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73

2009.02.17

“빅리그 마운드서 희망을 뿌린다”

세인트루이스와 계약한 풍운아 최향남 “우여곡절 선수생활 멋진 마무리, 지켜봐달라”

  • 김성준 스포츠 라이터

    입력2009-02-11 11: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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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구선수 최향남(38)을 일컫는 수식어는 다양하다. ‘풍운아’ ‘도전자’ ‘방랑자’…. 그중에서도 그와 딱 들어맞는 표현은 ‘롤러코스터’가 아닌가 싶다. 그는 야구를 시작하면서부터 지금까지 단 한순간도 ‘쉽게’ 살아본 적이 없다.

    그는 고3 때 동국대 체육특기자로 뽑혀 졸업예정자 신분으로 동국대 야구부 훈련에 참가했지만, 입학원서 관리를 담당한 교련 교사의 실수로 원서가 접수되지 않았다. 그때부터 그의 인생은 꼬이기 시작했다. 해태 타이거즈(현 KIA) 입단 후에 느닷없이 영장이 나왔고 방위병도 상무 소속도 아닌 현역병으로 꼬박 3년을 포병부대에서 복무해야 했다. 해태에서 LG 트윈스로 이적하면서 잘나가나 싶었다가 머리를 노랗게 물들인 일명 ‘아파치 사건’으로 감독의 눈 밖에 났다. 그러나 그 위기가 흘러흘러 최향남에게 메이저리그 도전이라는 기회로 변했다.

    한국 나이로 39세. 이젠 은퇴 후를 고민해야 할 성싶은 나이에 최향남은 안주(安住) 대신 굴곡진 메이저리그 도전사에 ‘마침표’를 찍어보겠다며 투지를 불태웠다. 그는 포스팅 입찰액 101달러(약 14만원)를 제시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초청선수 신분으로 미국행에 나선다. 한 달에 7500달러(약 1000만원)를 받는 월별 계약으로 매달 계약을 갱신하는 조건이다. 다소 불안한 조건으로 메이저리그 재입성에 나선 최향남과 전화 인터뷰를 했다.

    -2006년 클리블랜드 트리플 A팀인 버펄로 바이슨스에서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빅리거가 아니면 더는 메이저리그를 쳐다보지도 않겠다’고 말한 바 있다. 세인트루이스와의 이번 계약도 빅리그를 보장한 건 아닌데….

    “세인트루이스는 베테랑 선수를 영입하고 싶어했다. 현재 불펜진이 빈약하기 때문에 경험 많은 선수를 원했고, 내가 롯데에서 볼을 던진 영상, 도미니카 리그에서 활약한 장면, 클리블랜드에서 8승5패 방어율 2점대의 좋은 성적을 낸 것들을 두루 체크한 뒤 좋은 평가를 내렸다. 마이너리그에서 쓰려고 포스팅 입찰까지 하며 날 데려가는 게 아니다. 시즌 후 두 달 정도 시험 가동해보고 쓸 만하면 계속 가는 것이고, 가치가 없다고 판단되면 그냥 내보낼 것이다. 나 또한 마이너리그에 머물 것 같으면 이런 우여곡절을 겪으며 미국 진출을 감행하지 않았다.”



    -2003년부터 7년째 메이저리그 도전을 멈추지 않고 있다. 메이저리그 무대가 그렇게 좋은가.

    “벌써 7년이나 됐나. 정말 시간 빠르다. 난 그때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목표가 변하지 않았다. 오직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서는 것이 내 야구 인생의 목표였다. 클리블랜드 마이너리그 시절에도 그 꿈 하나로 온갖 고생을 참아내며 버텼다. 물론 나이 많은 선수에게 기회가 오진 않았지만. 세인트루이스 유니폼을 입고 빅리그 마운드에 선다면 더 이상 소원이 없을 것 같다.”

    -지난 시즌 롯데에서 2승4패 9세이브, 방어율 3.58로 롯데의 마무리 노릇을 톡톡히 해냈다. 올 시즌 좋은 대우를 받고 롯데에 잔류하고 싶은 유혹도 컸을 텐데.

    “롯데와 계약할 때 미국 진출 기회가 생기면 무조건 나가겠다는 게 최우선 조건이었다. 지난 시즌에 내 공이 더 좋아지는 걸 느꼈고, 이 정도 실력이라면 다시 미국 무대를 노크해도 좋은 반응이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더욱이 미국의 몇 개 팀에서 보자는 연락이 온 게 날 자극했다. 도미니카에서 운동을 하다 미국으로 건너간 뒤 6, 7개 팀에서 테스트를 받았는데, 애너하임과 LA 다저스, 세인트루이스에서 콜을 보내왔다. 그런데 애너하임은 처음엔 오케이 사인을 냈다가 구단 측과 스카우트가 ‘선수단이 풀로 찼다’며 제의를 철회했고, LA 다저스는 한 번 더 테스트를 받자고 해서 내가 거절했다. 세인트루이스는 처음부터 관심을 보였는데 결국 그 팀으로부터 입단 제의를 받은 것이다.”

    -메이저리그 입단 테스트를 여러 번 치러봐서 이젠 노하우도 생겼을 텐데.

    “젊은 선수들은 대개 스카우트 앞에서 볼을 세게, 스피드 위주로 던진다. 하지만 나는 타석에 타자가 서 있다고 가정하고 포수와 구질에 대해 사인을 교환한다. 즉 타자를 제대로 공략할 수 있는 공을 던지려고 한다. 스카우트들은 그런 점을 높이 평가한다. 미국엔 시속 91, 92마일을 던지는 선수들이 수두룩하다. 중요한 것은 투수가 타자와 어떻게 승부하느냐는 것이다.”

    -세인트루이스와의 계약을 사흘 앞두고 롯데가 포스팅 시스템을 제안했다. 사흘이 모자라 자유계약(FA) 자격을 얻지 못한 탓이다. 결국 세인트루이스는 101달러에 포스팅 입찰했다. 101달러라는 액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솔직히 돈이 많고 적은 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세인트루이스가 이렇게 해서라도 날 데려가겠다는 의지를 보인 게 더 중요하다. 세인트루이스는 내가 FA 선수인 줄 알고 관심을 보였다. 그런데 포스팅 시스템을 거쳐야 한다고 하니 얼마나 황당했겠나. 나는 세인트루이스의 의지를 확인한 것만으로 만족한다. 아마 1달러를 써냈다고 해도 고마웠을 것이다.”

    -롯데에서 최종적으로 미국행을 허락하기까지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난 정말 조용히 가고 싶었다. 세인트루이스와 가계약을 한 뒤 귀국했을 때만 해도 일이 이렇게 커질 줄 몰랐다. 솔직히 최향남이란 야구선수에게 누가 관심을 갖겠나. 갑자기 롯데가 반대 의사를 비치며 나의 미국 진출이 이슈화됐기 때문에 여기저기서 관심을 보인 것이다. 난 언론 플레이를 할 줄 모른다. 그냥 기자들에게 전화가 오면 받았고 물어보면 답했을 뿐이다. 그런데 구단 측에선 내가 언론 플레이를 한다고 서운해하더라.”

    -지난 시즌을 앞두고 롯데와 연봉 계약을 맺을 때 계약서를 구단에 놓고 왔다고 들었다. 사실인가.

    “사람끼리 약속한 건데 꼭 그 계약서를 챙겨야 하나. 롯데에선 내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목표가 뭔지를 잘 알고 있었다. 롯데가 종착역이 아니라는 걸 거듭 강조했기에 12월 출국 때도 미국에 왜 가는지에 대해 구단 측에 다 말했다. 구단 측은 그래도 ‘설마’ 했던 것 같다. 그래도 일이 잘 마무리돼서 다행이다. 너무 많이 알려져 막상 미국에 가면 부담만 백 배 늘 것 같다.”

    -정말 순탄치 않은 야구 인생이다. 최향남이란 선수는 ‘도전’이란 게 뭔가를 제대로 보여주는 사람이다.

    “내 야구 인생은 널뛰기 자체였다. 그러나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 수 있어서 불행하진 않았다. 야구선수로서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았지만 마무리는 해피하게 끝내고 싶다. 그 정도는 나도 누릴 자격이 있지 않나. 시끄럽게 해드려 죄송하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빅리그 마운드에서 멋진 투구를 보여주고 인정받는 것이다. 지켜봐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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