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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위용 특파원의 모스크바 광장에서

축구 4강 선물 거리응원의 자유

  • 모스크바=정위용 동아일보 특파원 viyonz@donga.com

축구 4강 선물 거리응원의 자유

러시아 축구대표팀이 2008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 2008)에서 네덜란드를 꺾고 준결승에 진출한 6월21일. 모스크바 거리에선 젊은이들이 활개를 쳤다.

이날 젊은이들은 러시아 국기를 들고 도로 중앙선을 따라 걸으며 “라씨야(러시아의 원음), 라씨야”를 외쳤다. 또한 달리는 자동차의 창문 밖으로 상의를 벗은 웃통을 내밀며 경적과 함께 고함을 질러댔다. 승리를 축하하기 위해 밤늦도록 술을 마시고 귀가한 젊은이들은 그래도 성에 차지 않았는지 주택가에서 폭죽을 터뜨렸다.

러시아가 이 대회에서 준결승에 오른 것은 1991년 옛 소련 해체 이후 처음이다. 소련 시절까지 합하면 1988년 네덜란드에 패해 준우승을 차지한 이후 20년 만이다.

그렇다고 해도 이날 길거리에서 분출된 젊은이들의 행동은 지나치게 파격적이었다. 러시아 치안당국은 지금까지 이런 행동에서 파생되는 무질서에 예민한 반응을 보여왔다.

2003년 6월 이후 러시아 경찰은 록그룹의 야외공연을 대부분 허가하지 않고 있다. 당시 경찰은 러시아 록그룹 ‘타임머신’의 야외공연을 허가했다가 공연 도중 폭발사고가 나는 바람에 크렘린으로부터 엄중 문책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후 외국 유명 록가수의 모스크바 공연은 대부분 축구경기장이나 실내체육관에서 열렸다. 야외공연 도중 불의의 사고가 사회 안전을 해칠 수 있다는 것이 러시아 경찰의 주장이었다.

러시아 경찰의 ‘안전 과민증’은 5월21일 모스크바 루즈니키 축구경기장에서 열린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도 나타났다. 당시 영국에서 넘어온 첼시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축구팬들은 모스크바 거리에서 대규모 응원전을 벌이려 했다. 그러나 ‘당국의 배려’로 공항에서 곧바로 대형버스에 실려 경기장으로 직행해야 했다. 일부 영국 관중은 경기장에 러시아 경찰제복을 입고 나와 이런 조치에 간접적으로 항의했다.

하지만 러시아 경찰의 과잉 대응은 유로 2008에서 무너졌다. 네덜란드와의 경기가 끝난 이후 크렘린 근처 트베르스카야 거리에는 젊은이들이 밤새도록 버린 쓰레기와 맥주병이 수북이 쌓여 6월22일 오전 내내 차량 통행이 금지됐다. 그런데도 경찰은 “질서유지에 협조해준 시민들에게 감사한다”고 발표했다.

러시아 축구팬의 파격 행동은 영국 축구팬들에게서 전염됐다는 말이 있다. 러시아 국기를 자동차에 매달고 다니던 빅토르 파블로비치(21) 씨는 “대규모 해외 스포츠팬이 모스크바를 방문한 것은 1980년 모스크바올림픽 이후 처음”이라며 “많은 시민들이 영국 축구팬을 보고 자유 응원이 뭔지를 알게 됐다”고 말했다.

미국과 유럽 등 서방은 민주주의 확산을 위해 러시아를 “언론 집회의 자유가 결핍된 국가”라고 부른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 축구팀은 허가 없이도 거리에서 응원할 수 있는 자유를 안겨줬다. 러시아 일간지들은 “(러시아 축구팀) 거스 히딩크호는 우리에게 미래의 희망을 심어줬다. 이는 시작에 지나지 않는다”고 전했다. 축구 경기로 젊은이들이 찾은 자유 공간이 민주화로 가는 골목이 될지, 무책임한 해방구에 머물지 두고 볼 일이다.



주간동아 2008.07.15 644호 (p65~65)

모스크바=정위용 동아일보 특파원 viyon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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