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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FORMANCE|뮤지컬 ‘빨래’

요절복통 웃음 주고 가슴 찡하게 마무리

  • 조용신 뮤지컬 평론가

요절복통 웃음 주고 가슴 찡하게 마무리

요절복통 웃음 주고 가슴 찡하게 마무리

‘빨래’의 주인공들은 ‘얼룩 같은 어제를 지우고, 먼지 같은 오늘을 털어내기를’ 노래한다. 어려운 삶을 정겹고 따스하게 조망한 것이 이 작품의 장점이다.

관람 내내 배꼽 빠지게 웃다가도 어느 순간 관객의 콧잔등을 시큰하게 만드는 아담한 창작뮤지컬 ‘빨래’가 대학로에서 공연 중이다. 배경은 서울의 어느 변두리. 남자 주인공은 공장에서 일하는 불법체류 외국인이고 여자 주인공은 시골에서 상경한 비정규직 노동자이며, 주변 인물들 역시 사글셋방에서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는 저소득층이다.

‘빨래’는 자칫 정치적인 해석이 개입될 수도 있는 이러한 소재를 여타 뮤지컬들과 구별되는 방식으로 다룬다. 저소득층의 일상이라는 소재는 규모가 크고 화려한 뮤지컬에 비해 촌스럽고 신파적이거나, 아니면 고단한 일상을 적나라하게 묘사해 보는 이로 하여금 불편한 감정을 느끼게 할 것이라는 선입견을 줄 수 있다. 그러나 ‘빨래’는 이들의 소박하고 따스한 일상사가 복사열을 통해 전이된 것처럼 느껴져 절로 흐뭇한 미소를 짓게 하는 작품이다. 왜냐하면 이 작품은 소극장에서 보여줄 수 있는 감동의 최대치에 근접한 여러 장점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빨래’의 첫 번째 매력은 인간미가 물씬 풍기는 캐릭터들이다. 강원도에서 상경해 서울생활 5년차인 여주인공 나영은 반지하 사글셋방에서 살며 서점에서 일하는 27세의 비정규직 직원이다. 상대역인 남자 주인공 솔롱고는 몽골에서 한국으로 단기 연수를 왔다가 눌러앉은 불법체류자 신분의 이주노동자로 필리핀 출신 이주노동자 친구와 함께 산다. 두 사람은 이웃사촌으로 밀린 빨래를 널기 위해 올라간 옥상에서 만나 사랑을 키운다.

하지만 분홍빛 사랑 이야기만을 기대하기에 등장인물들의 일상은 참으로 팍팍하다. 솔롱고는 서울생활 6년차에 밀린 월급이 받은 월급보다 많은 상태다. 나영 역시 직원들의 피와 땀을 쥐어짜 서점을 주식시장에 상장한 사장의 면전에서 입바른 말을 했다는 이유로 하루아침에 해고자가 된다. 나영이 사는 사글셋방의 주인 할머니는 마흔이 다 되도록 방 안에 갇혀 기저귀 신세를 져온 지체장애인 딸을 눈물을 삼키며 보살펴왔다. 나영의 옆방에서 매일같이 고성을 터뜨리는 과부 희정 엄마와 홀아비 구씨의 사랑은 위태위태하다.

‘빨래’의 두 번째 장점은 성능 좋은 에스프레소 머신에서 깔끔하게 추출된 것 같은 세련된 연출이다. 작가는 관객을 계몽하려 하지 않고 공감할 수 있는 사건들에 과장되지 않은 코믹함을 가미해 촘촘한 스토리라인을 짜놓았다. 이 작품은 객석의 웃음을 이끌어내기 위해 배우들로 하여금 과장된 즉흥대사를 쏟아내게 하는 여타의 소극장 창작뮤지컬들에 비해 가감(加減)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탄탄한 대사가 돋보인다. ‘빨래’의 대본과 연출을 맡은 극작가 추민주는 2003년 겨울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공연으로 이 작품을 처음 학교 무대에 올렸을 당시, 주변의 사례들을 통해 실감나는 대본을 만들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빨래’의 감동은 배우들의 안정된 연기에서 온다. 순박한 몽골 청년 솔롱고에서 여러 도시적인 캐릭터들에 이르기까지 순발력 있게 변신하는 남주인공 박시범과 험난한 사회에 부딪혀 성장하는 여주인공 황지영을 비롯한 배우들의 활약이 대단하다. 특히 연극판에서 잔뼈가 굵은 실력파 배우들의 진지한 연기와 노래 실력은 캐릭터와 짝을 이루며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음악적인 재미를 안겨준다.

셋방살이 인생들의 비애 유머러스하게 그려

상업 극장에서 2005년에 초연된 ‘빨래’는 그해 제11회 한국뮤지컬대상 극본상을 받았다. 그 후 이번에 새로 업그레이드된 ‘빨래’는 기존 단막극 구조에서 2막으로 바뀌었다. 이런 극의 구조를 여러 장르를 넘나드는 귀에 익숙한 음악들이 지탱하고 있다. 신예 작곡가 민찬홍이 초연에 비해 노래 9곡, 연주곡 5곡을 추가해 만든 총 20곡의 유려한 노래들은 드라마 진행의 적재적소(適材適所)에 자리해 작품을 풍성하게 만든다. 객석 왼편 위쪽에 자리잡고 있는 라이브 밴드와 부스 코러스들은 아날로그적인 소통을 원하는 무대와 객석의 간격을 한층 가깝고 들뜨게 만든다. 소극장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도입된 미닫이문 스타일의 세트는 스펙터클한 장면 전환을 수행하기에는 다소 어려움이 있지만 많은 소품들과 함께 잔재미도 안겨주었다.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빨래’는 힘든 현실에서도 꿈을 잃지 않는 희망을 상징한다. ‘얼룩 같은 어제를 지우고, 먼지 같은 오늘을 털어내고, 주름진 내일을 다리는’이라는 노랫말은 이 작품의 주제를 함축적으로 드러낸다. 비록 인물들을 괴롭히는 현실이 개선되거나 해결되는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지만, 극은 구질구질한 빨랫감 같은 산동네 셋방살이 인생들의 비애를 ‘생활유머’와 정겨움으로 세탁했다. ‘빨래’는 이주노동자 100만명 시대와 청년실업 문제로 어수선한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에게 문득 더불어 사는 삶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8월17일까지 대학로 원더스페이스 네모극장(구 사다리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문의 02-6083-1775).



주간동아 2008.05.13 635호 (p84~85)

조용신 뮤지컬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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