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76

2009.03.10

헤겔의 농촌

  • 편집장 이형삼 hans@donga.com

    입력2009-03-04 12:03: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경남 함양군 안의면 당본리 마암부락. 30년 넘는 세월이 흘렀어도 여전히 혀끝에 부드럽게 맴도는 고향마을 주소입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조부모와 부친의 고향입니다. 부친도 학업 때문에 일찍 고향을 뜨셨기에 조부모만 남아 만년이 다 가도록 농사를 지으신 곳입니다.

    초등학교 시절, 여름방학이 되면 직행버스를 4시간쯤 타고 내려가 열흘 남짓 농촌체험을 하고 왔습니다. 그때 부모님이 무슨 대단한 교육철학이 있어 꼬맹이 홀로 ‘하방(下放)’을 보낸 것 같지는 않고, 아마도 적적한 조부모의 소일거리로 막내손자가 제격이겠다 싶어 내린 판단인 듯합니다.

    우악스런 산모기들이 알궁둥이를 물어뜯는 뒷간에서 허둥지둥 볼일을 보고 반쪽짜리 ‘새농민’으로 뻣뻣하게 뒤처리하는 것, 개구리를 쫓다 가끔 뒷마당까지 내려오는 눈치 없는 구렁이와 조우하는 것 말고는 즐거운 추억만 가득합니다. 훗날 제 인성의 몇 안 되는 긍정적 요소를 빚어낸 ‘재료’들도 떠오릅니다. ‘촌’스럽고 투박하되 도무지 그 깊이를 헤아릴 길 없는 내리사랑, 의식주 대부분을 자급자족 내지 교환경제에 의존하기에 절로 몸에 배는 절제의 미덕, 사람 손길 닿기에 따라 미묘하게 표정을 달리하는 작물과 화초 앞에서 늘 곧추세워야 하는 섬세한 감각, 내가 먹을 밥상을 차려내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손발을 놀려 고추며 가지, 상추, 깻잎을 따 담는 우직함.

    내리사랑, 절제, 섬세함, 우직함의 공통분모는 자기희생입니다. 그 결과의 크기를 어림셈해보기도 전에 본능처럼 자신을 버립니다. ‘미학’으로 포장될 수 있을지언정 ‘현실’을 담보하진 못하는 희생과 버림, 제게 남아 있는 농촌의 인상은 그런 것입니다.

    시골집 뒷마당에서 키우던 육덕 실한 암퇘지는 제 누나가 대학에 입학하던 해부터 새끼를 낳았습니다. 그 후로도 기특하게 새 학기 등록 시점마다 열 마리도 넘는 새끼를 낳아줘서(돼지의 임신기간은 115일, 연 2회 교배시킬 수 있습니다) 학비에 쏠쏠하게 보탬이 되곤 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누나가 결혼하던 날, 이제 더 새끼를 낳지 못할 만큼 늙어버린 돼지는 ‘잔치음식’으로 살신성인하는 운명을 맞았습니다. 당신 손으로 자식 같던 돼지를 잡은 조부께선 “고기 맛이 정말 좋다”며 호들갑 떠는 하객들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하셨을지….



    헤겔의 농촌
    이번 호부터 대특집 심층보도 전문지로 새 출발하는 ‘주간동아’가 첫 커버스토리 주제로 ‘요즘 농촌’을 택했습니다. 비효율과 부적응의 상징처럼 여겨지던 농촌이 범지구적 트렌드인 녹색성장을 주도하고 있다는 데 주목했습니다. 살림 제쳐놓고 깃발만 흔들어대는 캠페인이 아니라 실제로 많은 농민이 끊임없는 연구개발로 부농의 꿈을 키워갑니다.

    물론 그들도 ‘자기희생’이라는 공통의 덕목을 지녔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희생은 자신을 버리는 게 아니라 자신을 던지는 것입니다. ‘버림’에서 ‘던짐’으로…. 헤겔 형님, 이런 게 바로 ‘양질전환’의 순간인가요?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