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54

2008.09.30

“각하, 쏟아부을 돈은 아직 충분하옵니다”

  •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입력2008-09-22 12: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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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하, 쏟아부을 돈은 아직 충분하옵니다”
    “주가 1400선이 무너졌소. 탈출구는 없는 것이오?”/ “….”/ “방책이라도 내놔야 할 것 아니오? 이 난국을 어찌 극복한단 말이오?”

    이때 용감하게 나서는 우리의 강만수 장관. 굳은 얼굴에 비장함마저 흐른다. 어렵게 꺼내는 한마디. 모두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각하, 제겐 아직 10조원의 연기금이 남아 있습니다.”

    리먼브러더스의 파산과 세계적 보험사 AIG의 유동성 위험, 뱅크오브아메리카(BoA)의 메릴린치 인수 등 잇따른 ‘미국발(發) 악재’로 하룻밤 사이에 한국 증시는 51조원이라는 돈이 허공에서 증발했다. ‘9월 위기설’은 없다고 줄기차게 이야기하던 정부의 모습이 애처롭기만 하다.

    코스피 주가가 위협받을 때마다 정부가 꺼내드는 비장의 무기는 연기금을 통한 주가 부양. 물론 연기금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주식을 매입하고 해외투자에 나서는 것을 비판할 수는 없다. 노령화에 연기금이 고갈될 것을 우려한다면 적극적인 투자는 오히려 환영받을 수 있다. 하지만 연기금 운영이 독립성을 보장받지 못한 채 정부 입김에 좌지우지되는 것이 문제. 오죽했으면 연기금을 두고 정부의 현금지급기라는 말이 나왔겠는가.



    정부의 쌈짓돈처럼 운영되던 연기금이 결국 사고를 쳤다. 국민연금이 리먼사와 AIG, 메릴린치에 연기금 7216만 달러(약 838억원)를 들여 채권과 주식 등에 투자했지만 9월15일 현재 평가액은 2430만 달러. 원금의 66.3%인 4785만 달러에 이르는 손실이 발생한 것이다.

    그럼에도 ‘연기금을 통해 10조원 이상 주식 매수 여력이 있다’ ‘이럴수록 연기금을 통해 주가를 떠받쳐야 한다’는 주장이 심심치 않게 나온다. 연초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로 주가가 폭락하자 당시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는 연기금의 주식투자계획을 앞당겨 집행하겠다고 밝혔다가 상반기 중 4조3000억원에 이르는 주식투자 손실을 입었던 일은 이미 ‘Out of 기억’이다. 사라진 기억 탓인지 또다시 쌈짓돈에 손이 간다.

    “각하, 제겐 아직 10조원의 연기금이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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