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73

2009.02.17

살인 충동을 22개월 참았다고?

강호순, 또 다른 범죄 가능성 매우 커 현재 고교생 아들은 인터넷에서 옷 팔아

  •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입력2009-02-11 09:59: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살인 충동을 22개월 참았다고?

    경기도 수원시 당수동에 자리한 강호순의 축사에서 경찰수사팀이 증거물 수색 작업을 벌이고 있다. 피해자 박모 씨 살해 사건 현장검증(오른쪽).

    애틋한 父情(?) 그러나 아들은 여전히 인터넷 거래 중

    “책을 출판해 아들에게 인세를 주고 싶다.”

    “내 얼굴 사진이 나왔으니 내 아들은 어떻게 살란 말인가.”

    끔찍한 연쇄살인 피의자면서도 극진한 부정을 드러낸 강호순. 그러나 그는 정작 아들이 다른 아이들처럼 학교생활에 전념할 수 있도록 신경을 써주진 못한 것 같다.

    ‘주간동아’ 확인 결과 고교생인 그의 아들은 인터넷 포털사이트 중고물품 거래 카페에서 아버지 명의로 된 아이디를 사용해 점퍼, 신발, 게임기 등을 판매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아들의 글은 2월5일까지 계속 올라왔다. 아버지가 사회적 공분의 대상이 되고 있는 시간에도 아들은 물건을 팔고 있었다.



    강호순이 인터넷을 잘하지 못해 카페 등에 가입하지 않았다는 경찰 발표와는 달리 그는 각종 포털사이트와 쇼핑몰, 게임, 동영상을 제공하는 다수의 인터넷 사이트에 회원으로 가입해 있었다. 그가 가진 아이디만도 7~8개에 이른다. A포털 사이트에선 컴퓨터 키보드에서 본인의 이름을 영문키로 바꿨을 때 나타나는 단어를 아이디로 등록했다.

    특히 B포털 사이트 중고물품 매매 카페에선 자신의 명의로 가입한 3개 아이디로 2007년 12월부터 최근까지 중고 점퍼와 신발, 게임기 등을 팔거나 산다는 글이 올라와 있다. 이 글에 등장하는 판매자 주소는 강호순의 경기도 안산시 팔곡동 주소와 일치한다. 글에 기재된 휴대전화 번호도 그의 것이다. 2007년 8월 강호순은 본인의 홈페이지 메인 화면에 이 휴대전화 번호를 올려놓았다. 그는 ‘판매는 꼭 직거래로 하며, 4호선 반월역에서만 거래한다’는 내용을 공지했다.

    기자가 추가로 기재된 또 다른 휴대전화로 연락해보니 전화를 받은 사람은 놀랍게도 강호순의 큰아들이었다. 기자가 “글에 올린 물건을 실제로 판매하느냐”라고 묻자 “그렇다”며 적극적인 판매 의사를 보였고 본인의 이름(강○○)도 밝혔다. “새것이냐, 정품이냐”라고 묻자 “안산 ○○○매장에서 산 제품”이라고 답했다.

    살인 충동을 22개월 참았다고?

    한 포털사이트 중고물건 거래 사이트에 강호순 명의의 아이디로 올려진 물건판매 게시글들.

    그러나 “글에 올라 있는 다른 전화번호(강호순의 휴대전화)는 누구 것이냐”라고 묻자, 구매자가 아님을 알아차린 듯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며 전화를 급하게 끊었다. 이 사이트에 올라 있는 글을 보면, 초기엔 강호순 부자가 함께 인터넷으로 물건을 팔다 최근엔 아들 혼자서 판매에 나섰음을 알 수 있다. 아버지가 거액의 보험금을 타내 고급 승용차를 몰고 다니고 농장을 ‘운영’하는 동안 학생 신분인 그의 아들이 중고물건을 판매하는 수준을 넘어 물건을 사고파는 ‘장사’를 했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또한 아버지가 연쇄살인 혐의를 받고 연일 언론매체에 등장해 큰 충격을 받았을 강씨의 아들이 친척 등 어른들의 보호를 받기는커녕 태연하게 물건을 팔고 있다는 것도 큰 우려를 낳는 대목이다.

    ‘살인 공백’ 약 2년 오리무중 행적

    열흘간의 경찰 수사 후 사건이 검찰로 송치된 가운데 강호순의 추가 범행이 밝혀질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강호순 역시 다른 연쇄살인범과 마찬가지로 자기만족을 위해 대담하고도 치밀한 범행 수법을 계속 진화시켜왔기에 7명을 살해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범죄를 저질렀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 상황. 더욱이 4번째 범행을 저지른 2007년 1월 이후, 그리고 6, 7번째 사건이 벌어진 지난해 11~12월까지 약 22개월간의 행적이 전혀 드러나지 않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강호순은 경찰에서 “사건이 너무 알려져 (내가) 노출될까봐 범행을 중단했다”고 진술했다. 그의 말마따나 범행을 집중적으로 저지른 뒤 일정 기간 휴식기를 갖는 것은 연쇄살인범들에게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특징이긴 하다.

    그렇다 해도 이미 4명의 여성을 살해하면서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껴온 그가 무려 2년 가까이 공백기를 가졌다는 것은 석연치 않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스스로도 “살인 충동을 자제할 수 없었다”고 털어놓은 바 있다.

    연쇄살인범 유영철을 변호했던 김병준 변호사는 “사실상 자신에게 하나의 의식적인 행위로 굳어져버린 살인 행위에 대한 충동적 욕구, 그리고 여성에 대한 탐욕을 그리 오래 참아낸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라며 “살인까지는 저지르지 않았다 해도 자신의 의식적인 행위를 빛나게 하기 위해 다른 범죄에 나섰을 가능성은 있다”고 추정했다.

    유영철에게도 공백기가 있긴 했으나 길지는 않았다. 유영철은 2003년 9월과 10월 서울 신사동과 구기동 등에서 잇따라 3건의 범행을 저지르고 11월 서울 종로구 혜화동 주택에 침입, 80대 집주인 남성과 50대 파출부 여성을 해머로 살해한 뒤 대대적으로 언론 보도가 나오자 몸을 숨겼다. 그러나 4개월여 만인 2004년 3월 다시 여성을 집으로 불러들이는 수법으로 바꿔 살인 행각에 나섰다.

    경찰 수사에선 강호순이 범행 휴지기에 경기도 수원시 당수동에서 축사를 임대해 형과 개, 토종닭, 소 등을 키우며 평범하게 지낸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아직 범행과 연관된 행적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그는 4번째 범행 직후인 2007년 4월, 그 2년 전에 화재로 사망한 넷째 부인 명의의 보험금 4억8000만원을 수령하고, 다음 달에 안산 상록수역 앞 상가 2호를 2억2000만원에 사들였다. 또한 이웃 주민들에 따르면 지난해 초부터는 둔내동에서 양봉업을 했고, 여름엔 반월저수지 인근에서 옥수수와 칡즙 등을 팔았으며, 몇몇 주민에겐 양봉업 때문에 강원도를 자주 다닌다는 말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범행과 관련된 행적은 지난해 1월 지인의 소개로 맞선 본 여성을 성폭행한 것이 전부다.

    강호순은 이 기간 동안 공인중개사 시험에 관심을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의 자택 수색에서 부동산 관련 책자가 여러 권 발견됐다. 지난해 1월 한 포털사이트의 본인 블로그에 안산 상록수역이나 중앙동에 있는 부동산중개사 학원 중 괜찮은 곳을 소개해달라는 글도 올렸다.

    지난해 11월9일, 22개월간의 ‘침묵’을 깨고 40대 주부 김모 씨를 살해한 그는 범행 직전 본인 명의 상가를 담보로 1억여 원을 대출받기도 했다. 그전엔 전혀 대출을 받지 않았다. 그가 2005년 네 번째 아내가 화재로 사망한 뒤 받은 보험금으로 여자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고급차를 구입한 점을 감안하면 지난해 대출받은 돈의 용도 역시 대수롭지 않게 지나치기 어렵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