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20

2010.01.19

사교육 열차에서 뛰어내려라!

‘굿바이 사교육’

  •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khhan21@hanmail.net

    입력2010-01-14 20: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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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교육 열차에서 뛰어내려라!

    이범 외 지음/ 시사IN북/ 331쪽/ 1만3000원

    큰딸이 고등학생 시절, 딸아이는 수학이 부족하다며 수학만 과외를 하게 해달라고 졸랐다. 나는 스스로 해결하는 힘을 키우라며 냉정하게 거절했다. 그때 아이에게 제대로 설명하지는 못했지만 제 자식만 지나치게 돌보는 사람들의 행태가 싫어 나만이라도 그렇게 하고 싶었다. 아이는 섭섭해했지만 결국 자신을 이겨냈다. 그리고 최상위 대학에는 진학하지 못했지만 대학 다닐 때부터 준비해 지금은 파리에서 생활비 벌어가며 건축대학원을 다니고 있다.

    필자는 고1 때부터 입주 가정교사를 했다. 대학시절에도 과외로 학비를 벌었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싫었다. 그래서 고학년이 되고는 아예 다른 지방으로 가서 공사판을 전전했다. 물론 많은 경험을 쌓아 소설을 쓰겠다는 마음도 없지 않았지만, 그 덕에 세상을 이겨낼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

    ‘굿바이 사교육’을 읽으면서 내 어린 시절과 아이들 생각을 했다. 그래도 그때는 양반이었다는 생각도 했다. 지금은 어떠한가. 공교육비의 몇 배나 되는 수십조 원이 한 해 사교육비로 들어간다. 대학은 우수한 학생을 뽑을 수 없는 제도만 탓하지 학생들을 어떻게 가르칠지에 대한 고민은 하지 않는다. 신자유주의 경쟁체제를 도입한 대학에서는 인건비를 줄이려고 강의의 3분의 2를 ‘워킹푸어(근로빈곤층)’나 다름없는 시간강사에게 맡기고 있다.

    힘들게 대학에 진학, 졸업한다 해도 취업이 정말 어렵다. 그러니 취업 사교육비가 또 만만치 않다. 각종 자격증 취득비, 해외 어학연수비 등으로 교문을 나서는 것이 두려워 대학원에 진학하거나 휴학으로 시간 낭비하는 비용까지 합하면 사교육비는 천정부지로 뛰어오른다. 1년에 8만명 이상 배출되는 석ㆍ박사 중 얼마나 많은 사람이 준실업자로 전전하는가. 게다가 괜찮은 직장에 취직했다 해도 셋 중 하나는 1년 안에 그만두거나 퇴출당한다.

    이런 현실을 어떻게 개혁할 것인가. ‘굿바이 사교육’은 사교육 없이 좋은 대학에 보내는 비결이나 학원을 망하게 하는 방법을 담고 있지 않다. 아이들을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창의적 인간으로 길러내는 동시에 사교육 부담을 가져오는 무익한 입시전쟁을 끝내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교육평론가, 영어교육 전문가, 교사, 학자, 교육운동가 등 교육 관계자 7인이 7가지 무지개 빛깔처럼 각기 다른 시각에서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방법론을 털어놓는다. 우리 시대의 가장 강력한 우상이라는 입시경쟁 구조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는 것부터 시작해 공동체와 체험 중심 교육, 부모의 현명한 선택, 잘못된 현실을 개혁하기 위한 공동의 행동방향 등 다양한 대안을 제시한다.



    인디고서원의 허아람 대표는 ‘과열한 경쟁 구도, 학벌 중심 사회, 천박한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지독히도 낭비적이며 강요된 전쟁’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어느 누구도 이 전쟁에 기꺼운 마음으로 승리를 위해 피 흘리고 싶지 않아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왜 모두 전쟁을 멈추려 하지 않을까요?”라고 질문을 던진다.

    한 교사는 “달리는 기차를 이길 수 있다고 믿고 아이들이 선로를 열심히 달리고 있다”며 지금의 교육현실을 표현했다. 맞다. 기차와 아이들의 간격은 갈수록 좁아진다. 이미 아이들의 자살률은 세계 1위이며 수많은 아이가 정신질환이나 간질을 앓고 있다는 보도가 나온다. 그런데도 교사나 학부모는 아이들에게 네가 분명 이길 수 있다고 소리친다. 이우학교 이수광 교감은 이제 ‘탈선(脫線)’하는 것만이 살길이라고 말한다.

    탈선하면 희망은 있는가. 허 대표는 ‘자발적이고 즐거운 배움의 장에서 삶의 소중한 가치와 지혜를 배우는 것, 개인이 가진 소중한 잠재력과 독창성을 이끌어내는 가르침, 그것이 서로 자유롭게 소통돼 삶의 총체적인 문제를 해결해나갈 수 있는 개인으로 성장하게 하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허 대표는 그 일을 위해 20년 넘게 헌신했으며 상당한 성과도 내고 있다. 허 대표뿐 아니라 이 책의 저자들은 나름의 성과를 이룬 분들이다. 하지만 그런 공간은 너무 적다는 것이 현실이다.

    책을 읽다 보면 사교육 문제의 본질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다만 문제 해결을 위한 실천이 문제다. 그래서 아이를 탈선하게 만드는 것이 두렵기만 하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송인수 공동대표는 “세상을 바꾸는 진정한 힘은 가치 있는 일에 자신을 던질 수 있는 용기”이며 “진정한 용기는 너무너무 힘들고 두렵고 떨리지만,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삶의 자리에 나를 이동시키는 선택”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내 자식부터 달리는 기차의 선로에서 내려오게 하는 용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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