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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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역력에 신종플루 답이 있다”

한의학 눈으로 보면 새로운 ‘염병’ … 두려움에 떨지 말고 생활건강수칙 지켜야

  •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전 대구한의대 교수 lsk2302003@hanmail.net

    입력2009-09-02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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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면역력에 신종플루 답이 있다”
    초·중·고교가 개학을 했지만 며칠째 학생들이 등교하지 못하는 학교가 적지 않다. 마치 전쟁이 나서 공습 대피를 한 사람들처럼 다들 ‘신종플루’ 앞에서 집단적 공포에 빠져들었다. 정확히 알지 못하니 막연한 오해만 커져간다.

    두려움에 떠는 사람들에게 유일한 희망은 항바이러스 제제인 타미플루다. 그들은 타미플루만 먹으면 신종플루 바이러스를 죽이거나 예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타미플루의 치료 기전은 바이러스를 죽이거나 예방하는 개념과는 다르다. 타미플루는 바이러스가 인체 세포에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발목을 잡는 기능을 할 뿐이다. 이렇게 하면 바이러스는 더 이상 복제를 하지 못하고 사멸한다.

    신종플루와 타미플루, 그 논란의 중심에 지금껏 양방만 있었다. 타미플루를 만들어 신종플루를 치료하는 것은 응당 양방의 임무이며, 한의학은 아무런 구실도 못하는 양 매도됐다. 하지만 신종플루의 치료약으로 알려진 타미플루가 한약재 ‘대회향(大茴香)’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회향은 ‘스타아니스’라고도 불리는 향신료. 베트남 수프나 중국식 돼지고기 요리에서 잡냄새를 없앨 때 쓰인다. ‘회향’이라는 이름도 여기에서 유래했다. 한방에서는 이미 회향을 전염병 치료에 사용해왔다. 한의학의 대표적 고전 ‘본초강목’에도 전염병에 회향을 사용한 기록이 나온다. ‘장질부사(장티푸스)나 학질(말라리아) 때문에 발열이 심해 목이나 등으로 열이 오르면 회향을 짓이겨 즙을 복용한다.’

    타미플루 재료는 한약재 ‘대회향’



    신종플루는 계절성 독감처럼 바이러스성 질환이다. 감염 방식은 간단하다. 바이러스가 인체 세포에 침입해 자신을 복제(변이)한 뒤 빠져나와 다른 세포를 감염시키는 과정의 반복이다. 한방에서 보면 신종플루 역시 ‘염병(染病)’, 즉 전염병에 해당한다. 한의학은 면역학에 기초를 두고 있는데 ‘면역(免疫)’이란 한자 자체가 역병(疫病), 즉 전염병을 면(免)한다는 의미. 이처럼 한의학의 탄생이 전염병과 뗄 수 없는 관계임을 고려한다면 신종플루 역시 한의학과 무관하다고는 볼 수 없다.

    한의학 처방의 원조는 잘 알려진 화타나 편작이 아니라 장중경(張仲景·한나라 말 150~219)이다. 모든 처방학의 원조라 할 수 있는 그의 저서는 ‘상한론(傷寒論)’. 이 책의 서문은 왜 그가 의학에 매진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통렬하게 설명한다. ‘나는 종족이 많아 전에는 200명이 넘었다. 그러나 건안 원년 이래 10년도 못 돼 3분의 2가 죽었다. 상한병에 걸려 죽은 사람이 그중 10분의 7이다. 이 책은 모든 병을 낫게 할 수는 없지만 병의 근원을 알 수 있고 절반 정도는 치료에 도움을 줄 것이다.’

    상한(傷寒)은 넓은 의미로는 외감열병(外感熱病·고르지 못한 기후로 생기는 감기)의 총칭이고, 좁은 의미로는 천연두나 페스트 같은 전염병을 의미한다. 한의학은 바로 전염병의 위기 속에서 생존을 위해 몸부림친 현실적인 치료의학인 것이다. 전염병에 대한 면역 연구는 한의학이 시작될 때부터 이미 강조해온 부분이다. 면역은 기본적으로 병원체와 내 몸의 대결이다. 바이러스는 자신을 복제할 서식지로 영양분, 온도, 습도를 제공하는 인체를 선택한다.

    단, 그들은 허약하고 체온이 낮으며 피부가 제 기능을 못하는 인체를 주로 기습한다. 자연에서의 약육강식 법칙처럼 약한 자를 공격하는 것이다. 역사적 사실은 이 같은 사실을 생생하게 증명해 보인다. 중국 역사의 하이라이트인 삼국시대, 조조의 아들 조식(曹植)은 건안 22년에 발생한 역병에 대해 이렇게 썼다.

    ‘건안 22년 전염병이 유행했다. 집집마다 엎어진 시체들의 아픔이 있으며 방마다 통곡하는 슬픔으로 가득 찼다. 대체로 그 병에 걸린 사람들은 베옷을 입고 콩을 먹는, 그리고 짚으로 엮은 집에서 사는 이들이다. 대궐 같은 집에서 솥에 밥을 해먹고 사는 사람이나 요를 두껍게 깔고 자는 사람은 병에 걸린 이가 드물었다.’

    고전 기록은 이미 전염병 예방에 대한 다양한 지혜를 담고 있다. 1525년 발간된 ‘간이벽온방(簡易僻瘟方)’에는 세시풍속과 밀접한 처방들이 기록돼 있다. ‘설날에 파, 마늘, 부추, 염교, 생강 등 다섯 가지 매운 음식을 먹어라. 동짓날 팥죽을 끓여 먹어라. 칠석날 모두가 모여 팥 14매씩을 먹어라. 배추를 잘게 썰어 술에 섞어 먹어라. 솔잎을 잘게 썰어 술에 섞어 먹어라.’

    대부분 맵거나 성질이 뜨거우며 붉은 음식이 위주다. 이 같은 고전 지식들은 대부분 주술적 의미로 이해될 뿐 과학적으로 해석되지 않는다. 타미플루의 원료 물질인 대회향 역시 성질이 무척 뜨겁다. 많이 먹으면 눈이 멀게 된다는 주의 문구가 붙어 있을 정도다. 이 책에 기재된 솔잎도 과학적 근거를 갖고 있다. 타미플루는 대회향의 성분을 정제해 사용하는데 그중 ‘시킴산’이 주성분이다. 시킴산은 소나무, 전나무, 가문비나무에 많이 함유돼 있으며 이런 점을 감안한다면 ‘간이벽온방’의 지혜는 주술적 의미가 아닌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운동, 숙면, 유산균으로 면역력 키워야

    ‘간이벽온방’에는 구체적인 처방도 기재돼 있다. 백출, 부자, 길경, 세신, 오두 등 다섯 가지 독성 약재를 섞어 만든 신명산과 인삼, 복령, 백출, 감초를 섞어 만든 신명단이 그것이다. 모두 몸을 따뜻하게 만들고 피부를 강화하는 약재가 기본으로 구성돼 있다. 신종플루는 지금 엄청난 공포를 유발하고 있다. 공포는 근본적으로 ‘무지’에서 비롯된다. 중세 서양에서 전염병의 공포는 엄청난 부작용을 낳았다.

    심지어 ‘채찍질 교도(敎導)’라는 기묘한 풍속도 있었다. 전라(全裸) 또는 반라(半裸) 상태로 남녀가 소리 없이 참회를 외치면서 가죽채찍으로 자신의 몸을 때리며 마을에서 마을로 무리를 지어 행진한다. 페스트의 유행을 신의 징벌로 여긴 사람들이 이처럼 혹독한 속죄행위로 신에게 구원을 빌었던 것. 비슷한 사례로 ‘죽음의 무도(舞蹈)’가 있다. 마을 사람 전체가 미칠 듯이 춤을 추며 거의 집단 광기에 휩싸이는 것이다.

    전염병이든, 무엇이든 인체의 면역 기전은 똑같은 반응을 보인다. 감기에 걸리면 인체는 열을 올리면서 콧물 같은 점액을 분비한다. 즉 적절한 체온 유지와 피부, 코, 눈 등 외부기관의 점액 분비 능력이 방어의 핵심인 셈이다. 체온 상승에는 운동이 가장 크게 관여하고, 점액 분비에는 채소나 적절한 음식물 섭취가 기본이다. 면역력이 떨어졌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상태일까. 감기에 잘 걸리거나 피부와 입 안, 코가 잘 허는 것, 설사를 자주 하는 것, 정신적 스트레스에 약해 쉽게 화를 내는 것 등이다.

    어떤 새로운 바이러스라 해도 면역체계가 잘 갖춰진 사람은 쉬 공격하지 않는다. 설령 공격당했다고 해도 이를 쉽게 물리칠 수 있다. 면역체계를 개선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매일 운동하고, 쾌면·숙면을 취하며, 몸과 마음의 긴장을 풀면 된다. 그리고 장(腸) 내 환경 개선을 위해 찬 음식의 섭취를 줄이고, 요구르트 같은 유산균을 자주 먹는다. 건강의 지혜와 전염병 예방의 원칙은 평상시 생활습관에 있는 것이지, 특별한 방법이 있는 것이 아니다. 신종플루 역시 면역의 기본 원리를 따른다면 마냥 두려워할 대상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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