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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ISURE | 양영훈의 ‘건강의 길, 사색의 길’

수채화 속 꿈길에서 황홀한 산책

거제 여차~홍포 해안도로

  • 양영훈 한국여행작가협회 회장 blog.naver.com/travelmaker

수채화 속 꿈길에서 황홀한 산책

수채화 속 꿈길에서 황홀한 산책

숱한 섬들이 올망졸망 떠 있는 거제도의 맨 남쪽 바다를 굽어보는 여차~홍포 해안도로의 전망대.

바다를 향한 산길. 거제도 맨 남쪽의 여차~홍포 해안도로는 바로 그런 길이다. 시종 산허리를 돌아가는 그 길에서는 바다가 시야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길가의 무성한 나무들이 시야를 가리는 경우는 있지만, 길과 바다가 서로를 떠밀어내지도 않는다. 바다는 길을 포옹하고 길은 바다를 향해 길게 이어진다. 이처럼 바다와 가까운 산길은 우리나라 다른 어디에서도 찾아보기가 어렵다.

여차(汝次)와 홍포(虹浦)는 경남 거제시 남부면에 딸린 작은 갯마을이다. 두 마을은 모두 거제도의 맨 남쪽에 우뚝한 망산(387m)이 바다에 몸을 풀기 직전의 전망 좋은 언덕에 자리잡았다. 그중 여차마을은 대·소병대도를 비롯한 여덟 개의 섬이 바라보이는 자리에 들어앉았다. 마을 아래 반달처럼 휘어진 해변에는 가무잡잡한 몽돌이 지천으로 깔려 있어 듣기 좋은 해조음을 쉼 없이 쏟아낸다. 영화 ‘은행나무침대’의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갑자기 유명세를 탄 이 몽돌해변은 앞바다 섬들을 모두 안으려는 듯 넓게 팔을 펼친 형상이다. 징검다리처럼 점점이 떠 있는 섬들은 마을로 밀려드는 파도와 바람의 기세를 누그러뜨려주는 천연의 방조제이자 바람막이다. 그 덕택에 여차마을의 쪽빛 바다는 호수처럼 잔잔하다. 마을로 들어서기 전의 고갯길에서는 여차마을 일대의 아름다운 풍광이 한눈에 들어온다. 바닷가 언덕에 자리한 마을의 전경뿐만 아니라 바다로 뚝 떨어진 산자락, 갈치의 은빛 비늘 같은 한낮의 바다, 그 바다 위에 오롱조롱한 섬들, 섬 사이로 항해하는 고깃배 등이 시야를 가득 채운다.

홍포마을의 풍광도 뒤지지 않는다. ‘무지개가 뜨는 포구’라는 뜻의 지명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남쪽 바다를 향해 시야가 훤히 열려 있는 이 마을은 무지개가 뜨지 않아도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인상적인 풍광은 3.5km 길이의 여차~홍포 해안도로다. 망산의 남쪽 산허리를 휘감은 이 해안도로는 1018번 지방도의 일부 구간을 이룬다. 작심하고 자동차로 달리면 10여 분밖에 걸리지 않을 정도로 짧지만, 그러기에는 너무나 아쉬울 정도로 운치 좋은 길이다. 사실 길 자체가 여행의 목적일 경우 속도는 무의미한 것이다. 속도가 빠르면 오히려 길의 매력을 제대로 느끼기 어렵다. 여차~홍포 해안도로의 매력을 제대로 느끼고 즐기려면 걸어야 한다. 그래야 전망 좋은 바위에 걸터앉아 바다 풍광도 즐기고, 자연과 내가 하나 되는 일체감도 맛볼 수 있다.

요즘에는 아스팔트 포장도로가 아닌 지방도를 찾아보기가 어렵다. 그러나 여차~홍포 간 1018번 지방도 구간은 전체의 90% 이상이 흙먼지 풀풀 날리는 비포장도로거나 흙길처럼 좁고 거친 시멘트 도로다. 도로뿐만 아니라 주변의 산과 바다가 모두 한려해상국립공원에 포함된 덕택이다.

국립공원 지역의 도로 확장·포장 공사나 여타 개발행위는 국립공원관리공단의 감독기관인 환경부의 승인을 받아야 추진할 수 있다. 그런데 환경부에서는 환경보존을 위해 여차~홍포 해안도로 공사를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고 한다. 여차~홍포 해안도로를 걸어본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아예 차량 진입을 막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래야 자동차의 매연과 소음에 시달리지 않고 쾌적하고 안전하게 이 길을 걸을 수 있기 때문이다.



수채화 속 꿈길에서 황홀한 산책

여차~홍포 해안도로변의 너덜겅에서 바라본 해넘이.

바다 향한 산길 … 트레킹코스로도 제격

여차~홍포 해안도로는 트레킹코스로도 안성맞춤이다. 일부러 맞춘 듯 길의 경사도 완만하고 거리도 적당하다. 기분 좋게 구불거리는 이 길은 대·소병대도, 어유도, 가왕도, 대·소매물도 등의 섬들이 빤히 보이는 해안절벽 위를 지난다. 때로는 오금이 저려올 만큼 아찔한 구간을 지나기도 한다. 상록수와 활엽수가 혼재된 숲과 깎아지른 듯한 암벽, 쪽빛 바다와 올망졸망한 섬들이 한데 어우러진 풍광은 그야말로 환상처럼 아름답다. 길에서의 전망도 가슴이 뻥 뚫릴 정도로 상쾌하다. 특히 긴 몽돌해변과 아담한 포구를 품은 여차마을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여차전망대에 올라서면, 마치 온몸이 공중에 두둥실 떠오른 듯한 느낌이 든다.

겨울철의 여차~홍포 해안도로에서는 장엄한 해돋이와 화려한 해넘이도 감상할 수 있다. 특히 홍포마을 부근 길가에 은밀히 감춰진 너덜겅에서 바라보는 해넘이는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장관으로 기억된다. 겨울날의 짧은 해가 선홍빛 노을만 남긴 채 수평선 너머로 홀연히 사라지고 나면, 적막한 하늘에는 크고 작은 별들이 하나둘씩 출몰하기 시작한다. 별빛 아래 고요히 잠든 섬과 바다는 어머니 품 안의 아이처럼 평온해 보인다.

두 발로 천천히 걸어도 여차~홍포 해안도로는 의외로 짧다. 길에서 만나는 풍정이 비할 데 없이 매력적이라 실제보다 훨씬 짧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래서 아쉬운 발걸음이 차마 떨어지지 않거든 내친걸음에 망산까지 섭렵해보는 것이 좋다. 정상의 해발고도가 400m도 안 되지만, 바닷가에 바투 솟아오른 망산의 등산로가 제법 가파르다. 하지만 일단 정상에 올라서면 일망무제로 뻗은 산줄기와 숱한 섬들을 발 아래 굽어볼 수 있다. 망산이라는 지명도 왜구의 침입이 빈번하던 고려 말에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올라 망을 보았다는 데서 유래했다.

여차~홍포 해안도로는 한 번으로 끝내기가 어려운 길이다. 그 길의 매력을 한 번 알고 나면, 서울에서 거제도까지의 천 리 길도 기꺼울 따름이다. 겨울에는 진달래 핀 봄날의 길을 꿈꾸고, 봄에는 녹음방초 무성한 여름 길을 그린다. 그래서 길은 끝없이 이어진다.

여행 정보

수채화 속 꿈길에서 황홀한 산책
코스 정보 약 3.5km의 여차~홍포 해안도로를 걷는 데는 1시간30분 정도가 소요된다. 이 점을 감안해 일정을 좀더 여유 있게 잡아서 왕복하거나 망산까지 올라보기를 권한다. 망산은 등산로가 뚜렷하고 코스도 다양해 일정과 체력에 맞춰 적당한 코스를 선택할 수 있다. 홍포에서 해미장골등을 거쳐 망산 정상까지 1.1km를 오르는 데는 약 30분, 정상에서 내봉산과 여차등을 경유해 여차마을까지 내려가는 2.7km 구간은 약 1시간20분이 소요된다.

숙식 지난 여름 문을 연 관광호텔 ‘상상 속의 집’(055-682-5252)은 거제도의 6개 호텔 중에서 규모가 가장 작으나 내부시설은 어느 호텔 못지않게 고급스럽다. 특히 복층형 패밀리 스위트룸에는 4인 가족이 한꺼번에 들어가도 넉넉할 만큼 널찍한 스파 시설까지 갖춰져 있어 걷기와 산행의 여독을 씻어내기에 제격이다. 객실 침대에 누운 채 해돋이를 감상할 수 있을 정도로 바다 전망도 탁월하다. 동백섬 지심도가 코앞이고, 시야가 쾌청하면 일본 대마도까지 또렷이 보인다. 여차~홍포 해안도로 주변에는 여차뱃머리펜션(055-633-2377), 홍포펜션(055-632-9251) 등을 비롯한 펜션과 민박집이 여럿 있다.

거제도의 맛집으로는 해녀들이 직접 채취한 자연산 해물모듬회와 생선회를 내놓는 강성횟집(일운면 지세포·055-681-6289), 멍게비빔밥의 원조로 유명한 백만석식당(포로수용소유적공원 옆·055-638-3300), 푸짐하고 시원한 해물뚝배기를 맛볼 수 있는 항만식당(장승포항·055-682-4369) 등을 꼽을 수 있다. 남해안 최대의 대구 집산지인 장목면 외포항에는 요즘 대구가 풍년이다. 외포등대횟집(055-636-6426)을 비롯한 음식점에서는 담백하고 시원한 국물 맛이 일품인 생대구탕의 진미를 확인해볼 수 있다. 여차와 홍포에도 식당이 몇 있다.




주간동아 2009.01.06 668호 (p88~89)

양영훈 한국여행작가협회 회장 blog.naver.com/travelma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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