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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CIETY

섬뜩한 SI(돼지 인플루엔자) 공포, 숨죽인 인류

조류 바이러스보다 강력한 신종 … 인간 면역성 없어 일파만파 충격

  • 김우주 고려대 의대 교수·구로병원 감염내과 wjkim@korea.ac.kr

섬뜩한 SI(돼지 인플루엔자) 공포, 숨죽인 인류

섬뜩한 SI(돼지 인플루엔자) 공포, 숨죽인 인류

4월26일 인천 국제공항에서 열적외선 감시카메라로 입국자들의 체온을 측정하고 있다. 멕시코발 SI로 각국 보건당국의 검역 활동이 한층 강화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4월29일(현지시간) 돼지 인플루엔자(Swine Influenza·SI)의 전염병 경보 수준을 4단계에서 5단계로 격상했다. 5단계는 한 대륙 내 2개 이상의 국가에서 지역사회의 유행이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6단계인 대유행(pandemic)에 임박했음을 나타낸다.

각국 정부 역시 여러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4월30일 보건복지가족부(이하 보건부)는 그동안 질병관리본부장을 중심으로 운영하던 중앙방역대책본부를 보건부 장관을 본부장으로 한 ‘중앙 SI대책본부’로 격상하고 24시간 비상방역체제에 돌입한다고 발표했다.
4월부터 북미에서 출현한 신종 SI. 그 실체는 무엇이며 앞으로의 진행 방향과 속도는 어떨까.

1~2주 170명 사망 강력한 전파력

사람에게 독감을 일으키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는 A형과 B형이 있다. 돌연변이가 잦아 대유행 질환으로 번지는 것은 A형 바이러스다. SI도 A형 인플루엔자, 특히 신종 H1N1 아형(亞形)에 속한다. 구형(求形)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육안이나 일반 현미경으로는 보이지 않고 전자현미경으로 확대해야 보일 정도로 작다(그림 참조). 바이러스 표면에 돌기처럼 튀어나온 것이 단백질 H(hemagglutinin)와 N(neuraminidase)인데 각각 16가지(H1~H16), 9가지(N1~N9) 종류인 이들이 조합을 이루면서 다양한 아형 바이러스를 만들어낸다. 1997년 홍콩에서 처음으로 인체 감염을 일으킨 조류 인플루엔자의 원인은 H5N1이었다.

H1N1 아형인 SI는 겨울철에 자주 발생하는 계절 인플루엔자(일반 독감) H1N1과 같지만 유전자의 유래가 달라 신종 인플루엔자로 간주된다. 계절 인플루엔자 H1N1의 유전자는 사람에게서 생기는 반면, SI는 돼지나 조류 및 사람 유래 바이러스 유전자가 섞인 하이브리드 바이러스이기 때문이다.



세계로 번지는 SI 공포

SI의 가장 큰 특징은 인류 대부분에게 면역성이 없어 대유행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생태학적으로도 돼지는 인플루엔자의 자연계 보고(寶庫)인 조류와 접촉 가능성이 높다. 또 가축이라 사람과의 접촉도 빈번하다.

오랫동안 과학자, 공중보건 전문가들은 돼지를 중간 숙주로 해 출현하는 신종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대유행의 원인이 되리라고 예측해왔다. 돼지가 사람, 조류, 돼지에게서 나오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감염될 가능성이 높으며, 서로 유래가 다른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들이 유전자 재편성을 거쳐 신종 바이러스로 재탄생하는 ‘혼합용기(mixing vessel)’ 노릇을 하기 쉽기 때문이다. 한 예로 20세기에 발생한 1918년 스페인 대유행, 1957년 아시아 대유행, 1968년 홍콩 대유행 가운데 아시아 대유행과 홍콩 대유행은 돼지 체내에서 조류와 사람의 바이러스 유전자가 재편성돼 탄생한 신종 바이러스에 의한 것이었다.

섬뜩한 SI(돼지 인플루엔자) 공포, 숨죽인 인류

경기 안양시 국립수의과학검역원 질병진단센터에서 연구원들이 멕시코산 돼지고기 시료를 채취해 바이러스 정밀검사를 하고 있다.

그러나 1997년 홍콩에서 발생한 H5N1 조류 인플루엔자가 돼지 같은 중간 숙주를 거치지 않고 직접 사람에게 감염됨으로써 이와 같은 예측이 빗나가는 듯했다. 이에 따라 WHO도 조류 인플루엔자 쪽으로 무게중심을 옮겨 지난 10여 년간 대유행 백신 개발에 전력을 기울여왔다가 이번에 ‘뒤통수’를 맞은 셈이다. 조류 인플루엔자는 지난 10년 동안 사람 간 감염이라는 ‘마지막 관문’을 뚫지 못한 반면, SI는 한두 주 만에 2000여 명의 감염자와 170여 명의 사망자를 유발했다. 사람 간 강력한 전파력이 순식간에 대유행을 빚은 것이다.

돼지의 인플루엔자 감염 증상은 사람에게 발병하는 인플루엔자 증상과 매우 유사하다. 1~3일간의 잠복기를 거친 뒤 발열, 기침, 콧물, 재채기, 식욕 부진, 체중 감소, 무력증, 호흡 곤란, 결막염, 자연유산 등을 일으키는 것. 가금류에서 발생하는 H5N1 조류 인플루엔자는 100%에 가까운 치사율을 나타내는 데 반해 SI의 치사율은 1~3%에 그치며, 대부분의 돼지는 발병 5~7일째에 회복된다. 일부 돼지에서는 중증 바이러스 폐렴이 발생해 폐사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동안 SI 감염은 사람 간 전파가 없는 산발적 발생으로 끝나 일반인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다. 2005년까지 미국 19명, 체코슬로바키아 6명, 네덜란드 4명, 러시아 3명, 스위스 3명, 캐나다 1명, 홍콩 1명 등 37명의 감염자가 발생했으며, 이 가운데 61%는 돼지와 접촉한 경험이 있었다. 전체 사망률은 17%.

이번 멕시코발(發) SI의 공포는 4월17일 미국 질병통제센터가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에 사는 한 어린이에게서 신종 SI가 발견됐다고 판단하면서부터 급물살을 탔다. 4월24일 미국 정부는 A형 H1N1 돼지 인플루엔자로 인한 감염 사례를 공표했고, 멕시코에서는 854명의 의심환자와 59명의 사망자를 발표해 전 세계를 공포에 떨게 했다.

4월25일 WHO는 긴급회의 후 SI 대유행 가능성을 경고하면서 ‘국제적인 공중보건 위기 상황’을 선포했다. 또 4월27일 미국 국토안보부장관이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선언하면서 긴장감은 더욱 고조됐다. 우리나라도 국가재난단계 4단계 중 1단계에 해당하는 ‘관심’에서 2단계 ‘주의’로 조정함으로써 대응 수준을 높였다.

4월30일 현재 SI 감염이 확인되거나 의심 또는 추정되는 환자가 발생한 국가는 미주,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등 4대륙 30여 개국이다. SI의 원발 지역인 멕시코의 감염 의심 사례는 2500여 명, 사망자는 176명으로 희생자가 시시각각 늘고 있다. 4월29일 미국 텍사스주에서 생후 23개월 된 유아가 SI 감염으로 사망하면서 멕시코 이외 지역에서 처음 발생한 사망 사례로 기록됐다.

한편 ‘돼지 인플루엔자’라는 명칭에 대해서도 논란이 일고 있다. 국제수역사무국(OIE)은 동물에게서는 현재 유행 중인 신종 인플루엔자가 발견된 바 없다면서 관례대로 발병지의 이름을 본떠 ‘북미 인플루엔자’라고 부를 것을 촉구했다. ‘돼지 인플루엔자’라는 명칭으로 돼지고기 수출과 소비가 급감하는 등 양돈농가의 피해를 우려한 것이다.

섬뜩한 SI(돼지 인플루엔자) 공포, 숨죽인 인류
SI 피해규모 국가간 빈익빈 부익부

사람에게 일어나는 SI 감염 증상은 일반적인 계절 인플루엔자와 비슷해 구분하기 어렵다. 환자와 접촉한 후 1~3일의 잠복기(최대 7일)를 거쳐 발열, 콧물, 코막힘, 인후통과 기침 같은 급성호흡기 질환의 양상을 나타내며 오심, 구토, 설사가 나타나기도 한다.

영유아와 노인에게 쉽게 발병하는 계절 인플루엔자와 달리 젊고 건강한 성인의 발병률이 높은 것이 특징이다. SI는 계절 인플루엔자보다 임상 증상이 심한 편이지만, H5N1 조류 인플루엔자보다 감염으로 인한 증상이나 사망률이 상당히 낮을 것으로 예측된다(표 참조).

섬뜩한 SI(돼지 인플루엔자) 공포, 숨죽인 인류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의 한 수의사가 경기 광주시 삼동 냉동창고에 보관된 멕시코산 돼지고기의 샘플을 채취하고 있다.

발생 초기인 현재 SI 대유행의 피해 규모를 예측하기는 매우 어렵다. 1918~19년 발생한 스페인 대유행(최소 5000만명 사망)과 비교하기에는 현재의 의료 수준, 항바이러스제 사용 가능성, 공중보건 대응 수준, 일반인의 위생 및 영양 수준이 크게 향상됐기 때문에 당시보다 피해가 많이 적으리라고 예측할 수 있다. 반면 항공여행의 보편으로 국가 간 전파 가능성이 과거보다 크게 높아졌다는 점, 인구의 90%가 도시 주변에 밀집해 있어 감염 확산이 용이하다는 점, 상대적으로 감염에 취약한 노인층과 만성병 환자 비율이 높다는 점 등은 비관적인 예측을 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스페인 대유행의 경우, 봄의 첫 유행파(1파)는 비교적 약하게 시작됐지만 가을과 겨울에 다시 발생한 제2, 3의 유행파는 병독성이 극심했다. 이번에도 유행의 1파보다 2파의 정도가 심할 것이라는 우려를 낳는 대목이다. 만일 SI 백신이 순조로이 개발, 생산돼 2차 유행파 이전에 대량 접종이 가능해진다면 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을 뿐 아니라, SI 백신을 계절 인플루엔자 백신처럼 매년 접종함으로써 예방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예방·치료제의 개발과 보급에는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는 만큼 각국의 경제력에 따라 그 혜택 또한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빚을 것이라는 점이다. ‘경제적 대유행’이라 할 수 있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생물학적 대유행과 맞물리면서 존망의 기로에 서는 국가가 나올 수도 있다. 각국의 슬기로운 대처가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주간동아 2009.05.12 685호 (p58~60)

김우주 고려대 의대 교수·구로병원 감염내과 wjkim@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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