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76

2017.02.22

인터뷰

소강석 새에덴교회 담임목사 | “윤동주 이후 우리 모두는 가슴에 시 한 편을 가졌다”

윤동주 평전 시집 ‘다시, 별 헤는 밤’ 펴내

  •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입력2017-02-17 16:4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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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동주의 시 세계와 생애, 사상을 시로 읊은 평전 시집 ‘다시, 별 헤는 밤’(샘터)이 최근 나왔다. 이처럼 색다른 작업을 한 사람이 목사라는 점도 색다르다. 경기 용인시 새에덴교회의 소강석(55·사진) 목사다. 그가 1995년 ‘월간 문예사조’를 통해 등단한 시인으로 2015년엔 시집 ‘어느 모자(母子)의 초상’으로 천상병귀천문학대상까지 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평전 시집’을 낸 것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시집 말미에 시 해설을 쓴 강희근 경상대 국문과 명예교수는 “지금까지 윤동주 평전은 많이 나왔지만 윤동주의 내면으로 들어가 그가 못다 한 고백을 끄집어내고 오늘의 우리와 재회하게 하는 평전시를 쓰는 시도는 처음”이라고 평가했다.

    올해는 윤동주 탄생 100주년. 소 목사는 시집 출간 말고도 1월 8일 새에덴교회에서 추모 음악회를 열었고, 23일에는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탄생 100주년 기념 학술회를 주최했다. 3월에는 지상파에서 윤동주 다큐멘터리도 선보인다. 그 전에는 윤동주가 태어난 중국 룽징(龍井)을 비롯해 그가 다닌 일본 릿쿄대와 도시샤대, 최후를 맞은 후쿠오카 감옥 등 윤동주의 흔적을 빠짐없이 찾아다녔다. 윤동주의 6촌 동생인 가수 윤형주와 함께 헐벗은 윤동주의 무덤에 뗏장을 입히기도 했다. 이렇듯 목사가 ‘윤동주에 푹 빠진’ 연유는 무엇일까. 그를 최근 서울 서대문구 동아일보 충정로 사옥에서 만났다.

    ▼ 윤동주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윤동주 시 한 편 읽어보지 않은 이가 있을까요. 그만큼 사랑받는 시인입니다. 저도 그의 시를 읽으면서 시인이라는 꿈을 키웠습니다. 윤동주의 시를 읽으면 읽을수록 그의 세계에 빠져들었습니다. 윤동주의 이름으로 별을 보면 그냥 예사로운 별이 아닙니다. 사람에 따라 저항의 별로 느껴지기도 하고, 희망의 별 혹은 구원의 빛으로도 보입니다. 다차원적인 윤동주의 시 세계에 빠져들면 그의 순결한 영혼과 서정적 저항성에 깊은 매력을 느끼게 됩니다.”

    ▼ 윤동주를 어떤 시인으로 바라보는 건가요.



    “윤동주를 인간의 보편적 가치와 자연의 서정성을 노래한 시인으로 보는 게 주류지만, 저는 윤동주의 흔적을 직접 찾아가보면서 다른 해석을 했습니다. 저는 윤동주가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민족의 아픔과 저항정신을 표현한 ‘저항적 예언자 시인’이라고 봅니다.”



    ▼ 윤동주와 기독교의 접점은 어디서 찾을 수 있습니까.

    “윤동주가 태어난 중국 룽징 명동촌(明東村)은 우국지사와 선각자들이 모이던 곳입니다. 당시 이 지역 기독교는 순혈주의적 신학과 신앙의 순결에 목숨을 걸었던, 전혀 때 묻지 않은 기독교였습니다. 윤동주의 할아버지 윤하연은 독실한 장로이자 선각자였고, 독립투사에게 자금을 대줬습니다. 외삼촌 김약연은 명동촌에 학교와 교회를 세운 목사로 ‘나의 행동이 나의 유언’이라고 얘기할 정도로 삶, 신앙, 애국심이 일치하던 분입니다. 이런 가족 속에서 윤동주는 어린 시절부터 기독교 신앙과 저항정신, 애국혼을 가슴속에 쌓아나갔다고 봅니다.”

    ▼ 평전시를 쓰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는지요.

    “평전시를 쓰는 동안 ‘윤동주 병’에 걸렸습니다. 어디를 가도 윤동주 생각이 나고, 특히 깊은 밤이 되면 윤동주가 제 마음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의 시와 연구 서적을 탐독하면서 윤동주가 제 마음에 들어오기도 하고 제가 윤동주 속으로 들어가기도 하면서 그가 못다 썼다고 생각되는 시를 한 편 한 편 썼습니다.”

    ▼ 시집에서 ‘윤동주가 하지 못한 고백’을 대신 해주고 싶었다고 했는데 그게 어떤 건가요.

    “윤동주는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단 한 권의 시집을 남겼습니다. 그가 시로 남긴 얘기보다 못다 한 얘기가 당연히 많았을 겁니다. 윤동주의 시 가운데 ‘간판 없는 거리’를 보면 그가 하지 못한 고백의 단서를 찾을 수 있습니다. 이 시는 윤동주가 폭력과 광기의 시대를 살면서 항일을 넘어 온 세상이 평화롭게 사는 희망을 담은 예언자적 시이자, 모든 민족에게 서광을 비추는 제사장적 위로의 메시지입니다. 그저 어진 사람들과 손목을 잡고 평화롭게 거닐 수 있는 그런 시대를 그린 겁니다.”

    ▼ 평전시 가운데 ‘서시(序詩), 이후’의 첫머리가 ‘윤동주 이후/ 우리 모두는 가슴에 시 한 편을 가졌다’로 시작하는데, 어떤 의미가 담겨 있습니까.

    “윤동주의 서시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윤동주는 이 한 편의 시를 통해 황량하고 피폐한 우리 가슴에 시심이라는 한 송이 꽃을 선물해준 겁니다. 윤동주는 우리 가슴에 살아 움직이면서 눈물을 닦아주고, 쓰러진 자를 일으켜 세워주며, 절망에 빠진 사람에게 희망을 주는 ‘불멸의 시인’입니다. 제가 다른 평전시에선 ‘나를 보고 슬퍼하지 마세요’라는 시 구절을 담았는데요, 이건 그가 이르게 생을 마감했지만 여전히 우리 곁에 살아서 지금도 얘기를 들려주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 목사님에게 문학은 어떤 의미가 있나요. 평소 사역과 연관이 있는지요.

    “흔히 목회자는 말만 하는 사람으로 생각하는데, 현대 사회는 문사적 목회자를 요구합니다. 목회자의 진심 어린 글 한 줄, 고백적 칼럼에 더 큰 감동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목회자는 깊은 내면적 사유와 기도를 통한 글을 쓰면서 성도들과 소통해야 합니다. 제게 문학은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고백이자, 이 시대와 소통하는 사다리와도 같습니다. 문학이라는 꽃씨를 가는 곳마다 뿌리고 싶습니다. 언젠가 사람들의 가슴속에 피어난 사랑과 용서, 화해와 은총의 꽃을 보고 싶습니다.”



    ▼ 윤동주를 이 시대에 다시 불러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요.

    “지금까지 윤동주 연구에서 기독교 정신에 기초한 저항정신의 면모가 잘 조명되지 않았습니다. 윤동주는 우리 민족의 불멸의 시인이자 한국 교회의 자산입니다. 우리가 윤동주를 제대로 이해하고 만날 때 참된 인간의 자화상과 민족의 정체성을 회복할 수 있을 겁니다. 이게 윤동주 탄생 100주년을 맞아 윤동주를 새롭게 만나자는 의미에서 여러 행사를 기획한 이유입니다.”

    소 목사의 윤동주에 대한 얘기는 쉽게 끝날 것 같지 않았다. 그의 애정만큼 생각도 많고 할 얘기도 많은 듯했다. 화제를 돌려 그의 근황을 물었다. 그는 “할 일이 많아 좀 지친 상태”라면서 “평소 ‘목사는 휴가가 없다’고 얘기해왔는데 몸이 너무 안 좋아 지난 설 연휴에 일주일간 쉬어보니 ‘게으르지 않다면 쉬는 것도 회복을 위한 사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 올해 종교개혁 500주년인데 특별히 기획하는 것이 있습니까.

    “종교개혁의 선구자인 루터가 가장 힘주어 말한 것이 ‘아드 폰테스’, 즉 ‘근본으로 돌아가라’입니다. 종교개혁 500주년이 보여주기 위한 기념행사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근본을 되새기며 다시 돌아가야 합니다. 기독교의 본질은 ‘복음’인데 복음의 정신을 잃어버리고 세속화되면 기득권, 교권 등을 추구하면서 교회 내부에서부터 다툼이 일어납니다. 당연히 이 모습은 사회에 부정적으로 비치고, 사회로부터 멀어지게 됩니다. 올해는 행사보다 본질을 찾는 일에 집중하려고 합니다.”

    ▼ 최근 최순실 게이트 등으로 사회가 어수선합니다.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저도 밤잠을 못 잘 정도로 현 시국을 염려하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국민이 불안해하는 만큼 정치인들은 더 자중해야 합니다. 누드 풍자는 인격모독을 넘어 국가 망신입니다. 일부 선동하는 언론도 정론으로 돌아와야 하고, 우리 모두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결과를 기다리며 법치주의를 지켜나가야 할 것입니다.”

    ▼ 우리 사회에 어떤 점이 부족하다고 보십니까.  

    “우리 사회에 큰 어른이 없다는 게 아쉽습니다. 사회적 공익과 진리를 언행일치로 본을 보이고 국민을 통합하려는 큰 나무, 큰 그릇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합니다. 서로 ‘일리가 있는’ 주장을 하는데, 일리는 충돌만 낳습니다. 이를 바다같이 통합하고 지혜롭게 해결하는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이제는 갈등과 대결이 아닌, 통합과 화합의 시대를 준비해야 할 때입니다.” 


    간판 없는 거리 윤동주

    정거장 플랫폼에/ 내렸을 때 아무도 없어//
    다들 손님들뿐/ 손님 같은 사람들뿐//
    집집마다 간판이 없어/ 집 찾을 근심이 없어//
    빨갛게/ 파랗게/ 불붙는 문자도 없어//
    모퉁이마다/ 자애로운 헌 와사등에/ 불을 켜놓고//
    손목을 잡으면/ 다들, 어진 사람들/ 다들, 어진 사람들//
    봄, 여름, 가을, 겨울,/ 순서로 돌아들고  






    그 어떤 밤도 흐린 별 하나를 이기지 못하리

          -윤동주 묘에서 바치는 뒤늦은 조사(弔辭)

    님은 후쿠오카의 형무소에서 싸늘한 시신이 되고
    한 줌의 백골가루가 되어 떠났지만
    우린 여전히 님을 보내지 못하고
    가슴속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는
    흐린 별 하나를 그리워합니다

    자유와 사랑을 빼앗긴 들녘에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되어
    훌훌 떠나간 가인(歌人)
    십자가 종탑 아래서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진 조국을 끌어안고
    목 놓아 울고 또 울었던 서글픈 사내

    님이 사랑한 조국은 끝내 아무런 대답도 없었지만
    잠 못 드는 밤, 뜨거운 연서를 쓰고
    주사자국에 파랗게 멍든 떨리는 손으로
    칠흑 같은 절망의 밤을 향하여
    백야의 시를 바쳤던 가녀린 시혼(詩魂)

    님이 비록 온밤을 밝히는 찬란한 별이 되지 못하고 어느 깊은 밤 흐린 별 하나로 떠 있을지라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들의 가슴에
    자유의 등불과 백야의 빛이 되어
    검은 어둠을 사르고 있다면
    지상의 그 어떤 밤도 흐린 별 하나를 이기지 못하리

    님이여,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웁니다
    그 어딘가 잎새 하나 붙잡고 울고 있을 외로운 눈물이여
    그러나 그 눈물이 소리 없는 새벽 보슬비 되어
    오늘 우리의 가슴과 민족의 광야에
    이름 없는 산들꽃을 피우는
    더운 가슴의 사랑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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