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76

2017.02.22

와인 for you

봄 향기 가득한 청정자연의 소비뇽 블랑

뉴질랜드 ‘킴 크로포드’

  • 김상미 와인칼럼니스트 sangmi1013@gmail.com

    입력2017-02-17 16:5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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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 추위가 완전히 가시지 않았지만 마음엔 이미 봄이 온 모양이다. 봄처럼 싱그러운 뉴질랜드 와인이 생각나니 말이다. 와인셀러에서 ‘킴 크로포드(Kim Crawford)’ 소비뇽 블랑(Sauvignon Blanc)을 꺼냈다. 와인을 따르자 청정지역의 신선함과 새싹의 푸릇함이 잔 밖으로 뿜어져 나왔다.

    킴 크로포드는 역사가 길지 않다. 1996년 설립됐으니 올해 21주년을 맞는다. 하지만 킴 크로포드처럼 빠르게 성장한 와이너리도 드물다. 뉴질랜드 북섬 오클랜드(Auckland)에서 작은 규모로 시작한 이 와이너리는 창립 2년 만에 미국 시장에 와인을 수출했다. 4년째 되던 해인 2000년에는 뉴질랜드 남섬 북단에 위치한 말버러(Marlborough) 지역으로 이주해 최첨단 시설을 갖춘 와이너리를 세웠다. 2003, 2004, 2006, 2008년에는 소비뇽 블랑이 세계적인 와인 잡지 ‘와인 스펙테이터(Wine Spectator)’가 선정하는 ‘올해의 100대 와인’에 들기도 했다.

    신생 와이너리임에도 이렇게 괄목할 만한 성과를 올릴 수 있었던 것은 킴 크로포드가 포도의 순수한 맛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1990년대 말은 오크향이 가미된 와인이 한창 인기를 끌 때였다. 와인을 오크통에서 숙성시키면 맛은 부드러워지지만 포도 본연의 맛은 흐려지는 경향이 있다. 깔끔하고 상큼한 와인을 지향하는 킴 크로포드는 유행에 편승하지 않고 오크 숙성을 거치지 않은 와인을 출시했다. 그뿐 아니라 그들은 2001년 뉴질랜드 최초로 스크루 캡(screw cap)을 도입했다. 코르크를 쓰지 않으면 저가 와인으로 오해받을 수 있었지만 와인의 신선함을 살리는 데는 스크루 캡이 더 효과적이라고 본 것이다. 그들의 판단은 옳았고, 16년이 지난 지금 뉴질랜드에서 생산하는 와인 90% 이상이 스크루 캡을 사용하고 있다.

    킴 크로포드를 대표하는 와인은 소비뇽 블랑이다. 이 와인은 우리나라에 수입된 뉴질랜드 와인 가운데 2010년부터 6년 연속 판매량 1위 자리를 지킬 정도로 인기가 높다. 말버러 지역의 강한 햇빛과 서늘한 해풍 속에서 생산된 소비뇽 블랑은 신선하면서도 우아하다. 파인애플, 망고, 리치 같은 열대과일향에 허브, 흰 꽃, 미네랄 등 다양한 향미가 어우러져 있다.

    놀라운 것은 킴 크로포드 소비뇽 블랑 한 병에 120가지 와인이 섞여 있다는 점이다. 똑같은 소비뇽 블랑이어도 밭 위치에 따라 포도 맛이 다르다. 육풍과 해풍의 교차가 빈번한 밭의 포도는 허브향이 강하고, 언덕으로 둘러싸여 바람이 적은 곳의 포도는 과일향이 신선하다. 고운 모래가 쌓인 충적토의 포도는 맛이 우아하며, 자갈이 많고 일조량이 풍부한 땅에서 자란 포도는 열대과일향이 진하다. 킴 크로포드는 이런 특성을 고려해 밭 전체를 240개의 작은 구획으로 나눴다. 그리고 여기서 생산된 와인을 맛과 향의 미세한 차이에 따라 120가지로 구분했다. 이 모든 와인을 환상의 비율로 섞은 결과물이 바로 킴 크로포드 소비뇽 블랑인 것이다.



    와인은 인간을 닮은 술이다. 인간이 발전을 이루고자 고통을 감내하듯 포도나무도 혹독한 겨울을 견뎌야 봄에 새싹을 틔울 수 있다. 와이너리는 최고의 맛과 향을 찾기 위해 수없이 많은 블렌딩을 시도해야 한다. 유난히 힘들던 겨울이 끝나가고 있다. 다가오는 봄은 좀 더 평안하기를 소망하며 봄 향기 가득한 소비뇽 블랑을 한 모금 음미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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