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19

2010.01.12

덩치는 컸지만 식민교육 상처는 남아

학교 제도·학교 차별·서열제 등 일제 잔재 … 자율성 확대·줄 세우기 폐지 시급

  • 박재윤 한국교육개발원 수석연구위원 jypark@kedi.re.kr

    입력2010-01-07 14: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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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덩치는 컸지만 식민교육 상처는 남아
    1910년 일본은 이미 공교육 체제를 갖추고 있었다. 일본 문부과학성의 ‘학제 100년사’와 그 자료집을 통해 당시 교육 실태를 살펴보면 1910년(명치 43년) 전국의 소학교는 2만5910개에 달했고 교원은 15만2011명, 학생은 686만1718명이나 됐다. 뿐만 아니라 중학교 302개(학생 12만1777명), 고등여학교 193개(6만4809명), 실업학교 203개(4만372명), 고등학교 351개(6만3421명), 대학교 3개(5514명), 사범학교 80개(1만3401명) 등이 운영됐다.

    반면 한국의 교육기관은 88개(1905년 당시 자료 참고)의 공립소학교와 일제 통감부에서 설립한 97개의 공립보통학교가 사실상 전부였다. 그로부터 100년이 지난 오늘날 한국의 교육 규모는 엄청나게 성장했다(‘표’ 참조). 하지만 한국의 인구가 1억2000만명에 달하는 일본 인구의 40% 수준이어서 규모 면에서는 역부족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교육제도는 어떨까. 한국과 일본의 교육제도는 겉으로는 비슷해 보이지만 내용적으론 큰 차이가 있다. 먼저 한국과 일본의 교육관계법을 보면 ‘교육기본법’이라는 같은 이름의 법이 있다. 또 일본의 ‘학교교육법’ ‘생애학습의 진흥을 위한 시책의 추진체제 등의 정비에 관한 법률’과 한국의 ‘초·중등교육법’ ‘고등교육법’ ‘평생교육법’ 등의 내용이 유사하다.

    그러나 일본에는 학교교육을 제외한 조직적인 교육활동으로 사회교육에 관한 법률(‘사회교육법’)이 있는 반면, 우리나라에는 ‘평생교육법’에서 평생교육을 사회교육으로 정의할 뿐 별도의 사회교육법이 없어 법체계상 혼동되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한국 교원 자격제도 vs 일본 교원 면허제도



    ‘고등학교’라는 제도도 양국이 유사해 보이지만 다른 점이 적지 않다. 한국의 고등학교는 종류는 많지만 대개 단일학과와 단일과정 중심의 학교로 법제화돼 있다. 반면 일본의 고등학교는 단일화돼 있는 대신, 다학과(多學科) 및 다과정(多課程)을 설치할 수 있게 했다. 때문에 한국에서는 고등학교 종류가 너무 많아 혼란스럽지만, 일본에서는 고등학교의 종류는 단순하고 학과나 과정이 다양할 뿐이다. 고등학교가 지역 실정이나 교육적 요구에 따라 다양한 학과나 과정을 쉽게 설치 및 폐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면 한국의 고등학교 제도는 일본에 비해 낙후했다고 볼 수 있다.

    초·중·고교생 성적 평가방식도 한국과 일본이 비슷해 보이지만, 내부를 들여다보면 사뭇 다르다. 한국은 상대평가를 강력히 실시하는 데 반해, 일본은 중학교까지는 상대평가를 억제하고 있다. 교원자격과 관련해 한국은 교원 ‘자격제도’가 있고 일본은 교원 ‘면허제도’가 있다. 양자는 개념적으로 다소 다르다.

    한편 한국의 공립학교 교직원은 국가공무원이지만, 일본에서 이들은 지방공무원이다. 교원의 신분은 교육의 ‘지방자치’와 관련 있는 것으로서 교원의 신분법제만 본다면 일본이 한국보다 교육의 ‘지방자치’ 면에서 앞서 있다.

    덩치는 컸지만 식민교육 상처는 남아

    1 서울 서초구민회관에서 열린 고교 입학설명회에서 학부모들이 고교선택제 시행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2 일본 한 고등학교에서 교사가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일본은 고등학교 종류가 단일하다.

    일본, 2003년 국립대학 일시에 법인화

    사립학교에 대한 행정에도 한국과 일본은 차이가 있다. 한국의 사립 초·중·고교에 대한 행정은 시·도 교육청 소관이지만 일본은 시·군 등 일반 자치단체 소관으로 돼 있다. 한국의 초·중등 사립학교는 공립학교에 대해 일종의 ‘대용학교’ 기능을 하는 점에서 일본에 비해 특색이 있다.

    사립학교 행정체계는 사학 교직원의 근로관계에 관한 법률 적용이나 노동조합 가입 등에 영향을 주게 되는데, 한국의 사립학교 교직원은 공립학교 교직원과 거의 같은 지위를 갖지만 일본의 사학교직원은 일반 근로관계법 적용 대상이다.

    고등교육 분야에서 특히 다른 점은 일본은 이미 2003년에 전국 90여 개의 국립대학을 일시에 법인화해 소속 교직원을 모두 비(非)공무원화하고 근로관계법을 적용받는 체제로 전환한 반면, 한국은 이제 몇몇 국립대학에 시범적으로 법인화를 시도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한국 교육이 일본보다 발전하려면 식민지 시대에 형성된 교육법제의 잔재를 청산하고 새로운 정체성을 확립해가야 한다. 아직도 존재하는 한국의 전통적인 학교운영제도나 학교차별 풍토, 그리고 각종 국가고시 등 공무원시험을 통한 출세 위주의 교육 풍토는 식민지 시대의 교육 유산으로부터 형성된 부분이 적지 않다. 식민교육의 핵심은 식민지 백성의 일부를 뽑아 통치에 동참시키는 것으로, 선발을 위해 교육이 이용된 측면이 컸다.

    이러한 식민교육의 잔재로 나타난 폐단이 있다. 학교의 종류를 엄격히 구분해 학교 자체적으로 다양한 학과나 과정을 설치 및 폐지하지 못하도록 하는 전통이 그렇고, 대학 서열화 구조도 그러하며, 일류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성적순으로 줄 세우는 풍토 또한 그러하다.

    앞으로 이 같은 식민지 교육제도의 잔재를 찾아내 개선하는 노력이 이뤄져야 한다. 특히 교육법제도상 학교운영의 자율성을 확대하는 일, 학교의 종류를 늘리는 것을 지양하는 일, 학교 간 차별 풍토를 제거하는 일 등이 우선적으로 처리돼야 할 일이다. 나아가 각급 학교가 다양한 프로그램을 창의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한편으론 그러한 프로그램을 합리적으로 평가하는 체제 정립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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