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70

2009.01.20

날치기 법안 처리와 ‘입각 경쟁’

  • 엄상현 gangpen@donga.com

    입력2009-01-13 13: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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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치기 법안 처리와 ‘입각 경쟁’

    지난해 10월 국회 본회의장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마친 홍준표 원내대표(가운데)가 박진 의원(뒷줄 왼쪽에서 세 번째) 등 한나라당 의원들과 악수하고 있다.

    얼마 전 한나라당의 한 초선 의원을 만났다. 그는 술 몇 순배가 돌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라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불만도 많았다. “내가 대통령이라면 이렇게 안 할 것”이란다. 그래서 농담처럼 물어봤다.

    “혹시 큰 뜻이 있으세요?”

    그랬더니 지체 없이 답이 돌아왔다.

    “욕심이 없다면 그게 이상한 것 아니겠어요?”

    정치인은 야심가다. ‘욕심이 없다’는 정치인일수록 더 큰 야심을 숨기고 있다. 야심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기에 어김없이 드러난다.



    여야는 지난해 12월 올해 예산안 처리를 둘러싸고 거센 신경전을 벌였다. 여야 원내대표는 막판 협상을 벌여 타결 일보 직전까지 갔다. 하지만 여야가 합의처리 시한으로 못 박은 12월12일 오전, 해당 상임위인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이하 예결위) 이한구 위원장이 어디론가 사라지면서 상황은 급반전됐다. 이 위원장의 휴대전화는 불통이었다. 이 위원장은 그 시각 기획재정부 담당자, 예결위 실무자들과 모처에서 예산안 계수조정 작업을 벌이고 있었다. 결국 여야 합의는 결렬됐고, 13일 오전 이 위원장은 자신이 정리한 최종 예산안을 한나라당 단독으로 처리했다.

    일부 정치인 야심에 국민의 삶 피멍

    민주당 예결위 간사인 우제창 의원은 “위원장 한 사람이 정치판을 완전히 뒤집어놨다. 아마도 홍준표 원내대표에게 공이 돌아가는 게 못마땅했기 때문일 것”이라며 이 위원장에 대해 격한 감정을 쏟아냈다. 홍 원내대표 측도 직접적인 언급은 피했지만 이 위원장의 독단적인 처신에 불쾌한 표정이 역력했다.

    그 무렵 국회에 이 위원장은 기획예산처 등 경제부처 장관, 홍 대표는 법무장관 입각설이 파다했다.

    그로부터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은 12월18일, 이번엔 외교통상통일위원회(이하 외통위)에서 사단이 났다. 박진 위원장이 한나라당 의원들을 대동하고 오전 7시 외통위 회의실에 진입해 문을 걸어 잠근 것. 그 직후부터 회의장 진입을 시도하는 민주당 의원 및 당직자들과 이들을 저지하려는 국회 경위 및 한나라당 의원들 간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그러나 박 위원장은 오후 2시 회의를 열자마자 3분 만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을 상정시키고 국회 경위들의 보호를 받으며 회의장을 빠져나갔다. 그때부터 국회는 파행으로 치달았다.

    한나라당의 한 당직자에게 물어봤다.

    “상임위에서 꼭 이렇게 날치기 처리를 할 필요가 있었나요? 국회의장이 직권 상정해도 되는데….”

    그 당직자 왈, “그러게 말이에요. (박 위원장에게) 뭔가 다른 이유가 있겠죠, 후후.”

    그 덕에 박 위원장은 요즘 입각 하마평에 오르내린다.

    올해 극심한 경기침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하지만 그보다 정부의 한 해 살림살이와 국가의 미래, 국민의 생활을 결정짓는 주요 법안들이 일부 정치인의 야심에 휘둘리는 현실이 더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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