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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경 기자의 It-Week | 열여섯 번째 쇼핑

자장면과 LBD에 관한 비교학적 고찰

  • 김민경 holden@donga.com

자장면과 LBD에 관한 비교학적 고찰

자장면과 LBD에 관한 비교학적 고찰

젊은 시절의 샤넬(왼쪽)은 당시 기준으로 보면 너무 마르고 보이시한 외모로, 샤넬은 자신에게 맞는 옷을 디자인하면서 현대 여성들의 옷을 바꿔놓게 됩니다. 그녀가 만든 ‘리틀 블랙 드레스’는 수많은 디자이너에 의해 끊임없이 변주되고 있어요. 오른쪽 사진은 랠프로렌 컬렉션입니다.

중국집을 배경으로 한 가장 전형적인 스토리는 이런 게 아닐까요? 오랜만에 중국집에 왔는데 뭘 먹어볼까? 일단 자장면은 제외. 유니크하고 다소 그로테스크한 걸 주문해야지. 참새집? 고래 지느러미? 너무 비싸지. 그럼 팔보채? 해삼과 피망이 언밸런스하다니까. 탕수육? 아이 입맛을 과시할 필요는 없잖아. 잡채밥 어때? 그 기름기, 생각만 해도 느끼하네. 짬뽕? 짬뽕 먹을 바엔 여기, 자장면 한 그릇 주세요.

이런 심리적 갈등은 쇼핑할 때도 자주 벌어집니다. 신발장을 벗어나 이제 베란다까지 밟고 선 검은색 하이힐들, 화장대에서 600헥타르쯤 차지한 브라운 컬러 립스틱들, 종로의 가로수를 다 감아도 남을 듯한 링 귀고리들, 이어 붙이면 ‘대지예술’ 퍼포먼스도 가능한 회색 목도리들. 주변 사람들은 이렇게 묻죠. 또 자장면? 왜 늘 똑같은 것을 사는 거야? 그러나 ‘새로운 것’에 대한 갈망을 무색하게 만들며, 샵마의 온갖 회유를 물리치게 하고, 카드를 내미는 순간의 마지막 망설임에 힘차게 고개를 젓게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 눈에 똑같은 자장면, 똑같은 하이힐처럼 보여도 그건 우주의 히스토리에서 나와 마주친 유일한 존재인 거죠.

자장면이 많은 사람들에게 ‘필연’이듯 여성들에게 운명 같은 아이템이 있으니, 바로 사전에도 LBD로 나오는 ‘리틀 블랙 드레스(Little Black Dress)’입니다. 이름 그대로 검은색의 단순한 드레스를 의미합니다. 별것 아닌 것 같은 리틀 블랙 드레스가 한 세기 동안 여성들의 숭배를 받고 있는 이유는 무엇보다 이것이 현대 패션사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인 디자이너 샤넬이 1920년대에 처음 선보여 글로벌 히트를 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프랑스판 ‘보그’는 이것(프랑스에서는 La petite robe noire라 했어요)을 대량생산하기 시작한 포드자동차에 빗대 ‘샤넬이 만든 포드’라고 극찬을 했대요. 그로부터 약 1세기 후 포드는 위기에 처했지만, 경제가 어려운 요즘 리틀 블랙 드레스는 더욱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샤넬의 아이디어는 아주 단순했어요. 여성의 몸매를 고스란히 드러낼 뿐만 아니라 장식이 주렁주렁 달린 어리석은 옷에 질려버렸어! 옷감 구하기도 힘들어! 세계대전이 큰 영향을 미쳤죠.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샤넬을 허영의 창조자인 듯 여기지만, 당시 샤넬은 혁명적이고 거의 금욕적인 실용주의자였답니다. 보석도 값싼 인조만을 고집했으니까요.



리틀 블랙 드레스는 샤넬의 실용주의를 온전히 이어온 아이템입니다. 연말연시 다양한 모임을 앞두고 빨간 드레스와 터키블루색 슈트를 포기한 모든 여성들이 마지막 이성으로 선택하죠. 리틀 블랙 드레스는 경제위기를 애도하는 상복인 동시에, 화려한 액세서리만으로도 극도의 호화로움을 과시할 수 있는 유일한 옷입니다. 또 입만 다물면 지적으로도 섹시하게도 보이죠. 얼마 전 한 편집매장에서 쇼핑 중인 한 화장품 브랜드의 이사를 우연히 만났어요. 그녀는 수십 벌의 옷을 입어본 뒤 리틀 블랙 드레스를 입고 비로소 가벼운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거울 속에서 그녀와 제 눈이 마주쳤을 때 우린 아무 말 하지 않았지만 알 수 있었죠. 세상에 LBD보다 더 멋진 옷은 없어요!



주간동아 2009.01.06 668호 (p73~73)

김민경 hold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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