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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 강유정의 ‘영화에 수작 걸기’

그래, 내게도 아홉 살 욕망 있었음을

롭 마셜 감독의 ‘나인’

  • 강유정 영화평론가·국문학 박사 noxkang@hanmail.net

그래, 내게도 아홉 살 욕망 있었음을

그래, 내게도 아홉 살 욕망 있었음을

현실과 욕망 간의 화해를 다룬 영화 ‘나인’ 속 한 장면. 다니엘 데이 루이스, 니콜 키드먼, 페넬로페 크루즈 등 세계적 배우가 총출동한다.

내 정신적 나이는 몇 살일까? 여기, 오십에 가까운 겉모습과 달리 마음속 나이는 아홉 살인 남자가 있다. 아홉 살은 어떤 나이였던가? 엄마의 사랑과 보호가 훈육보다 따뜻했던 시기, 이제 막 학교에 들어가 엄마의 법이 아닌 세상의 언어를 배우던 시기, 하고 싶은 대로 하면 그래서는 안 된다고 혼나던 때, 아이가 세상과 만나는 나이가 바로 아홉 살일 것이다.

롭 마셜 감독의 영화 ‘나인’은 ‘9’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로 구성된 뮤지컬이다. 페데리코 펠리니의 영화 ‘8과 1/2’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펠리니의 이야기를 전폭 수용하면서 또 다른 이야기로 창조하고 있다.

원작 ‘8과 1/2’은 법이 허락하는 아내와 법으로 금지된 애인 사이에서 갈등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 영화 속 주인공 귀도는 철이 없을 뿐 아니라 무책임하다. 그는 시골 온천 호텔 부근에 애인을 데려다놓고 욕망을 채우면서 한편으론 그녀를 외롭고 비참하게 만든다. 비참해지는 것은 애인만이 아니다. 몰래 여자를 만나는 남자는 아내에게 씻을 수 없는 굴욕이기도 하다.

하지만 무책임하지만 매력적인 남자는 ‘과연 꼭 하나를 선택해야 하느냐’라고 되묻는다. 롭 마셜의 영화에서 세상의 목소리는 “당신들은 정말 이해할 수 없어”라는 의사의 말로 대표된다. 의사의 말은 아내에게 충실해야 하고, 만일 연애를 한다면 깔끔하게 해야 한다는 세속의 법을 보여준다.

반면 귀도는 연애 감정은 그렇게 간단히 처리할 문제가 아니라고 말한다. 사실 귀도는 애인도 사랑하고 아내도 사랑하며, 둘 다 필요하지만 둘 다 버겁다. 애인은 섹스에 대한 본능적 욕망을 충족시켜주고, 아내는 적절할 때 조언을 해주는 솔메이트다. 둘 다 정말로 소중하다.



이 복잡한 감정은 아홉 살쯤 해변에서 만난 창녀에 대한 기억으로 소실된다. 아홉 살 소년 귀도는 집시 창녀 사라기나를 찾아가 그녀의 춤을 본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수사들은 귀도를 엄벌에 처한다. 그저 사라기나와 재미있게 놀았던 귀도에게 체벌은 공포이자 의문으로 남는다. 그것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사는 것은 곧 세상에서는 패륜으로 불릴 수 있다는 사실을 직감하게 한다.

귀도는 말한다. “아홉 살 이후, 귀도의 인생은 사라기나를 찾아가고 싶은 아홉 살 소년의 마음과 수사들의 체벌을 두려워하는 또 다른 귀도 사이의 갈등이었다”라고. 그래서 그는 누구에게도 안주하지 못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불안을 떨치지 못한다. 원하는 것을 하면 죄책감이 따라오고, 그렇다고 욕망을 눈감고 살기에는 그것이 너무나 간절하다.

이쯤 되면 ‘나인’은 아홉 살의 충동을 마음 깊이 숨겨두고 사는 ‘우리’의 갈등과 죄책감을 대변하는 작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롭 마셜은 유희와 죄책감의 골 사이를 화려한 볼거리와 음악으로 채워넣는다. 7명의 세계적 여배우가 펼치는 춤과 노래는, 결국 우리가 영화에서 얻고 싶어 하는 것이 사라기나의 춤이었음을 알려준다. 현실에서 얻을 수 없는 꿈의 충족, 욕망과의 만남. 영화는 이것을 가능하게 해준다.

영화에 대한 영화, 영화 만들기에 대한 영화라고 할 수 있을 ‘나인’은 세상에서 무언가를 창조하며 사는 사람들의 고통을 화려하게 수놓는다. 수십만 원을 호가하는 초호화 캐스팅의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싼값에 즐길 수 있는 기쁨도 준다. 하지만 무엇보다 ‘나인’은 매일 아침 넥타이를 매고 통근버스에 오르는 ‘우리’에게도 아홉 살 유희의 시절이 있었음을 깨닫게 해준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감독 귀도가 자신의 어린 시절 귀도를 데리고 촬영에 들어가듯 우리는 아홉 살 순진하고 충동적이던 ‘나’를 데리고 출근해야 한다. 만일 아홉 살 귀도가 사라진다면 일상은 그야말로 재미없는 톱니바퀴가 될 것이니 말이다.



주간동아 2010.01.19 720호 (p74~74)

강유정 영화평론가·국문학 박사 noxk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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