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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 뇌 속 욕망을 꺼내라! 12

영혼을 시뮬레이션하다?

뇌과학의 미래 ‘버추얼 브레인’… 컴퓨터 뇌로 ‘인간 뇌’ 비밀 캐기

영혼을 시뮬레이션하다?

영혼을 시뮬레이션하다?
# 2050년 어느 날, 불규칙한 발작증세로 어려움을 겪던 한 간질환자가 신경과 전문의를 찾는다. 의사는 환자의 뇌영상 측정 데이터를 버추얼 브레인(Virtual Brain)에 입력하고, 뇌신경회로의 어느 부위가 발작을 유발하는지 찾아낸다. 과거 신경외과 수술에서 시행착오를 거쳐 원인 부위를 찾고 전기자극기를 삽입해야 했던 시술을 이렇게 버추얼 브레인으로 간단히 할 수 있게 됐다. 버추얼 브레인은 친절하게도 치료 후 뇌신경회로 기능까지 시뮬레이션해 보여준다.

21세기 생명과학계의 화두는 ‘시스템 생물학’이라는 융합과학의 등장이다. 시스템 생물학은 생명 현상의 원리를 시스템 차원에서 이해하고 궁극적으로 이를 제어하기 위해 기존에 무관한 것으로만 여겼던 공학, 수학, 물리학 등을 생물학과 융합한 학문. 이를 통해 생명체를 구성하는 많은 네트워크의 구조와 기능, 생명의 진화 원리 등이 밝혀지고 있다. 특히 생체 네트워크의 거동에 대한 수학 모델링과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기존 생명과학에서 접근하기 어려웠던 현상을 규명할 수 있게 됐다.

이는 뇌과학 연구에도 적용되고 있는데, 2005년 스위스 로잔공대(EPFL)가 IBM과 공동으로 추진한 ‘블루 브레인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이 프로젝트에서는 IBM의 블루진 슈퍼컴퓨터로 포유류 뇌의 뉴런(신경세포) 하나하나를 분자에서부터 신경 네트워크까지 모델링해 궁극적으로 전체 뇌의 동작을 시뮬레이션한다.

이처럼 거대한 뇌신경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각 뉴런의 생물학적 특성을 일일이 파악하고 슈퍼컴퓨터로 모델링하면, 실제 뇌와 유사하게 작동하는 컴퓨터 모델, 즉 앞의 예에서 언급한 ‘버추얼 브레인’의 개발도 가능해진다. 또 이런 버추얼 브레인을 완성해가는 과정에서 뇌의 동작 원리를 심층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인간의 뇌는 복잡하다. 태아의 뇌만 보더라도 하나의 뉴런이 분열과 증식, 분화를 반복해 그 수가 늘어난다. 뉴런 사이의 연결도 점차 복잡해진다. 이 과정에서 분명 어느 정도 복잡한 네트워크가 형성되기 전에는 의식이나 지능, 감정 따위의 기능이 만들어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수준 이상의 네트워크가 만들어지고 뉴런 사이의 연결 정도가 강해지면 비로소 예측하기 어려운 기능이 생겨난다. 의미 없는 불규칙한 신호가 질서정연한 신호로 바뀌고, 그러면서 네트워크의 여러 곳에서 정보전달이 이뤄지는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슈퍼컴퓨터로 신경 네트워크까지 모델링

이후 네트워크는 점점 복잡해지며 외부자극에 따라 정교한 반응을 만드는 성숙의 단계로 발전한다. 이 단계에 이르면 정보전달에 불필요한 연결은 도태해 끊어지고, 네트워크는 결국 최적의 상태를 찾아 수렴한다.

이런 뇌신경 네트워크의 발달 과정에서 뉴런 사이의 정보는 어떻게 암호화해 전달되는 것일까? 의식은 과연 언제 어떻게 출몰하는 것일까? 창의적 사고와 판단, 추론, 감정 형성 등 고등 기능은 뉴런의 어떤 상호작용에 의한 결과물일까? 인간의 뇌에 상응하는 인공지능은 구현 가능한 것인가? 간질, 파킨슨병, 알츠하이머, 정신분열증, 강박증 등 각종 뇌 질환은 뇌신경 네트워크의 어떤 회로가 고장 나서 발생하는 것일까? 이 모든 질문의 해답은 버추얼 브레인으로부터, 아니 버추얼 브레인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얻게 될 것이다.

일부 뇌과학자는 인간이 자신의 뇌와 동일한 차원의 대상물인 뇌를 연구한다는 것에 한계가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는 스스로 컨트롤타워인 뇌를 객관적 대상처럼 인지하고 연구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또 뇌에서 창발하는 기능을 기계적 시각으로 해석하고 싶어 한다. 심지어 이를 버추얼 브레인을 통해 재현하려 한다. 자신의 창조에 대한 비밀을 엿보고 싶은 욕망에서일까.

또 고령화에 따른 뇌 질환의 증가가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 요즘, 뇌 질환에 대한 근원적 이해를 바탕으로 한 진단과 치료는 삶을 크게 개선할 것이다. 환자 개개인의 특성이 반영된 버추얼 브레인의 시뮬레이션 결과에 따라 뇌 질환의 원인을 추적한다면 맞춤형 치료도 가능해진다.

인공지능 구현기술 때 기계와 소통 가능

이뿐 아니라 진정 인간과 소통할 수 있는 인공지능이 탑재된 로봇의 개발로 인간은 SF 영화에서나 보던 로봇의 도움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 앞서 설명한 뇌신경 네트워크의 발달 과정에서 창발하는 성질들을 이해하고 그 메커니즘을 해독하면, 역으로 특정 성질을 일으키는 신경회로의 구조도 발명할 수 있다. 인공 신경회로는 상황을 인지하고 감정을 만들어내며, 일의 순서에서 예측되는 다음 상황에 필요한 행동도 결정할 수 있다. 이런 회로로 구현된 인공지능을 탑재한 비서 로봇이라면, 고달픈 현대인의 짐을 크게 덜어줄 수 있을 것이다. 인공지능 구현기술이 발달하면 인간과 기계가 진정으로 소통할 수 있는 시기를 맞이하게 되지 않을까.

프로그램화된 인공지능 회로가 스스로 진화를 거듭해 인간과 감정을 교류하게 되면, 고독한 어떤 사람은 기계와 사랑에 빠지는 즐거운 혼돈의 시대가 올 수도 있다. 또 발명자의 의도와 다르게 형성된 인공지능 회로의 가상의식 때문에 기계가 인간에게 존재의 의미를 반문하는 상황이 벌어질지 모른다.

이렇듯 뇌과학의 발전은 인간에게 큰 기대와 설레는 청사진을 제공한다. 하지만 동시에 인간만의 고유 기능이 단지 전기화학적 신호들에 의한 것이라는 낭만적이지 않은 현실을 말해주기도 한다. 우리의 고귀한 영혼과 사랑마저 버추얼 브레인의 시뮬레이션으로 재현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주간동아 2010.02.16 724호 (p62~63)

  • 조광현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sbie.ka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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