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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 김광화의 슬근슬근 자급자족, 슬렁슬렁 보물찾기

사랑과 믿음의 ‘쐐기’ 상상 뛰어넘는 힘 발휘

  • 김광화 flowingsky@naver.com

사랑과 믿음의 ‘쐐기’ 상상 뛰어넘는 힘 발휘

사랑과 믿음의 ‘쐐기’ 상상 뛰어넘는 힘 발휘

1 장작이 쌓이듯 믿음도 행복도 쌓인다면 얼마나 좋을까. 2 나무는 마르면서 저절로 금이 간다. 중심에서 방사상으로 갈라지는 참나무. 3 세월이 흐르면서 저절로 갈라지는 아까시나무. 이 정도면 손으로도 장작을 벌릴 수 있다. 4 곁가지가 있다면 먼저 그 중심에서 나무 중심을 향해 갈라야 일이 쉽다. 5 쐐기는 힘을 낭비하지 않고 차곡차곡 쌓이게 한다. 6 집중해서 망치로 쐐기를 내려친다.

땔감을 마련한다고 가끔 도끼질을 한다. 굵지 않은 나무는 도끼질이 쉽다. 도끼라는 도구는 끝이 아주 뾰족해 나무를 잘 파고든다. 종아리 굵기의 나무라면 도끼질 한 방에 갈라진다.

하지만 굵기가 허벅지만 하다면 한두 번 내려쳐서는 안 갈라진다. 여러 번 도끼질을 해야 하는데, 같은 곳을 반복해서 때리기가 참 어렵다. 먼저 맞은 그곳에 다시 날카로운 도끼날이 그대로 맞는다는 보장이 없다. 힘들게 휘둘렀는데 엉뚱한 곳에 맞으면 맥이 빠진다. 그러다 알게 된 것이 쐐기다. 쐐기는 역삼각형(▽)으로 아래쪽이 뾰족해 나무가 잘 벌어지게 한다. 이 쐐기를 망치로 박아넣으면 나무가 쉽게 갈라진다. 또한 쐐기는 도끼날처럼 생겼지만 구멍이 뚫려 있지 않아 큰 힘에도 쉽게 부서지지 않는다.

도끼질만으로 장작을 패다 쐐기를 써보면 그 효과가 얼마나 좋은지 입이 절로 벌어진다. 쐐기는 역학적으로 ‘빗면의 원리’를 이용해 적은 힘으로도 큰 효과를 내는 연장이다. 쐐기돌 하나면 미끄러지는 차를 멈출 수 있고, 작은 쐐기로 단단한 바위를 가르기도 하지 않는가. 학창 시절에 다 배운 이야기인데, 지금 일상에서 잘 쓰니 새삼스럽다.

그런데 이 빗면의 원리는 도끼날 자체에도 적용돼 있다. 다만 도끼와 쐐기의 큰 차이라면, 쐐기는 힘의 낭비가 없다는 사실. 도끼는 한번 내려치면 다시 나무에서 빼내야 다음 도끼질을 할 수 있으니 힘이 많이 든다. 하지만 쐐기는 한자리에서 계속 파고든다. 망치로 힘을 들인 만큼 그 힘이 고스란히 쐐기에 보태진다. 사람 몸통만 한 나무도 쐐기를 쓰면 쉽게 가를 수 있다.

쐐기 쓰려면 나뭇결부터 알아야



이렇게 쐐기를 쓰다 보니 우리네 ‘삶에서도 쐐기 노릇을 하는 게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 들인 공이 흩어지지 않고 쌓이며, 그 다음을 더 수월하게 하는 게 무엇일까.

내게 그것은 ‘믿음’이다. 하나의 믿음은 그 믿음이 쐐기가 돼 또 다른 믿음을 더 크게 한다. 이런 예는 아주 많다. 농사에서 흙이 건강하게 살아나면 곡식이 건강하게 자란다. 건강한 곡식은 건강한 똥오줌이 되고, 이는 다시 땅을 더 건강하게 한다. 흙을 믿을 때 오는 그 힘은 상상을 넘는다.

아이들에 대한 믿음도 마찬가지. 부모 욕심으로 하는 잔소리보다 아이에 대한 믿음이 아이를 더 잘 자라게 한다. 학원을 보내 억지로 시키기보다 스스로 배우고자 하는 본성을 살려주면 점점 아이에 대한 믿음도 커진다.

그렇다면 믿음이란 쐐기를 아무 곳에나 박아도 될까. 당연히 아니다. 다시 나무를 가르는 쐐기질을 보자. 쐐기가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자면 나무 성질을 알아야 하고, 쐐기에 힘을 가하는 망치질 자세도 발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쐐기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튀어 사람 몸을 다칠 수 있다. 이럴 때는 쐐기가 도끼보다 더 위험하다.

나무는 고유한 성질이 있어 결대로 갈라진다. 따라서 쐐기를 장작의 세로 방향으로 박아야 한다. 만일 가로로 박는다면 나무의 탄성으로 쐐기가 들어가지 않을뿐더러 반작용으로 튕겨질 수도 있다. 그 다음 요령은 쐐기가 나무 중심을 향해야 한다는 것. 죽은 나무는 그 중심에서 방사상으로 갈라지는 성질이 있다. 쓰러진 지 오래된 나무는 마치 도끼질을 한 것처럼 제 스스로 틈이 크게 벌어질 정도. 그러니 갈라진 금 가운데 가장 굵은 금에다 쐐기를 놓고 치면 일이 쉽다.

삶의 중심·생명의 근원으로 진입

삶에 대한 믿음도 그렇다. 어쭙잖은 믿음이란 “도끼질에 제 발등 찍힌다”는 말과도 통한다. 믿음 역시 쐐기와 마찬가지로 삶의 중심, 생명의 근원을 향할 때 쐐기 노릇을 톡톡히 한다. 죽은 나무가 저절로 갈라지는 성질이 있듯 산 생명은 더 잘 살고 싶은 생물학적인 본성이 있다. 바로 이 본성에 대한 믿음을 쐐기로 삼을 때 제대로 효과가 나지 싶다.

그런데 나무에 곁가지가 많다면 중심은 더 복합적이다. 곁가지가 하나라면 그 곁가지의 중심에서 나무 중심을 향해 일자로 쐐기를 박으면 된다. 곁가지가 둘 이상이고 굵기가 비슷하다면 그 둘 사이에, 차이가 난다면 굵은 가지 중심에 쐐기를 박는다. 쐐기를 박을 때는 망치의 힘을 수직으로 받을 수 있도록 반듯하게 세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망치질에 따라 쐐기가 나무를 파고드는 게 아니라 나무를 벗어나 다른 곳으로 빠져나간다. 쐐기를 망치로 때릴 때 사람의 자세도 중요하다. 쐐기에 집중하며 허리와 온몸의 탄력을 주면서 망치를 내려쳐야 한다. 글로 풀어내자니 복잡한 것 같지만 일상에서는 아주 순간적인 판단이자 움직임이다. 내가 이렇게 쐐기에 대해 생각을 정리하고 나니 진리를 발견한 것처럼 흥분돼 아이들에게 생각을 물었다.

“너희는 ‘삶의 쐐기’가 뭐라고 생각하니?”

아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먼저 답을 한다.

“행복이요.”

그러자 딸은 “배움이 아닐까요?”라고 말한다.

그렇구나. 아이들 말도 다 맞는 것 같다. 한 번의 행복이 쐐기가 돼 또 다른 행복으로 파고든다. 배움도 그렇지 않나. 하나의 배움이 밑거름이 되면 다음 배움은 그 깊이와 폭이 한결 깊어지고 넓어진다. 그러다 어떤 이치가 하나로 꿰지면 나무가 쩍 갈라지는 것처럼 쾌감이 온다.

삶의 쐐기가 되는 게 또 뭐가 있을까. 자기 삶만큼 그 답이 있지 싶다.



주간동아 2009.12.29 717호 (p82~83)

김광화 flowing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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