔목, 어깨…. 다 말하면 여자 요리사들 시집가기 힘들어요.”

    서울 서초구 JW메리어트호텔에서 맨 아래 직급인 ‘키친 헬퍼’로 근무하는 이동훈(24) 씨는 “퇴근이 한두 시간 늦춰지거나, 휴일에도 나와야 하는 것은 호텔도 마찬가지”라고 전했다.

    한숨은 삶고 눈물은 볶고 고단한 셰프의 꿈
    ‘파스타’에 등장하는 셰프의 독설은 현실의 주방에서도 다반사다. 청담동의 와인 비스트로 ‘오름’의 정혜진(33) 셰프는 “주방이 군대보다 군기가 세다”며 “정강이를 걷어차이고 욕설도 종종 듣는다”고 말했다. 쉴 새 없이 음식을 만들어내야 하는데, 실수를 하면 그만큼 차질이 빚어지기 때문에 긴장을 늦추지 않도록 셰프들이 무섭게 굴 수밖에 없다는 것. 서울 시내의 모 호텔에서 실습을 했던 김의진(27) 씨는 “남자 선배들이 여자 후배에게 성차별적인 발언도 서슴지 않는다”고 전했다.

    세계적인 셰프 마르코 피에르 화이트는 괴팍한 성격으로도 유명하다. 부하 요리사가 덥다고 하자 그의 옷을 가위로 잘라버린 일화가 자주 회자된다. 정서영 씨는 “어느 나라 셰프든 화이트처럼 독재자적인 면이 있게 마련”이라고 했다.

    따라서 젊은 요리사들이 갖춰야 할 덕목 중 하나는 눈치. 이동훈 씨는 “알아서 필요한 일을 해놓는 것은 기본이고, 선배마다 다르게 지시하는 사항도 눈치껏 다 소화해야 한다”고 털어놨다.

    하루 12시간씩 고된 노동을 하지만, 급여는 적다. 100만원가량의 월급에서 시작해 경력 5~6년이 돼도 150만원을 받기가 쉽지 않다. 레스토랑의 규모에 따라 차아가 나긴 하지만, 경력 10년이 되어도 250만원 안팎이다. 따라서 한 곳에 오래 근무하지 않고 월급을 더 주는 식당으로 철새처럼 옮겨 다니는 게 요리사들 사이에선 흔한 일. 서울 강남의 고급 양식당에서 일하는 C씨는 “경력이 10년 된 선배가 얼마 전 대기업 계열의 레스토랑으로 옮겼다”며 “200만원의 월급으로 아이 키우기가 무척 버거운 걸 알기 때문에 아무도 말리지 못했다”고 말했다.

    셰프는 아무나 오를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적어도 10년 이상의 경력을 쌓으며 실력을 인정받아야 하는데, 박한 처우를 견디지 못하고 중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김의진 씨는 “대학 동기들 중 지금까지 요리하는 친구는 두어 명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이동훈 씨도 “특히 여자 동기들은 거의 다 다른 일에 종사하고 있다”고 했다.

    셰프가 되면 수입이 이전보다 크게 오르지만, 다른 전문직종과 비교하면 높은 편이 아니다. 정혜진 씨는 “청담동 주변의 꽤 괜찮다는 레스토랑 셰프의 월급은 300만원 수준”이라며 “경기가 나빠지면서 이마저도 받지 못하는 셰프도 많다”고 전했다.

    드라마 ‘파스타’의 요리 자문을 맡고 있는 신사동 소재의 이탈리아 레스토랑 ‘보나세라’의 총괄요리장 샘 김(34) 씨는 고등학교 졸업 후 미국으로 건너가 요리를 배웠다. 주로 비벌리힐스에서 10년의 요리 경력을 쌓고 지난해 말 귀국한 ‘해외파’ 김씨의 연봉은 5000만원대. 그는 “미국에 있을 때보다 많이 줄었지만, 서울에선 내 또래 셰프 중 가장 높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서울 반포 서래마을에서 프렌치 레스토랑 ‘그린테이블’을 운영하는 오너셰프 김은희(34) 씨는 “식당을 운영해보니 많이 주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임대료와 식재료 부담이 큰 데다, 웬만한 강남 식당들에겐 보편화된 발렛주차 비용도 월 200만원이나 하는 등 운영비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젊은 요리사들 “그래도 요리가 즐거워”

    이런 척박한 현실에도 젊은 요리사들이 프라이팬을 놓지 않는 것은 요리에 푹 빠졌기 때문이다. 또 이들은 인고의 시간 끝에 스타 셰프가 된다면 명예와 돈이 뒤따를 것이라고 믿는다. 정혜진 씨는 “요리대회, 대중매체, 입소문 등을 통해 이름을 알리면, 투자자를 만나 자기 식당을 낼 수 있다”며 “많은 요리사가 이런 미래를 꿈꾼다”고 전했다.

    기업에서 마케팅 업무를 담당하다 서른 살이 넘어 미국으로 요리 유학을 떠난 우윤경(35) 씨는 “돈보다 행복을 위해 요리를 택했기에 후회가 없다”고 했다. 김승련 씨는 “월급 몇만 원 올려받는 것보다 희귀한 고급식재료를 만져보는 것이 더 좋다”는 마음이다.

    “괜찮은 수입과 삶의 여유를 원한다면 요리는 좋은 선택이 아니에요. 하지만 요리보다 재미있는 게 없으니까, 힘들어도 전 좋습니다.”(김승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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