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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군, 아프간 수렁서 발 빼나

올 120명 증파 앞두고 철군 목소리 고조 … 국제사회 책무 등 명분 때문에 쉽지 않을 듯

독일군, 아프간 수렁서 발 빼나

‘독일군’ 하면 나치시대의 잔인한 이미지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장난감 무기를 무척 좋아했던 필자는 어린 시절 킹타이거 탱크나 폭스 장갑차, 슈투카, U보트의 프라모델을 조립하며 놀았다. 그때 어린 나이에도 ‘독일은 무서운 나라지만 무기는 최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알고 있듯 독일 장인의 솜씨와 기술은 뛰어나다. 평상시 좋은 자동차를 만들던 솜씨로 유사시 뛰어난 탱크를 생산할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독일을 최고라고 치켜세우면서도 두려워한다.

나치가 항복했을 때 승전국인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이 독일의 국토를 4등분시키며 군대 보유를 전면 금지한 것도 이들의 폭발력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냉전이 심각하던 1950년대, 동서 진영의 군사적 긴장 상태가 지속되자 동·서독은 국경 수비를 이유로 자위대를 만들었다. 그리고 독일 통일 후에는 개헌을 통해 국제 분쟁지역에 무장한 군대를 보내는 것도 허용했다. 현재 독일군은 아프가니스탄, 소말리아, 발칸반도, 에티오피아, 수단, 콩고 등에 파병해 국제평화군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이 중 가장 많은 병력을 투입한 곳이 아프가니스탄이다. 독일은 미국, 영국 다음으로 많은 4365명을 보냈고, 올해 120명을 추가 파병할 계획이다. 국토방위를 목적으로 하는 자위대의 해외 파병에 대한 논란이 있었지만, 2002년 첫 아프가니스탄 파병 당시 국방장관 페터 슈트룩은 “독일의 안보를 위해서라면 중앙아시아 힌두쿠시산맥 지역에라도 파병해야 한다”며 파병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9·11테러 이후 위험지역에서 테러리즘이 자라지 못하도록 사전에 조치를 취하는 일이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파병 8년째 치안은 더 불안

그렇지만 아프가니스탄에 파병한 지 8년이 지나도록 그곳 도시는 안정되기는커녕 더 불안해지고 있다. 독일군이 주둔한 북부 쿤두즈 지역은 비교적 평화로운 곳이었으나 최근 탈레반 활동이 급증하고 있다. 지금까지 독일군 63명이 사망했고, 현지 민간인 피해도 늘고 있다. 특히 지난해 9월4일 쿤두즈 폭격으로 민간인 수십 명이 죽고 다쳤다. 이로 인해 현지의 독일 이미지가 급격히 나빠졌다. 독일에서 아프가니스탄 주둔 연장에 대해 회의적인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메르켈 정부 2기 내각의 국방장관으로 임명된 구텐베르크는 지난해 12월27일 “이제는 아프가니스탄에 파병한 우리 군의 철수 시점을 논의해야 할 때”라고 말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역사적 배경 등을 감안할 때 아프가니스탄은 현재 우리 기준에 따른 민주주의에 적합한 나라가 아니다. 따라서 아무리 오랫동안 서방 군대를 주둔시킨다 해도 그것이 큰 의미를 갖지는 못할 것이다. 대신 온건 탈레반 세력을 아프가니스탄 정부에 참여시켜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렇지만 독일군의 즉각 철수를 주장하는 발언은 아니었다.

구텐베르크 장관의 발언은 ‘아프가니스탄에 2500명의 병력을 추가 파병하라’는 미국 측 요구가 무리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는 국방장관으로서의 대략적 구상을 말했을 뿐이다. 실제로 그는 아프가니스탄을 수시로 방문해 파병 장병들을 격려하고 사기를 북돋웠다.

정작 과격한 목소리는 다른 곳에서 터져 나왔다. 지난 11월 독일 루터교회의 최고 수장인 대표주교(임기 10년)로 선출된 마르고트 캐스만이 그 주인공이다. 그녀가 대표하는 독일 루터교회는 신도 2600만명을 거느린 파워집단이다. 최근 500년 동안 루터교회에서 여성이 대표주교로 선출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은 언제나 언론의 주목을 받는다. 그런 캐스만 대표주교가 지난해 하노버에서 행한 크리스마스 전야예배와 드레스덴에서의 신년예배 설교에서 독일의 아프가니스탄 파병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무기를 가지고는 결코 그곳에 평화를 가져다줄 수 없습니다. 평화를 얻으려면 더 많은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갈등을 극복하기 위해 더 많이 생각해야 합니다.”

그녀는 12월26일 ‘베를리너 차이퉁’과의 인터뷰에서 “아프간전쟁이 옳지 않으며, 독일군은 즉각 철수해야 한다”고 말하며 한발 더 나갔다. 즉 아프간전쟁은 정당성이 없기 때문에 비군사적인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캐스만의 발언은 큰 반향을 몰고 왔다. 많은 독일 시민은 “속으로만 생각했던 것을 속 시원히 잘 터뜨려주었다”며 그녀를 높이 평가했다.

‘아프간 철군’ 믿지 않는 독일 국민들

그러나 정치권의 반응은 이와 정반대다. 선명 좌파를 표방하는 좌익당을 제외한 거의 모든 정당에서는 그녀의 발언을 ‘철모르는 포퓰리즘’에 의한 것이라고 간주했다. 연방의회 외무상임위 간사인 한스 울리히 클로제는 “그녀의 발언은 정치권의 다수 의견과 상반된 채 오직 좌익의 입장만 대변할 따름”이라면서 “파병이 결정됐으면 국가와 사회는 군인들이 그 과업을 잘 수행하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반박해, 논란은 증폭됐다.

독일군의 아프가니스탄 파병은 좌파로 분류되는 슈뢰더 정부 때 처음으로 진행됐다. 슈뢰더 정부는 아프간전쟁을 시작한 미국을 썩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2002년 총선에서 “독일의 젊은이들을 결코 아프가니스탄으로 보내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공약을 내걸어 가까스로 기사련의 슈토이버를 꺾고 정권을 재창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얼마 못 가 그는 독일 젊은이들을 아프가니스탄으로 보낼 수밖에 없었다. 아프간전쟁에 주도적이었던 미국, 영국과의 우호 관계를 고려해야 했을 뿐 아니라 국제사회에서 독일이 담당해야 할 책무 또한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총선에서도 사민당 슈타인마이어 총리후보는 ‘아프가니스탄 철군’이란 공약을 또다시 내밀었지만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 그곳에서 손을 떼는 것이 바람직할 듯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럴 여지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가 아프가니스탄 파병안을 지난해 12월8일 국무회의에서 의결하면서 국내에서도 아프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 2007년 ‘23명 인질사건’ 이후 손을 뗐던 지역에 다시 우리의 젊은이를 보내자니 망설여지는 것이다. 그러나 파병 반대 움직임이 활발한 만큼 우방국과의 동맹관계를 고려하고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임을 감안해 국제적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법안의 통과 여부가 주목된다.



주간동아 2010.02.16 724호 (p76~77)

  • 슈투트가르트 = 안윤기 통신원 friedensstifte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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