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책의 키워드는 ‘반증’이다. 포퍼의 철학은 ‘반증’이라는 개념을 핵심으로 하는데, 그는 “과학은 ‘반증’의 가능성을 잉태하고 있기 때문에 과학”이라고 말한다. 즉, 과학과 다르게 종교와 전제적 이데올로기는 ‘필연’을 전제한다. 종교에서 오류는 존재하지 않으며, 결정론적 철학은 이미 그 자체로서 과학이 아니다. 포퍼는 발전과 발달은 새로운 이론의 확립과 그에 대한 반증에 기초한다고 믿는다.
이 점에서 일반화를 바탕으로 한 귀납적 사유는 과학이 아니다. 예를 들어 ‘돌은 물에 가라앉는다’는 명제를 보자. 우리는 경험에 의존해 이 명제를 법칙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화산지대에는 물에 뜨는 돌 ‘부석(浮石)’이 있다. 이 경우 ‘돌은 물에 가라앉는다’는 명제는 폐기된다. 다음 절차는 ‘왜 그 돌이 물에 뜰까?’에 대한 연구. 그 결과 화산폭발 때 돌에 형성된 기포가 돌을 물에 뜨게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지질학 연구의 새로운 실마리가 제공된 것. 이것이 과학적 입장이다. 하지만 종교는 다르다. 오류는 부정되고 믿음은 무조건적이다. 그리고 이는 발전을 가로막는다. 이에 해당하는 대표적 철학자가 바로 이 책에서 논박의 대상이 된 플라톤과 헤겔, 마르크스다. 플라톤은 이데아를 상정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거대한 건축물일 뿐이고, 건축물은 이상의 세계를 흉내 낸 것이다. 물론 이 건축물이 신의 설계도로 디자인되고 신의 감리를 통해 정교하게 건축된다고 믿는다면 그것은 종교다.
헤겔과 마르크스 역시 마찬가지다. 헤겔은 역사 발전의 법칙성을 주창하고, 마르크스는 헤겔 철학을 바탕으로 인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라는 논지를 펼친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붕괴할 수밖에 없고, 단지 공산주의로 가는 과정에 불과하다. 문제는 이들의 주장이 ‘예언자적 관점’이라는 것이다. 예언자는 반증을 허락하지 않는다. 당장 무엇을 행하든 결국은 역사가 정해놓은 방향으로 갈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포퍼의 논증은 칼날처럼 예리하다. 특히 플라톤과 마르크스에 대한 비판은 반증할 엄두를 내기 힘들 정도다. 이 점에서 이 책의 가치는 밤하늘의 별처럼 빛난다. 그는 전제주의를 반대한다. 포퍼에 따르면 나치, 파시즘, 마르크시즘을 막론하고 반증을 허용하지 않는 사회는 ‘닫힌사회’이며 발전 가능성이 없다. 반면 개인의 자유가 허용되고 반박과 반증이 자유롭게 이뤄지는 사회는 ‘열린사회’이며, 무한한 발전과 진화의 가능성이 있다.

박경철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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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동아 723호 (p81~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