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08

2009.10.27

처절한 해전, 침묵의 아우성

사이 톰블리의 ‘레판토’

  • 김지은 MBC 아나운서·‘예술가의 방’ 저자 artattack1@hanmail.net

    입력2009-10-21 13: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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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절한 해전, 침묵의 아우성

    레판토, 2001

    지난 5월 독일 뮌헨에 문 연 브란트호어스트 미술관은 외관이 아름다울 뿐 아니라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700여 점이나 소장, 세계인의 미술 성지로 각광받고 있다는 이야기를 지난주에 했었죠? 미술관 아래, 위층을 꽉 채워도 소장품의 4분의 1밖에는 전시할 수 없을 정도라니, 소장 작품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 갈 겁니다.

    그런데 브란트호어스트 미술관은 다른 공간과는 별도로 꼭대기 층을 한 사람의 작가만을 위해 특별히 내줬는데요. 그는 바로 미국 작가 사이 톰블리(Cy Twombly·81)입니다. 우리에게는 덜 알려진 작가지만, 로버트 라우셴버그나 재스퍼 존스와 함께 1950~60년대 미국 미술을 주도하던 대표 작가 중 한 사람입니다.

    그는 군대에서 암호병으로 복무하던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표현양식인 기호 제작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무엇을 그릴 것인가’가 아니라 그리는 행위 자체에 주목하며 글과 그림, 낙서와 드로잉이 혼합된 양식을 선보였는데요. 여느 표현주의 작가와 달리 작품 속에 깊은 서정성이 담긴 것이 특징입니다.

    브란트호어스트 미술관에 영구 전시될 작품은 거대한 12개의 캔버스로 이뤄진 ‘레판토’(2001)입니다. 미술관 맨 위층에 들어서면 관객들은 작품이 만들어낸 파노라마의 현장 한가운데 서게 됩니다. 자신을 둘러싼 압도적인 풍경에 주춤하던 관객들은 12개 시리즈를 하나의 작품으로 눈에 담기 위해 잠시 뒤로 물러서게 됩니다. 그런 후 하나하나 캔버스 앞으로 다가가 봅니다.

    흘러내리는 물감, 잡을 수 없는 형태, 화염과 피, 격랑이 이는 바다를 연상하게 하는 색채들이 ‘침묵의 아우성’을 만들어냅니다. 그제야 왜 작품의 제목이 레판토인지 알게 되죠. 레판토 해전은 1571년 베네치아공화국과 스페인 왕국, 제노바공화국 등이 연합한 신성동맹국과 오스만 제국이 벌인 역사적인 해상전투입니다. 전투에서 승리한 신성동맹국들은 지중해의 패권을 장악하게 됐죠.



    전투 장면을 재현적으로 표현해온 전통 역사화와 달리, 이 작가는 추상적 형태와 과감한 색채를 통해 은유적으로 표현했는데요. 흘러내리는 검붉은 색과 오렌지색은 부상자와 전사자가 흘린 피로, 푸르스름한 배경은 구름 낀 하늘과 격랑이 이는 바다로, 그 밖의 추상적 형태들은 부서진 돛대와 노가 달린 선체들로 볼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은 하루 8000여 명의 전사자를 냈다는 당시 전투의 처절한 현장을 현재 시점으로 옮겨놓음으로써 진부한 역사화의 장르를 혁신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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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호전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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