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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rtage

집집마다 일석점호 받고 미군에게 영어 배우고

DMZ 대성동마을을 가다 … 생활 통제받는 만큼 국방의무 없고 납세·학비 혜택

집집마다 일석점호 받고 미군에게 영어 배우고

집집마다 일석점호 받고 미군에게 영어 배우고

9월23일 열린 대성동초등학교 운동회.

알밴 벼이삭이 통통해진 몸을 바람에 맡긴다. 납작 엎드려 헐떡이는 잠자리가 짝을 찾는다. 솔바람이 부는데도 짝짓기를 못한 녀석은 유전자(DNA)를 퍼뜨리기 어렵다. 비무장지대(DMZ)는 수숫대에 올라앉은 잠자리처럼 평화로우면서도 날카롭고 격하다.

“받들어총! 전진! 신고합니다. 중위 ○○○ 외 ○명은 ××지점의 DMZ 작전을 명 받았습니다. 이에 신고합니다!”

완전군장 차림의 무장병력이 ‘개선문’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개선문은 서부전선 ×지점에 자리한 DMZ로 들어가는 통문. 이들이 오늘 받은 명령은 DMZ ○○거점을 점령해 매복작전을 수행하는 것.

농부 최완길(45) 씨에게 DMZ는 몸으로 부대끼면서 지켜온 삶의 터전이다. 그는 DMZ에서 4만5000평의 땅을 경작하면서 쌀과 콩을 수확해 밥을 번다.

“10월 초순에 벼를 벨 겁니다. 소출요? 베어봐야 알죠. 조생종 벼를 심은 이웃들은 수확이 좋았어요.”



그의 고향은 대성동마을(경기 파주시 군내면 조산리). 북동쪽으로 1km 지점에 판문점이 섰고, 북쪽으로 800m를 올라가면 군사분계선(MDL)이 남북을 가른다.

“마을 특성상 일손이 부족해서 농사를 기계에 의존해요. 1980~90년대엔 먹고살 만했습니다. 요즘은 농기계 할부값 내고 나면 남는 게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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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군복무를 하지 않았다. 주민들은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며 납세의 의무도 상당 부분 면제받는다. 통제만큼 누리는 특혜다.

판문점 도끼만행사건(1976년 8월18일)을 또렷하게 기억하는 그는 “북한 핵실험(2006년 10월9일) 때처럼 남북이 날카로워지면 주민들도 예민해진다”고 말했다.

9월23일 마을에선 ‘대성동 한마당 큰잔치’가 열렸다. 대성동초등학교 운동회다. 주민들은 “오랜만에 운동회가 열렸다”고 즐거워하면서 바비큐 파티를 즐겼다.

대성동초등학교의 지난해 정원은 9명. 그중 3명이 6학년으로 학교를 유지하기 어려웠다. 젊은이들이 대처로 떠나면서 운동회를 열지 못할 만큼 학생이 줄어든 것이다.

초등생들 영어 실력 ‘짱’ … 전학 희망자 줄서

집집마다 일석점호 받고 미군에게 영어 배우고
“학생 수가 모자라서 올해부터 외부 학생을 받았어요. 21명의 학생 중 6명이 마을에 살고, 2명은 대처로 나간 주민의 자녀예요. 나머지 13명은 다른 지역에서 우리 학교로 전학 온 녀석들이고요.”(교사 조순희 씨)

2명의 학생이 속한 1학년 1반의 담임인 조 교사는 영어특기로 공모를 거쳐 이 학교에 왔다. 그는 “대한민국에서 영어를 가장 잘 가르치는 초등학교가 우리다. 영어특성화 초등학교, 영어몰입교육 초등학교라고도 불릴 만하다. 고학년은 거의 모두 영어를 웬만큼 구사한다”고 자랑했다.

이 학교 학생들은 일주일에 22시간가량 영어를 공부한다. 마을을 관할하는 공동경비구역(JSA) 경비대대 소속 미군 병사들이 수업을 돕는다.

경기 고양시 일산구에서 대성동마을로 등교하는 윤관(12) 군은 “미국에 살 때처럼 환경이 좋다. 도시 학교보다 이곳이 좋다”고 말한다. 김용준(10·경기 파주시 금촌동) 군도 “행복하다. 재미있게 놀 수 있어 좋다”며 웃었다. 두 자녀를 이 학교에 보내는 하지현(33·경기 파주시 문산읍) 씨는 이렇게 말했다.

“아이들이 햇살처럼 밝아요.”

‘ARMY’라는 글씨가 새겨진 회색 티셔츠와 반바지 차림으로 50m 달리기에 출전한 존 로데스(John Rhodes) JSA 경비대대장(중령)은 아이들의 인기를 독차지했다. 부하들과 함께 출전한 50m 달리기에선 꼴찌를 했지만 3명의 아이를 한꺼번에 등에 업을 만큼 기운이 셌다. 앳된 얼굴의 미군 병사들은 아이들만큼이나 운동회를 즐겼다.

이 학교는 국가가 교육비(수업료, 급식비, 방과후 과외비 등)를 모두 부담한다. 외지 학생들도 같은 혜택을 누린다. 학년당 학생 수가 2~6명으로 적어 영어뿐 아니라 다른 과목에서도 교육이 알차다고 한다. 방과후 수업도 탄탄하기로 소문났다.

외부 학생을 받는다는 사실이 경기 북부지역에 거주하는 눈치 빠른 학부모들의 입소문을 타고 알려지면서 이 학교로 자녀를 보내려는 이들이 줄을 섰다고 한다. 인터뷰를 거쳐 공정하게 학생을 뽑을 예정이라고 조 교사는 말했다.

초등학생과 병사들이 짝을 이뤄 ‘날으는 융단’이라고 이름 붙인 게임을 벌일 때 오병탁 JSA 경비대대 민정중대장(대위)은 경호 작전을 벌였다. 학교 주변에 병사들을 배치하고 주변을 통제한 것. 대성동은 일개 마을로는 ‘세계에서 가장 센’ 경호를 받는다고 한다. 중무장한 1개 중대가 24시간 마을을 지킨다. 일몰 때마다 주민을 상대로 점호(인원 점검)도 한다.

“19시에서 20시 사이에 가가호호 돌면서 인원을 파악합니다. 1년에 240일 넘게 마을에서 잠을 자지 않으면 거주권을 박탈합니다.”

집집마다 일석점호 받고 미군에게 영어 배우고

9월23일 대성동마을에서 바라본 북한 기정동마을이 안개 탓에 뿌옇게 보인다.

1년에 240일 이상 마을서 안 자면 거주권 박탈

대성동은 1953년 휴전협정 때 남북이 DMZ에 하나씩 민간이 거주하는 마을을 두기로 합의하면서 남은 마을로, 본적이 ‘파주시 군내면 조산리’인 사람들만 거주할 수 있다. 국군이 아닌 유엔군 관할로 유엔군이 허가하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다. 휴전협정 제1조 10항은 “비무장지대 내 군사분계선 이남 부분에서의 민사 행정 및 구제사업은 국제연합군 총사령관이 책임진다”고 돼 있다.

“마을엔 현재 49가구 198명이 등록돼 있습니다. 실제 거주자는 100명 남짓이고요. 등록이 까다로워요. 휴전할 때 마을에 주소지를 둔 사람의 직계만 거주가 가능해요. 시집온 며느리는 살 수 있지만 결혼한 딸은 마을을 떠나야 합니다.”(김동현 이장)

김 이장은 딸만 둘이다. 대성동에서 대가 끊길 처지. “불공평하다, 남녀차별이다”라고 꼬집자 “데릴사위를 들이면 된다”며 웃었다. “처가 식구를 실제로 부양하는지, 농사일에 보탬이 되는지를 까다롭게 심사해 데릴사위에겐 거주권을 준다”는 게 오 중대장의 설명이다. 주민들은 통제받지만 소유권과 무관하게 DMZ의 농토를 과점(寡占)해 농사짓는다.

대성동마을에서 MDL을 세로질러 2.6km 올라가면 북한 기정동마을이 나온다. 마을회관에선 기정동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북한은 기정동마을의 연립주택을 지난해 2~3월 새로 단장했고 사람이 살지 않던 건물을 최근 리모델링했다. 새로 손본 집을 개성공단 노동자의 숙소로 활용한다는 관측이 있으나 확인되지는 않는다.

‘대성동 한마당 큰잔치’가 한창일 때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영변 핵시설의 감시카메라와 봉인을 제거할 것을 요청한 사실이 알려졌다.‘핵불능화-테러지원국 해제’까진 순항할 듯 보인 북핵 문제가 역주행한 것이다. 남북관계 경색은 기정동마을 뒤편의 개성공단으로도 불똥이 튀고 있다.

9월23일 대성동마을에서 바라본 기정동마을은 안개 때문에 뿌옇게 보였다. 친구들보다 뒤늦게 짝짓기에 나선 잠자리가 가을바람을 맞으면서 위태롭게 짝을 찾는다.



주간동아 2008.10.07 655호 (p40~41)

  • 대성동=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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