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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 흘리는 이란, 6월 항쟁 중

아흐마디네자드 당선 ‘부정선거’ 의혹 … 신정체제 부정, 민주와 자유 요구로 확대

  • 예루살렘=남성준 통신원 darom21@hanmail.net

피 흘리는 이란, 6월 항쟁 중

우리나라 축구대표팀이 이란과의 예선 마지막 경기를 비기며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본선 진출을 예선 무패의 기록으로 확정지은 6월17일, 평시와 다름없던 한국과 달리 이란에서는 수만~수십만명의 성난 군중이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이날 경기에 출전한 이란 축구대표팀 선수 가운데 몇 명이 초록색 손목밴드를 착용하고 있었다. 노란색이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지지자들에게 단순한 노란색이 아니듯, 그들에게 초록색은 그냥 초록색이 아니다. 바로 이날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서 벌어진 시위에 참가한 군중이 착용한 티셔츠, 머리띠, 손목밴드 등도 모두 초록색이었다. 이 초록색은 6월12일 치러진 이란 대통령선거에서 마흐무드 아흐마디네자드 대통령에 도전한 개혁주의 세력의 대표인 미르 호세인 무사비 후보가 선거캠페인 기간에 사용하던 색깔로, 이날 시위는 대선 결과에 대한 항의였던 것이다.

이번 시위는 6월13일 대선 결과가 발표되면서 시작돼 언제 끝날지 모르는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17일까지 8명의 사망자와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하는 유혈사태로 번졌다. 추정 시위 참가자 수는 7만명에서 50만명까지 편차가 심하다. 이는 이란 정부당국이 언론과 방송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특히 외신기자들의 취재에 제한을 가하는 조치를 취함으로써 현장 상황이 정확히 파악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 통제에도 시위 소식 세계로 확산

이란 내무부는 심지어 인터넷 글을 검열하고, 이번 사태와 관련된 글이 유포되지 않도록 일부 해외 인터넷 사이트에 대한 접속도 차단했다. 하지만 다양한 통로로 현 사태에 대한 소식을 퍼나르는 블로거들의 활동을 다 차단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익명의 한 블로거는 이번 시위에 참가하는 군중의 수가 전국적으로 200만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그는 현장에 있지 않고는 알기 힘든 자세한 정황을 소개하면서, 현재 이란에서 차단된 ‘페이스북’ 같은 인터넷 사이트에 자신의 글을 올려줄 것을 해외 누리꾼들에게 부탁하기도 했다.



만일 이번 대선이 중동의 다른 국가, 가령 이집트나 시리아에서 치러졌다면 그 결과를 궁금해할 이유가 없고, 일반인들의 결과 예측이 빗나갈 일도 없다. 90% 이상의 지지율로 현 대통령인 호스니 무바라크와 바샤르 아사드가 당선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 국가에서의 선거는 요식행위에 불과하다. 의회는 거수기 구실만 담당한다.

그러나 의회가 나름대로 제 구실을 하고, 여당과 야당의 구분이 실재(實在)하는 국가의 경우 얘기가 달라진다. 대표적인 중동국가가 레바논과 이란이다. 더욱이 중동국가들은 여론조사를 법으로 금지하거나, 조사기관의 수준이 상당히 떨어지기 때문에 다른 서방민주주의 국가들보다 예측이 더 어렵다. 6월 초에 치러진 레바논 총선에 대해 상당수 서방언론과 전문가, 심지어 정보기관조차 헤즈볼라의 패배를 예측하지 못한 것이 대표적인 예라고 하겠다.

이번 이란 대선에는 총 4명의 후보가 출마했다. 재선을 노리는 아흐마디네자드 대통령과 이란의 최고 군사기관인 혁명근위대 사령관 출신의 모흐센 레자이 후보가 보수진영을 대표한다면,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총리직을 수행하던 무사비 후보와 과거 국회의장을 역임한 바 있는 메흐디 카루비 후보가 개혁진영을 대표했다. 보수와 개혁 진영에서 각각 동수의 후보가 출마했기에 상당수 전문가들은 아흐마디네자드 대통령과 무사비 후보 간 백중세를 예견했다.

이란 경제정책의 실패 때문에 무사비 후보의 근소한 우세를 점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총 85%의 투표율에 아흐마디네자드 대통령이 62.6%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강력한 도전자였던 무사비 후보는 33.8%에 그쳤고, 레자이 후보와 카루비 후보는 각각 1.7%와 0.9%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이에 분노한 무사비 후보가 “대대적인 부정선거가 이뤄졌다”고 주장하면서 이번 사태가 발발한 것이다.

현재 부정선거가 이뤄졌다는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확증은 없다. 그러나 십수만명의 성난 군중이 거리로 뛰쳐나올 때는 분명 나름의 이유가 있다. 대표적인 이유를 살펴보면, 과거에는 선거 결과가 지방별로 발표되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수백만 표가 개표되지 않은 상황에서 전체 득표율이 퍼센티지(%)로 발표됐다. 그리고 남아 있던 수백만 표가 개표됐을 때도 각 후보의 득표율에 거의 변화가 없었다. 아흐마디네자드 대통령이 지방과 도시에서 고르게 많은 득표를 했다는 뜻이다. 이는 또한 다른 세 후보가 고르게 지방과 도시에서, 심지어 자신의 고향에서도 낮은 득표율을 기록했음을 의미한다.

아흐마디네자드 대통령이 도시의 저소득층과 지방 유권자들에게 인기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당락을 결정짓는 표심은 일반적으로 대도시의 중산층 몫이다. 이런 점에서 테헤란, 이스파한, 시라즈 같은 대도시 중산층과 식자층은 무사비 후보를 지지했음에도 표차가 크게 나고 말았다. 이에 군중의 불만이 폭발한 것이다.

이번 사태로 이란 정부는 적잖이 당황한 모습이다. 이런 대규모 시위는 1979년 이란혁명 이후 처음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또한 친(親)정부 민병대가 몇몇 대학을 습격해 학생들을 구타하고 연행한 사실에 항거해 시라즈대학의 학장과 테헤란대학의 강사 120명이 사직한 상태다. 마치 우리나라의 1987년 6월 항쟁 때처럼 노동자와 학생뿐 아니라 중산층, 지식인까지 시위대에 동참하는 모양새다. 체제 전복에 대한 우려가 나오는 데다, 세계 유일의 신정체제인 이슬람공화국의 붕괴로 이어질 혁명 발발의 가능성도 제기된다. 시위의 성격도 처음에는 부정선거에 대한 불만이었지만 점차 민주와 자유를 요구하는 외침으로 바뀌고 있다.

체제 전복으로 이어지진 않을 듯

시위대의 구호 중 ‘독재자에게 죽음을!’이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독재자란 아흐마디네자드 대통령 위에 군림하는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를 가리킨다. 현재 시위대는 신정체제의 폐지와 민주주의를 요구하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현재 시위대의 지도자 구실을 하는 무사비는 원초적으로 이런 일을 담당할 수 없는 인물이다. 무사비 자신이 이슬람공화국의 창시자 구실을 한 인물이자 성직자이기 때문이다. 무사비는 단지 부정선거의 결과를 바로잡으려는 시위를 호소했을 뿐인데 시위대의 성격이 민주와 자유를 갈구하는 외침으로 확대되고 만 것이다.

이란 당국은 현재 ‘당근과 채찍’ 정책을 통해 사태를 해결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현재까지 개혁주의운동의 지도부 100여 명을 연행한 한편, 일부 지역 투표함에 대한 재검표를 약속했다. 그러나 무사비 후보 측과 성난 민심은 선거의 무효 선언 및 재선거를 요구하면서 당국의 결정에 반발하고 있다.

세계 유수 언론과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의 결말이 어떻게 될지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다. 그러나 체제 전복으로는 이어지지 않으리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더욱이 전 세계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이란의 핵개발과 관련해서는 대선 후보 4명 중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번복되지 않을 거국적 동의사항이기 때문에 이번 사태의 결과가 어떻게 되든 달라질 일은 없다는 분석이다.



주간동아 2009.06.30 692호 (p70~71)

예루살렘=남성준 통신원 darom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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