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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CIETY

롯데백화점 책임회피도 명품

법원 “에스컬레이터 사고 12억원 배상하라” 잇따른 안전사고 숨기기 급급 비난 자초

롯데백화점 책임회피도 명품

‘오늘은 일찍 집으로 가야지.’

퇴근길을 재촉하던 김모(29) 씨는 영등포역에서 1호선으로 갈아타기 위해 영등포역 대합실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영등포 롯데백화점 1층과 대합실 3층을 연결하는 에스컬레이터. 눈으로 쳐다보기만 해도 아찔한 경사 탓에 김씨는 조심스레 손잡이를 잡았다. 하지만 여느 때처럼 올라가던 에스컬레이터가 갑자기 멈칫하더니 역주행을 시작했다.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하던 22명의 승객은 중심을 잃은 채 도미노처럼 차례차례 쓰러졌다. 다른 승객들은 자신의 뒤에 있던 다른 사람의 몸이 충격완화 노릇을 했던 것과 달리, 에스컬레이터 제일 밑에 있던 김씨는 이 20여 명의 충격을 모두 받아야 했다. 김씨는 에스컬레이터 밑으로 8m 이상을 굴러 넘어졌다. 급히 병원으로 옮겼지만 목척수 손상 등의 상해를 입고 상체가 불완전 마비되고, 하체는 완전 마비됐다. 불과 몇 초 사이에 벌어진 사고로 20대 여성의 삶은 산산조각 부서졌다.

누리꾼들 “소송은 대기업의 횡포”

사고가 나자 롯데 측은 “에스컬레이터는 관리업체가 전담한다. 관리업체의 과실로 손해가 발생할 경우 면책되고, 승강기시설 안전관리법에 의해 관리 주체가 모든 책임과 의무를 부담한다”며 관리업체에 책임을 돌렸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운전자도 차를 운전하면서 사고를 대비해 보험에 들지 않느냐? 당연히 사고가 나면 보험회사가 피해보상에 관한 절차를 진행한다. 고객들이 목소리만 크면 해결된다고 생각해 오히려 백화점 측이 약자일 때가 많다”고 말했다.



반면 에스컬레이터 관리사인 ‘오티스엘리베이터’와 보험회사인 ‘에이스아메리칸화재해상보험’은 “사고 당시 김씨가 에스컬레이터의 핸드레일을 잡지 않아 손해가 확대됐으므로 손해액을 산정할 때 김씨의 과실이 참작돼야 한다”며 책임을 회피했다.

배상 합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병원에서 김씨 가족을 상대로 치료비를 청구하자 김씨 가족은 에스컬레이터 소유업체인 ㈜롯데역사 등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1월24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3부(부장판사 김용석)는 “김씨 등에게 12억여 원을 지급하라”며 원고승소 판결을 했다.

재판부는 “에스컬레이터 주요 부품이 파손돼 사고가 발생했기 때문에 관리·보존에 과실이 있다. 롯데는 에스컬레이터의 소유자 혹은 점유자로서, 관리업체는 안전 관리를 게을리한 책임이 있어 손해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과실상계를 주장하는 관리업체의 주장에 대해서도 “손잡이를 잡지 않았다는 증거가 없고, 설령 잡지 않았더라도 20여 명이 굴러 넘어진 사건 경위를 볼 때 김씨의 과실과 상해 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반박했다.

이번 판결에 대해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항소 여부는 사내 법무팀에서 법률적으로 검토해봐야 한다. 관리업체, 보험회사 등 관련 업체들과 논의해 향후 결정할 것”이라며 말을 아꼈다.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누리꾼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누리꾼 ‘Emory’는 “하반신이 완전 마비된 피해자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보상에 만전을 다하는 것이 기본자세인데, 굳이 소송까지 가는 것 자체가 대기업의 횡포”라며 “세일을 한다거나 경품으로 무리하게 손님을 끌려 하지 말고 평소 안전관리를 강화하라”고 일침을 놓았다.

롯데백화점 책임회피도 명품

롯데백화점에서는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안전관리 소홀로 인한 사고가 일어난다. 서울 소공동에 자리한 롯데백화점 본점.

덩치에 맞는 관리와 책임의식 필요

롯데백화점, 롯데월드, 롯데호텔 등 대표적인 롯데그룹 기업 내에서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안전관리 소홀로 인한 사고가 일어나고 있다. 특히 롯데백화점은 국내 최대 백화점 업체라는 명성에 걸맞지 않게 안전사고가 빈발해 ‘사고 백화점’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얻을 정도.

2004년 10월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 명품관 리모델링 공사 중 승강기가 떨어져 인부 1명이 숨지고 3명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같은 해 7월 롯데백화점 울산점은 정전사태로 수천 명의 쇼핑객이 대피소동을 빚은 데 이어, 백화점 내 영화관에서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 관람객들이 안에 갇혀 긴급 구조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문제의 엘리베이터는 사고 2시간여 전에도 똑같은 고장이 발생했으나 사용중단 조치나 충분한 안전진단을 거치지 않고 긴급수리만 한 채 재가동한 것으로 나타났다.

2007년 1월5일 건설인 신년 인사회에 참석하러 롯데호텔을 찾은 당시 한명숙 총리 일행은 호텔 에스컬레이터가 갑자기 3m 아래로 역주행한 뒤 멈추는 바람에 총리실 간부와 수행원 일부가 에스컬레이터 위에서 넘어지는 사고를 겪기도 했다. 지난해 7월4일에는 서울 송파구 롯데백화점 잠실점 10층 롯데월드 면세점에서 엘리베이터 옆에 세워져 있던 광고용 철제 간판이 쓰러지면서 4세 여아를 덮쳐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더 큰 문제는 사고가 나면 적극적으로 책임을 지려 하기보다 이용자나 용역업체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등 사건을 숨기고 책임을 피하는 데만 급급하다는 점이다. 문제가 됐던 서울 영등포역사 내 롯데백화점 에스컬레이터는 2005년에도 급작동을 일으켜 79세 할머니가 뒤로 넘어져 사망했다. 당시 롯데 측은 잘못을 사과하고 책임을 지기보다는 “에스컬레이터 관리 계약이 그 전달에 끝났기 때문에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다. 오히려 철도공사 관리 책임이라며 무책임으로 일관했다.

하지만 경찰 조사결과 백화점 주차요원 조모 씨가 복사한 열쇠를 사용해 에스컬레이터를 급작동시킨 것으로 드러나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조씨는 에스컬레이터 안전·관리에 전문지식이 없음에도 사고 당일 내린 폭설로 작업을 하던 도중 에스컬레이터를 작동해달라는 이용객들의 요청을 받고 자신이 갖고 있던 열쇠로 작동시켰다. 특히 조씨는 2004년 6월 롯데백화점 안전요원에게서 열쇠를 건네받아 임의로 복사했던 것으로 밝혀져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롯데의 주장은 거짓말로 드러났다. 또한 2006년 3월 서울 잠실 롯데월드에서 놀이기구 ‘아틀란티스’를 타던 직원이 기구에서 떨어져 사망했지만, 사고 발생 후 롯데월드 측은 관리책임보다는 직원 자살 가능성을 내세워 거센 비난을 받은 바 있다.

전문가들은 유동인구가 많은 백화점의 특성상 에스컬레이터와 엘리베이터 사고 재발에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소비자 문제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 김자혜 사무총장은 “보험을 들어놨다고 해서 대형 백화점들이 안전사고 책임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사전에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안전관리를 철저히 하는 것이 최우선이며, 사고가 났을 때는 적극적으로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주간동아 2010.02.16 724호 (p72~73)

  •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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