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54

2008.09.30

암스테르담 중세의 고혹 ‘호텔 717’

  • 여행 칼럼니스트·월간 ‘럭셔리’ 여행팀장 a53119@design.co.kr

    입력2008-09-24 13: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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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스테르담 중세의 고혹 ‘호텔 717’

    호텔 717은 평범한 겉모습(맨 왼쪽 사진)과 달리 내부는 골동품과 오래된 장식품으로 격조 높은 분위기를 연출한다.

    암스테르담의 홍등가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시(市) 정책에 따라 새빨간 ‘관능의 집’은 사진가와 예술가의 아틀리에로 변모 중이다. 세상에서 가장 빨간 도시로의 여행을 서둘러야 하는 이유다. 그곳에 가거든 고요하고 고급스러운 호텔 717에 꼭 한번 묵어보시길 권한다.

    암스테르담에 간 건 2006년의 일이다. 2006년은 ‘빛의 화가’ 렘브란트(1606~1669)가 탄생 400주년을 맞는 해였다. 렘브란트의 그림은 천재화가 반 고흐도 최고라 인정했을 만큼 훌륭하다. 노부인을 그린 1632년도 작품이 2000년 크리스티 런던 경매에서 약 350억원에 팔려 나갔을 정도니 세계적 거장의 흔적을 찾아 떠난 여행은 벅차고 감격스러웠다. 사실 그 목적지가 암스테르담이었기에 내심 더 쾌재를 불렀는지도 모르겠다. 혈기방장한 청춘에게 도심 한가운데 섹스박물관이 있고, 대마초는 물론 대마초가 들어간 사탕과 케이크를 무제한 시식할 수 있으며, 실시간 라이브 섹스쇼가 펼쳐지는 ‘쇼룸’은 연인의 체취를 좇아 월담한 처녀처럼 가슴을 벌렁거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참고로 암스테르담의 홍등가는 유독 주말에 더욱 활력 탱천한다. 프랑스와 독일, 벨기에 등에서 대마초와 섹스를 좇아 암스테르담 원정에 나서기 때문이다. 매년 30여 만명이 해외로 섹스관광을 떠나는 독일인, 암스테르담에서 화끈한 총각파티를 하는 유럽의 젊은이들이 대표적인 소비자다. 하지만 이도 곧 과거시제가 될 터이니 아쉬워할 이가 적지 않겠다.

    평범한 외관, 최고 입지, 격조 높은 분위기

    세계적인 출판사 ‘Herbert YPMA’에서 전 세계 주요 도시를 대표하는 단 하나의 스타일리시 호텔만 골라 묶은 서적 ‘Hip Hotels City’에서 호텔 717은 암스테르담 대표로 두꺼운 책의 시작 페이지를 장식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호텔은 전혀 암스테르담스럽지 않다. 고혹적이고 격조 높다. 호텔 최고의 미학은 철저하게 보존된 중세시대 분위기다. 사상 최초로 아프리카에서 월드컵이 열리는 2010년에 200번째 생일을 맞는 이 건물은 역사만큼이나 오랜 골동품과 장식품으로 우아하게 장식돼 있다. 아프리카 전통가면, 이탈리아 무라노 지역에서 구한 유리 세공품, 17세기에 그려진 엘리자베스 바스의 초상화, 쿠바산 시가 등 수세식 화장실과 LCD TV를 제외하면 온통 역사를 지닌 물건들이다. 지배인 로달레 씨의 설명을 곁들이면 “인테리어 소품은 유럽 전역의 경매장과 벼룩시장을 샅샅이 뒤져 발견한 것들”이다. 벽난로의 가장자리를 장식한 골동품은 안트베르펜과 브뤼셀의 건축 폐자재 전문상가에서 구했고, 구리 침대는 런던의 뎁티치(Deptich) 디자인 회사에서 맞춤 제작했다.



    호텔의 역사는 유서 깊다. 17세기 설탕 판매로 큰 부자가 된 설탕 상인이 수십 년간 거주하던 집이 그 전신이다. 설탕 부호의 집이 호텔로 변신한 때는 1997년 5월8일. 1년여의 대규모 리노베이션 작업을 통해 격조 높은 게스트하우스로 다시 태어났다. 과거의 흔적은 호텔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호텔 지하에는 조그마한 문이 하나 나 있는데 그것은 부자 주인을 모시던 하인들이 거주하던 곳과 통했지만, 지금은 출입이 금지돼 있다.

    암스테르담 중세의 고혹 ‘호텔 717’
    호텔은 지극히 평범한 외관을 하고 있지만 안은 화려하게 장식됐다. 17~18세기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 속 화면에서 보았음직한 수많은 흑백사진으로 뒤덮인 벽과 책장, 식탁에 놓인 큼지막한 화병과 화분들, 거실 벽면을 장식한 정물화와 초상화는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느낄 법한 고요와 평온을 선사한다. 객실에는 예술적 감수성이 뚝뚝 흐른다. 슈베르트, 피카소, 셰익스피어, 톨킨, 반 고흐의 명패를 단 객실은 각각의 예술가를 추억할 수 있는 악보와 그림, 책과 편지를 숨결처럼 간직하고 있으니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 중에는 유독 예술을 사랑하는 이가 많다.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역의 가옥들은 대부분 파티오(안뜰)를 가지고 있는데, 영국식 게스트하우스 분위기의 호텔 717 또한 파티오에서 아침을 서빙한다. 물론 실내 레스토랑에서 아침을 해결할 수도 있지만 여행자들은 큼지막한 파라솔 아래 신선한 먹을거리가 준비돼 있고, 파라솔 옆으로는 크고 작은 식물과 담쟁이덩굴이 우거진 이곳을 선호한다. 새우와 달걀, 트리플 버섯을 곁들인 구운 연어와 로즈메리와 타라곤(국화과의 쌍떡잎식물)을 곁들인 어린 양 필레 살이 주방장의 추천 메뉴다.

    암스테르담 중세의 고혹 ‘호텔 717’
    호텔은 최고 입지를 자랑한다. 그 유명한 렘브란트의 작품 ‘야경’을 소장하고 있는 국립미술관, 반 고흐 뮤지엄이 걸어서 갈 수 있을 만큼 가깝다. 객실의 통유리 너머로 암스테르담에서 가장 아름답기로 유명한 프린센그라츠 운하가 흐르는 이곳의 하루 숙박료는 피카소 스위트룸을 기준으로 660유로(약 80만원). 객실은 8개밖에 없고, 예약한 고객이 아니면 입장조차 할 수 없다. 그저 일반 주택인 듯 평범한 외관을 하고 있어 두 눈 부릅뜨지 않으면 지나치기 십상이므로 주의해야 한다. (주소 Prinsengracht 717 1017 JW Amsterdam, 문의 (31) 2042 70717, info@717hotel.n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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