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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대통령 허재 “만리장성 별거냐!”

최고의 선수에서 ‘최고의 지도자’로 변신 중 … 아시아 정상 탈환 남다른 각오

  • 최용석 스포츠동아 기자 gtyong@donga.com

농구대통령 허재 “만리장성 별거냐!”

농구대통령 허재 “만리장성 별거냐!”

전주 KCC를 2008∼09시즌 챔피언에 등극시킨 허재 감독은 동아시아선수권에서 한국에 우승컵을 안겼다.

‘농구천재’ 허재(44)가 지도자로서도 성공 스토리를 만들어가고 있다. 전주 KCC를 2008~09시즌 챔피언에 등극시킨 허 감독은 국가대표팀 지휘봉을 잡고 처음으로 참가한 동아시아 남자농구 선수권대회(이하 동아시아대회)에서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하승진, 김주성 등의 대들보들이 부상 등으로 출전하지 못해 사실상 1.5군으로 참가한 대회였지만 전승으로 우승을 일궈내며 지도력을 뽐냈다. 허 감독은 수많은 시행착오 속에서도 스스로를 발전시키며 최고의 지도자 자리를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허 감독은 선수 시절 그야말로 최고의 시간을 보냈다. ‘농구천재’ ‘농구대통령’이란 수식어가 따라다닐 만큼 맹활약했고, 농구대잔치에서 수많은 우승컵과 개인상을 싹쓸이하다시피 했다.

프로농구 무대에서도 화려한 선수생활을 하다 은퇴한 허 감독은 코치 경험 없이 곧바로 KCC 사령탑에 올랐다. 그러나 지도자로서의 행보는 순탄치 않았다.

자존심 죽이고 선수들 칭찬과 격려



‘최고의 선수는 최고의 지도자가 될 수 없다’는 말처럼 선수들과의 불화설 등이 끊이지 않았고, 팀 성적도 기대에 못 미쳤다. 그러면서 허 감독의 머리칼이 하얗게 변했다. 늘 최고의 자리에만 있었기에 스트레스가 더 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허 감독은 자신의 실수를 하나씩 고쳐가며 변하기 시작했다. 선수들이 모두 자신처럼 플레이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지도 스타일도 바꿨다. 선수들의 장점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훈련 내용을 바꾸고, 경기를 준비하는 데 많은 신경을 썼다. 시즌 내내 숙소에 머물면서 전략을 짜느라 밤을 새우는 날이 많았다. 이번 동아시아대회를 앞두고도 상대팀 분석을 위해 코치들과 많은 시간 머리를 맞댔다고 한다.

‘최고의 선수’에서 ‘최고의 지도자’로 변신할 수 있었던 것은 이렇듯 끊임없는 노력 덕분이다. 하지만 그는 모든 공을 선수에게 돌린다. “선수들이 잘해주기에 내가 최고의 자리에 올라설 수 있었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코칭스태프의 역할은 선수들이 코트에서 최상의 경기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 것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허 감독은 선수 시절 자존심 강하기로 유명했다. 경기 도중 상대가 거칠게 수비하면 대선배와도 싸우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 정도로 자신감이 넘쳤고, 상대의 도발에는 거침없이 대항할 만큼 불같은 성질을 갖고 있었다. 승부욕도 워낙 강해 경기에서 팀이 패하면 잠을 못 이룰 정도였다.

농구대통령 허재 “만리장성 별거냐!”

선수 시절 농구대잔치 경기에서 맹활약할 때.

중앙대 재학 시절에는 대선배인 ‘슛도사’ 이충희(당시 현대)와의 대결에서 패하자 삭발 후 합숙소에서 연습에 매달렸다. 자신을 잘 막아낸 수비수가 있으면 다음 경기에서 보란 듯 개인기로 다득점을 올리며 그의 기를 죽여놓았다.

하지만 지도자 허재의 면모는 다르다. 자신감은 여전하지만 필요할 때는 자존심을 꺾을 줄도 안다. 2008~09시즌을 치르며 신인 하승진이 허 감독에게 정면으로 대들었다. 공식 인터뷰에서 감독에게 출전 시간에 대해 불만을 터뜨린 것. 허 감독의 성격으로 봐선 참아내기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허 감독은 하승진의 실수를 감싸며 오히려 그를 다독였다. 기자들과 만나서도 하승진의 편을 들었다. ‘농구대통령’의 자존심을 구기며 팀과 선수를 보호하기 위해 자신을 버렸다.

동아시아대회에서도 선수들을 위해 앞장섰다. 선수들이 장시간의 행사로 피곤할 것 같으면 직접 나서서 대회 주최 측에 항의했다. 선수들을 먼저 숙소로 보내고 자신과 코칭스태프만 행사장을 지키는 경우도 있었다. 감독뿐 아니라 매니저 노릇까지 도맡아 하는 등 전혀 다른 면모를 보인 것. 이 때문에 대표팀 선수들은 적지 않게 놀랐다는 후문이다. 한창 ‘악명’을 떨치던 허 감독의 강한 카리스마는 부드러움으로 변해가고 있다.

명장의 반열로 가는 길 순탄

그런 허 감독이 다시 아시아 정상에 도전한다. 선수 시절 미국 프로농구(NBA) 2개 팀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을 정도로 탁월한 기량을 발휘하던 허 감독이 이제는 후배들과 함께 아시아 정상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먼저 8월 중국에서 열리는 아시아선수권에서 땅에 떨어진 한국 농구의 위상을 되찾는 것이 목표다. 그가 가야 할 길이 쉽지만은 않다. 중국이라는 난공불락의 벽이 놓여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대표스타 야오밍이 나오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지만, 중국은 한국보다 신장과 기량 면에서 확실히 한 수 위다.

하지만 허 감독은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자신이 선수 시절 그랬듯, 중국을 꺾고 정상에 복귀한다는 각오로 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허 감독은 “세상에 이기지 못할 상대는 없다. 이번에 우승해서 자존심 한번 세워봐야겠다. 내가 나가는 대회에선 모두 우승할 것”이라고 농담처럼 말한다. 그의 승부욕을 아는 사람들은 농담으로만 받아들이지 않는다. “허재가 이번에 일을 낼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예상한다.

“한번 하면 제대로 해야 한다. 안 그러면 때려치워야 한다”고 자주 말하는 허 감독. 그런 그가 이번에는 제대로 해보겠다는 각오로 무장한 선수들을 대표팀에 중용했다. 아무리 기량이 좋아도 마음 자세가 안 된 선수는 과감하게 탈락시켰다. 눈두덩이 찢어지고 손가락이 부러져도 코트에 섰던 자신처럼 컨디션이 안 좋은 상태에서도 팀을 위해 희생할 줄 아는 선수들로 대표팀을 꾸린 것이다. 자신과 비슷한 스타일의 선수들과 ‘큰일’ 낼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인지 대표팀 분위기는 어느 때보다 좋다는 게 선수들의 전언이다.

허 감독이 아직 최고의 명장 반열에 올랐다고 보긴 어렵지만, 그럴 만한 자질은 충분히 보여줬다. 그래서 허 감독의 도전은 언제나 현재진행형이다.



주간동아 2009.06.30 692호 (p66~67)

최용석 스포츠동아 기자 gty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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