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21

2010.01.26

시궁창에서 ‘강철 꽃’ 피었습니다

스페인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

  • 김지은 MBC 아나운서·‘예술가의 방’ 저자 artattack1@hanmail.net

    입력2010-01-21 18:04: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시궁창에서 ‘강철 꽃’ 피었습니다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의 야경.Photo by David M. Heald.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올해 꼭 가봐야 할 31곳 가운데 서울이 3위에 올랐다고 합니다. 1위 스리랑카의 자랑거리로는 오랜 내전에도 아름답게 지켜낸 자연이 꼽혔습니다. 스리랑카는 섬 전체가 열대 동물원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야생 동물의 천국입니다. 2위 아르헨티나 파타고니아의 경우, 피노 누아와 말벡 등 우수한 품종으로 만든 와인을 마실 수 있는 것은 물론 감각적으로 디자인한 와이너리와 포도밭에 둘러싸인 리조트 등을 이용할 수도 있다고 소개됐죠. 3위 서울은 ‘2010년 세계디자인 수도’로 매력적인 카페와 레스토랑, 아트 갤러리, 세계적인 디자이너 부티크와 패션 명소 등을 즐길 수 있는 도시로 소개됐고요. 여기서 서울의 매력으로 디자인이 꼽혔다는 건 앞으로 우리나라가 어떤 분야에 주력해야 할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대목입니다.

    ‘뉴욕타임스’는 3년 전, 실제로 쇠락일로에 있던 도시가 예술을 ‘수혈’받아 어떻게 기적적으로 부활했는지 대서특필한 적이 있습니다. ‘악취 나는 시궁창’이란 별명으로 불렸던 스페인 북부의 쇠락한 항구도시인 빌바오가 어떻게 세계문화지도 위에 가장 중요한 명소로 이름을 올리게 됐을까요? 빌바오는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도시의 기강산업이던 철강생산과 조선업이 급격히 쇠퇴해 실업률이 25%까지 치솟았습니다. 도시 전체가 산업시대의 종말을 알리는 거대한 무덤이 되고 말았죠. 게다가 빈번히 자행되는 바스크 분리주의자들의 폭탄테러로 그야말로 회생 불능의 도시로 낙인찍혔습니다.

    1991년 빌바오는 절망의 늪에서 도시를 구하는 유일한 방법은 문화산업에 있다는 판단 아래, 구겐하임 미술관 건립 유치에 뛰어들었습니다. 모두 200여 개의 도시와 경쟁하는 상황에서 빌바오는 1500억원이나 되는 건립비용 때문에 주민 90%가 반대하는 난관에 부딪히기까지 했죠. 하지만 빌바오 재생의 기획과 실행을 맡은 기관인 ‘빌바오 메트로폴리스-30’과 ‘빌바오리아 2000’의 예술에 대한 신념은 결국 ‘이 시대 최고의 건축물’을 빌바오에 세울 수 있도록 했습니다.

    비행기 외장재인 티타늄을 0.5mm 두께로 잘라 3만3000여 개를 붙여 만든 이 미술관은 보는 위치에 따라 바다 위에 떠 있는 범선처럼, 물 위를 퍼덕이는 물고기처럼, 혹은 막 피어나는 한 송이 꽃처럼 보입니다. ‘강철 꽃’이라는 별명을 얻은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이 들어선 이후 인구 35만의 빌바오 시는 연간 100만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아 연간 2800여 억원의 수입을 올리고 있습니다. ‘빌바오 효과’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기까지 했죠. 급기야 2006년에 바스크 무장단체들은 영구휴전을 선언했습니다. 빌바오라는 도시가 어디에 붙어 있는지조차 몰랐던 세계인들은 이제 빌바오에 가봤는지 여부를 문화적 소양의 척도로 삼을 정도입니다.

    지금 빌바오 시는 구겐하임 미술관을 도시 전체의 변화를 가속화하는 엔진으로 삼고 있습니다. 케사르 펠리가 디자인한 40층짜리 빌딩, 노먼 포스터가 디자인한 지하철 ‘빌바오 메트로’ 2호선, 이소자키 아라타가 디자인한 쌍둥이 주거용 타워 등을 세우며 새로운 10년을 준비하고 있죠. 또 산업폐기물로 가득했던 네르비온 강의 정화사업을 꾸준히 진행한 결과 지금은 물고기가 살 정도로 수질이 개선됐다고 합니다.



    과감한 실험정신과 지역 전체를 아우르는 장기적인 문화투자가 얼마나 아름다운 도시를 만드는지, 한 편의 ‘환상시’ 같은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을 보며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 기적을 동시대에 목격하는 게 먼 나라의 일만은 아니길 바랍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