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24

2010.02.16

생각으로 톡톡 … 신나는 게임

클릭 대신 뇌파로 조정, 뇌 기능 활용한 게임 인기

  •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최윤영 인턴기자 연세대 교육학과 4학년

    입력2010-02-10 15: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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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컴퓨터 앞에 앉는다. 농경사회를 만드는 게임 프로그램을 실행한다. 먼저 가뭄이 든 곳에 비가 내리게 지정한다. 헤드셋을 쓴다. 눈을 감는다. 최대한 정신을 집중한다.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았지만 내가 지정한 곳에 비가 내린다. 농작물이 많아지고 인구가 늘면 나의 스테이지는 높아진다.

    # 오랜만에 스포츠게임을 해볼까. 오늘은 축구게임을 해보자. 헤드셋을 쓰고 게임을 실행한다. 본격적으로 게임에 들어가기 전 나를 대신할 선수를 선택한다. 여러 선수가 나란히 서 있다. 기술과 체력이 뛰어난 한 선수가 마음에 든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 그 선수가 선택됐다. 호감 가는 선수에게 눈길이 간 것을 컴퓨터가 이미 인식했기 때문이다. 경기를 뛰는 동안에도 나는 그냥 가만히 앉아 패스, 점프, 트래핑 생각만 하면 된다. 그런데 잠깐 스쳤던 생각까지 컴퓨터가 감지해 게임 전략이 흐트러지기도 한다.

    키보드, 마우스, 컨트롤러 없이 생각만으로 게임을 할 수 있을까.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rain Computer Interface·BCI)’를 이용한다면 가능하다. BCI는 키보드나 마우스 같은 인터페이스 없이 뇌의 신호를 헤드셋을 통해 컴퓨터에 직접 전달하는 방식. 의학이나 과학 분야에서 이미 적용돼왔다. 예를 들어 미국 조지아주립대는 팔의 움직임을 담당하는 뇌 부위에 센서를 부착해, 환자가 팔을 움직이고 싶을 때 담당 뇌 부위의 뉴런 신호에 따라 인공 팔을 움직이게 만드는 기술을 개발 중이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연구진은 현재 BCI를 이용한 게임 ‘Story of god’을 개발하고 있다. 2009년 2월 관련 논문 ‘뇌-컴퓨터 인터페이스를 사용한 공간 기반 게임 설계’도 발표했다. 게임과 BCI의 접목은 ‘게임은 쉽고 자연스러워야 한다’는 생각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사용자가 재미를 느끼면서 게임에 몰입해야 하는데 키보드, 마우스 등과 같은 게임 인터페이스가 이를 방해한다는 것. 연구진은 오직 사용자의 집중력과 간단한 물리적 움직임만으로 게임을 할 수 있도록, BCI를 위한 헤드셋과 닌텐도의 무선 컨트롤러를 개조한 3차원 공간 마우스만 사용하도록 했다.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이용



    헤드셋은 이마에 부착된 센서로 전두엽의 뇌파를 측정한다. 측정된 뇌파는 계산공식을 거쳐 수치로 나타난다. 이 값이 사용자의 집중력이다. 뇌파 신호를 분석할 때 주파수를 이용하는데 주파수는 델타(δ)파, 세타(θ)파, 알파(α)파, 베타(β)파, 감마(γ)파 등으로 나뉜다. 사용자의 집중 상태는 베타파를 보면 알 수 있다. 베타파는 경계, 각성, 문제풀이 등 어떤 것에 집중할 때 발생하기 때문. 사용자가 헤드셋을 쓰고 게임에 집중하면 뇌파가 수치로 계산된다. 사용자가 집중할수록 명상 단계(meditation level)에서 집중 단계(attention level)로 레벨을 높일 수 있다. 스킬 버튼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려면 집중력을 높여야 한다. 버튼이 실행되려면 각 버튼마다 정해진 값 이상의 집중력이 발휘돼야 하기 때문.

    이 연구를 지도한 KAIST 문화기술대학원 여운승 교수는 BCI를 이용한 게임의 특징으로 사용자의 무의식까지 감지할 수 있다는 점을 꼽았다. 기존 방식은 클릭 등 사용자가 하는 의식적인 행동이 마우스 같은 게임 인터페이스를 통해 컴퓨터에 입력됐다. 하지만 BCI를 이용한 게임은 뇌파가 컴퓨터로 바로 입력되기 때문에 사용자의 순간적인 무의식까지 게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하지만 뇌파를 측정하는 데 변수가 많고, 피부 상태나 표정에 따라 뇌파가 달라지는 등 기술적인 한계도 적지 않다. 또 사용자가 늘 일정 수준의 집중력을 발휘할 수 없고, 원하는 지점을 정확히 조준해 뇌파를 발생시킬 수 없다는 점도 한계다. 상대방과 격투를 벌이는 게임이라면 짧은 시간 안에 사용자의 의도가 컴퓨터에 정확히 반영돼야 하는데, 지금의 기술로는 이를 구현하기 어렵다.

    하지만 여 교수는 “뇌파를 이용해 게임을 즐길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 이 연구는 의미 있다”면서 “기술 개발과 콘텐츠 연구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롤플레잉 게임처럼 시간적 여유가 많은 게임 콘텐츠에 BCI가 적합하다”며 “관련 시나리오도 많이 개발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생각으로 톡톡 … 신나는 게임

    마우스나 키보드 없이 뇌파만으로 조정하는 게임 ‘story of god’의 주요 장면들.

    그동안 뇌파를 직접 사용한 것은 아니지만, 뇌 기능을 활용한 게임 콘텐츠는 끊임없이 개발돼왔다. 특히 2007년 출시된 닌텐도 ‘매일매일 DS 두뇌트레이닝’은 게임으로 뇌를 단련할 수 있다는 내용으로 빅히트했다. 이 소프트웨어는 기억력과 의사소통 능력을 맡는 뇌의 전두엽을 활성화한다는 원리를 담고 있다. 간단한 계산과 ‘소리 내어 문장 읽기’ 등을 통해 자신의 뇌 연령을 알아볼 수 있게 해 사람들의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시니어 포털사이트 ‘유어 스테이지’(www.yoursta ge.com)도 치매를 예방하고 두뇌를 훈련하는 게임 콘텐츠를 제공한다. 게임을 시작하기 전 사용자의 성별, 학력, 출생연도, 난이도를 입력한다. 게임을 종료하면 본인의 성취도는 물론, 동일한 조건의 사람들과 비교해 자신의 위치가 어느 정도인지를 알 수 있다.

    게임과 뇌의 상부상조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도 ‘생활의 게임 The브레인’이라는 두뇌게임을 즐길 수 있다. 이 게임은 서울대병원 임상인지신경과학센터(Clinical Cognitive Neuro science Center·CCNC)에서 감수했다. 게임 결과를 통해 논리수리력, 공간지각력, 작업기억력, 주의집중력, 집행력 등 본인의 ‘브레인지수’를 알 수 있다. 또 특정 능력을 높일 수 있도록 기획된 게임도 많다. 만일 공간지각력이 낮다면 그것을 높일 수 있는 게임을 하면 된다. 게임마다 요구되는 능력과 그것을 담당하는 뇌의 부위를 설명해놓아, 해당 게임이 뇌 기능에 어떤 도움을 주는지 바로 알 수 있다.

    이처럼 게임과 뇌의 ‘상부상조’는 앞으로 더 많아질 전망이다. 공상과학(SF) 영화 속 주인공처럼 기계에 가만히 앉아 상대방과 격투게임을 하는 날이 조만간 올지도 모른다. 그렇게 컴퓨터와 뇌가 서로 소통해 컴퓨터에 입력된 나의 생각이 컴퓨터를 거쳐 다시 내 뇌에 입력된다면 어떨까. 내가 케이크를 먹고 싶다고 생각하면 컴퓨터 속 나의 가상인물이 케이크를 먹고, 그가 포만감을 느끼면 나도 배부르다고 느끼는 컴아일체(com我一體)의 순간이 오는 걸까.

    ‘Story of god’ 주요 내용

    스테이지1 게임의 동작 원리 설명. 사람을 창조하고 토지를 비옥하게 만든다. 기상이변으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해 믿음을 얻는다.

    스테이지2 논과 밭을 일구고 사람 수를 늘리는 게 목표. 스킬 버튼을 조합해 다양한 농작물을 경작할 수 있다. 기회를 활용해 풍년이 오면 사람들의 믿음지수가 높아지고 점수 획득도 가능하다. 문명을 정착시키면 추가 스킬과 특수 아이템도 획득할 수 있다.

    스테이지3 천재지변으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하는 것이 목표. 스킬 버튼을 사용해 집과 동물을 추가하고, 인구 육성 및 아이템을 활용해 갈등 요소와 싸운다. 싸움에서 이기면 점수 획득. 스테이지 종료 후 누적 점수를 통해 자신의 집중력을 확인할 수 있다.

    출처 | ‘뇌-컴퓨터 인터페이스를 사용한 공간 기반 게임 설계’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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