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90

2009.06.16

“올챙이가 발에 부비부비, 진흙이 발가락 사이로 쏙쏙”

‘자식 덕 보기’ ⑥

  • 입력2009-06-11 13: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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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챙이가 발에 부비부비, 진흙이 발가락 사이로 쏙쏙”

    <B>1</B> 손으로 모를 심고 있다. 감각을 깨우는 만큼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br> <B>2</B> 논물에 금방 적응한 아이. 같은 환경이라도 두려움도 되고, 적응하기에 따라 호기심이나 놀이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번 주 내내 손 모내기를 했다. 이웃들과 시작해, 도시에서 온 손님들과 함께 모두 나흘을 심었다. 손님들은 하루는 신혼부부, 다음 날은 부자, 마지막 날은 모녀. 그 과정에서 어른들은 어린 시절을 돌아보고, 아이들은 자신들의 잠자던 감각을 깨우기도 했다.

    자라는 아이들에게 ‘일’은 무엇일까? 첫날 온 새신랑이 모내기를 하다가 어린 시절 이야기를 했다. 저 남쪽 완도에서 자랐는데, 모내기를 할 때면 할아버지가 하시던 못줄 잡기를 해보고 싶었으나 시켜주지 않았단다. 또 어느 어린이날에는 한창 인기 있는 만화영화를 TV로 보고 있었는데 어머니가 고추 모종을 심자고 해서 제대로 못 보았단다.

    어린 시절, 누구나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하지 않았을까. 하고 싶은 일은 못하고, 때로는 하기 싫은 일인데도 억지로 하게 되는 순간. 교육이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전자는 호기심과 감각을 잃어버리게 하고, 후자는 일을 싫어하게 만든다. 아이들에게 일은 호기심이자 권리이며 놀이요, 감각을 키우는 소중한 체험이어야 하지 않겠나.

    벌레가 무서운 도시 아이, 훈이

    사실 도시 아이들에게 논은 아주 낯설다. 농약이나 제초제를 치지 않는 논엔 벌레가 많다. 올챙이, 거머리, 소금쟁이, 장구애비, 잠자리 유충…. 이런 환경에서 어른 중심으로 일을 강조하면 아이들은 두려움을 먼저 느낀다. 둘째 날, 학교에는 체험학습을 신청하고 아빠 따라 온 열두 살 난 훈이도 그랬다. 논두렁에서 모내기 설명을 들은 어른들이 하나둘 논에 들어섰지만 훈이는 아니었다.



    “벌레가 너무 많아, 무서워.”

    이럴 때 아이에게 강요하면 안 된다. 대신 어떤 벌레가 있는지, 그 벌레가 어떻게 논에서 살아가는지를 알려준다. 그런 다음 아이가 관찰하고 나서, 자신이 주인이 될 때까지 기다리는 게 좋다.

    그렇다고 마냥 기다리면 자칫 아이가 외톨이 감정을 느낄 수도 있다. 아이한테 알맞은 일거리가 뭘까. 논으로 들어오지 말고 논두렁에 서서 팔이 미치는 범위까지만 모를 심어나가라고 했다. 이는 어렵지 않은 일. 모내기를 해본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논은 질퍽하니 곤죽이 된 상태다. 정상적인 걸음조차 쉽지가 않다. 아이가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의 무리한 체험은 역효과만 난다.

    “올챙이가 발에 부비부비, 진흙이 발가락 사이로 쏙쏙”

    체험학습을 온 훈이에게는 모가 신기하고 이상하고 야릇하다.

    훈이는 모를 만지는 것조차 조심조심, 논두렁에서 쪼그리고 앉아 모를 꼽는 것도 아주 조심스럽게 했다. 사실 이 ‘조심’이라는 표현조차 어른 관점이다. 아이는 자신이 서는 만큼 충분히 관찰한 다음 행동으로 옮기는 것뿐이다.

    차츰 모내기에 익숙해지자 이번에는 곁눈질로 어른들을 관찰했다. 정말 벌레가 물지 않는 걸까. 어른들끼리 어린 시절 이야기를 즐겁게 나누며 일을 하니 아이도 용기가 생겼나 보다. 그렇게 하기를 10분 남짓. 차츰 자기 안의 두려움을 몰아냈는지 나섰다.

    “나도 들어가서 심을래.”

    대꾸할 새도 없이 흙탕물을 튀기며 얼른 아빠 곁으로 갔다. 논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아빠만큼 든든한 존재가 또 있을까. 아이들이 체험을 한다는 건 단순히 모내기라는 일만 하는 것이 아니다. 논두렁에 자라는 온갖 풀과 논 안에 사는 벌레들 그리고 멀리서 우는 검은등뻐꾸기 소리가 다 체험거리다.

    어린이가 일을 한다면 얼마나 하겠나.

    하고 싶은 만큼 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10분쯤 모를 내던 훈이 역시 그만 하겠다 했다. 그러더니 논두렁에 앉아 이것저것 관찰했다. 손으로 물을 튕겨 동심원이 생기는 모습도 보고, 논물에서 나는 묘한 냄새도 맡았다. 아이 눈으로 본다면 얼마나 보고 느낄 게 많나. 처음 논으로 왔을 때는 두려운 논이었지만 훈이는 잠깐 사이 자기 영역을 확장한 셈이다. 이렇게 아이를 믿고 아이 감각이 깨어나는 걸 존중하면 여기서 어른들이 배울 게 적지 않다.

    아이들과 모내기, 또 다른 세계

    “올챙이가 발에 부비부비, 진흙이 발가락 사이로 쏙쏙”

    참 먹는 시간. 상상이가 빚은 막걸리가 귀한 농주(農酒)가 됐다.

    어느 해인가는 아이 친구를 여럿 모아, 모내기를 캠프로 연 적이 있다. 그때 열다섯 살 양손이가 우리 홈페이지에 쓴 모내기 후기의 일부를 잠깐 보자. 논에 처음으로 들어가는 순간.

    “10cm 쑥쑥 빠지면 그 속의 돌들이 발에 밟히는 기분이 똥을 밟은 듯하면서 갯벌에 들어간 듯하고 발에 수백 마리의 올챙이가 부비부비하는 듯, 좋지도 싫지도 않고, 겉의 진흙은 따뜻하고 속은 차가우며, 마치 초콜릿 속에 들어간 거 같은 정말 난감한 기분을 느꼈다. 솔직히 발가락 사이로 진흙이 뛰쳐나오는 건 소름 끼치게 기분 좋았다.”

    얼마나 놀랍고 섬세한 감각인가. 단지 논에 한두 발걸음 디딘 순간인데 이렇게 느낌이 많다니….

    나로서는 그동안 논에 수백 번도 더 들어갔고 또 휘젓고 다녔지만 이런 느낌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양손이 글을 읽고 내 안에 까마득히 잊고 있던 어떤 느낌이 살아나는 걸 느꼈다. 특히나 나는 기분 좋은 상태를 ‘소름 끼치게’라고 한 표현이 참 좋다. 얼마나 좋은 기분이면 그 상태가 소름이 끼칠 정도가 될까. 이는 결코 잊을 수 없는 감각의 세계가 된다.

    아이들은 물론이고 누구라도 이 글을 본다면 논에 들어가는 체험을 해보고 싶은 유혹을 느끼지 않을까. 이렇게 감각이 열린 아이들의 소중한 체험은 빛이 나, 세상을 밝게 한다.

    일부 어른은 툭하면 요즘 아이들이 끈기가 없고 산만하다고 타박한다. 내가 볼 때는 그런 말을 하는 어른들이 무감각하고 길들여진 상태가 아닐까 싶다. 아이들과 모내기를 하면서 온몸으로 순간에 집중하면 또 다른 세계가 열린다는 걸 배운다. 자식 덕을 보다 보면 내 자식 덕만 보는 게 아니다. 나는 내 모든 아이들 덕을 볼, 그런 날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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