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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도우미 없이 난 못 살아”

독거 노인 많은 이탈리아 200만명 취업 중 … 가사부터 말벗까지 수요 계속 늘어

  • 로마=김경해 통신원 kyunghaekim@tiscali.it

“외국인 도우미 없이 난 못 살아”

산책하는 할머니를 지나치면서 ‘옆에서 다정스레 부축하는 걸 보니 딸이나 손녀인가봐’라는 상상은 이제 옛말이다. 신세대 이탈리아 노인들의 최신 트렌드는 바로 외국인 ‘도우미’를 고용하는 것이다. 노인 도우미는 이탈리아 사회에서 한창 뜨고 있는 신종 직업. 급속한 사회 고령화 현상이 이런 직업을 낳은 것이다.

외국인 노인 도우미가 공식적으로 이탈리아 사회에 처음 등장한 것은 2003년 무렵이다. 당시 특별이민법 시행으로 50만명의 이주여성 노동자가 대거 입국하면서 도우미 돌풍이 시작됐다. 이때 이탈리아어로 ‘돌본다’라는 뜻인 ‘badare’에서 파생한 신종 단어 ‘도우미(badante)’도 생겨났다.

도우미 출현 초기이던 몇 년 전, 지방의 한 마을에서는 노부모를 모시는 금발의 러시아 도우미들에게 반한 장년층 남성들이 줄줄이 이혼하고 새장가를 가는 기현상도 벌어졌다. 위기를 맞은 마을 중년 여성들이 시장을 찾아가 러시아 도우미 입성을 전면 거부하는 집단항의 소동을 벌여 이탈리아 전역에 화제가 됐다. 물론 이탈리아인 도우미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이탈리아인 도우미는 전체 도우미 수의 20%도 되지 않는 데다 몸값이 비싸고, 3D 직업인 도우미를 하려는 사람도 매우 드물다.

도시마다 도우미 직업교육 개설

현재 이탈리아 노인 3명 가운데 1명이 독거 노인이다. 평균수명이 길어 유럽에서 장수 국가로 첫손 꼽히는 이탈리아는 2030년에는 인구 3명 중 1명이 65세 이상, 그리고 80세 이상 노인이 전체 인구의 10%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사회 고령화에 따라 자식들의 가계부에서 노인 복지비 지출은 점점 커지고 있다.



노인들이 도우미를 찾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혼자 일상생활을 꾸려나가기가 벅찬 독거 노인은 물론, 거동이 불편한 환자나 장애 노인들은 하루 종일 보살핌이 필요하다. 하지만 맞벌이로 바쁜 자녀들은 이런 부모를 모시지 못한다. 또 사립이나 시립 노인요양 시설의 월 이용료가 수천 유로에 달해 경제적으로도 도우미를 채용하는 게 훨씬 낫다는 계산이다.

또 이탈리아 노인들은 자식이 있어도 자신이 평생 살던 집에서 여생을 마치는 것을 선호한다. 배우자와 사별한 경우에도 자식 집에 얹혀사는 방식은 원치 않는다. 이런 이유로 이탈리아에는 독거 노인이 많을 수밖에 없다. 밀라노시 한 곳의 독거 노인만 해도 9만명을 넘어섰다. 노인전문가들 역시 고령자들은 시설 좋은 양로원보다 평소 익숙한 환경에서 생활하는 게 정신적, 신체적으로 더 낫다고 말한다.

그래서 현재 이탈리아에는 우크라이나 폴란드 러시아 등 동유럽 출신 도우미와 필리핀 스리랑카 등 아시아, 페루를 비롯한 남미 출신 등 200만명 이상의 외국인 도우미가 일하고 있다. 그러나 도우미 공급은 여전히 절대 부족한 형편이다. 이제 도시마다 도우미 에이전시, 도우미 직업교육이 개설돼 있고 베이비시터보다 노인 도우미를 찾는 사람이 더 많다. 또 일상 대화에서도 “어머님은 도우미와 사세요”라는 표현이 자연스러울 뿐 아니라, 더 효도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로마 제멜리 의대 노인의학과는 도우미 교육과정을 처음으로 개설해 도우미가 갖춰야 할 응급처지 지식, 노인심리학, 노인영양학 등 전문교육을 시키고 있다. 이 강의는 등록 대기자가 수백명에 이를 정도로 성황리에 진행되고 있다. 강의 수료자는 대학병원에서 운영하는 도우미 명단에 등록된다. 일종의 도우미 면허증을 소지한 이들은 전문성을 인정받아 쉽게 일자리를 찾는다고 한다.

외국인 도우미들은 대부분 고국에 자녀와 남편이 있는 30대 여성들로 동유럽 출신이 가장 많다. 이들은 관광비자로 입국해 도우미 일을 구한 뒤 대개 이탈리아에 눌러앉는다. 도우미의 56.8%가 불법 이민자라는 통계도 있다. 지난해 말 이탈리아 정부는 불법체류 중인 외국인 노동자들을 정규 이민자로 받아주는 특별이민법을 시행했다. 이때 6만5000명의 도우미를 정규 이민자로 받아들였는데, 정규 이민을 신청한 도우미 수가 무려 71만1000명에 달했다.

입주 도우미는 숙식 제공 외에 최소 월 800~1000유로(120만~150만원)의 월급을 받는다. 이들에게 특히 필요한 것은 이탈리아어 구사 능력이다. 노인들과 기본적인 의사소통 외에도 외로운 노인들의 말벗이 돼줘야 하기 때문이다.

가정 내 글로벌화 더 확산 전망

최근 만나본 루마니아인 조셉은 팔순 가까운 치매 할아버지의 입주 도우미로 일하고 있는 보기 드문 남성 도우미였다. 조셉의 아내 또한 다른 가정에서 도우미로 일하고 있는데 2주에 한 번 얼굴 보기도 힘들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딸아이는 고국에 남아 조부모 밑에서 자라고 있다면서, 몇 년간 일해 돈을 모은 뒤 고국에 돌아갈 희망에 중노동도 견뎌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들 외국인 도우미의 눈에 비친 이탈리아 가정의 풍경은 어떨까? 외국인 도우미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조사에 응한 외국인 도우미의 절반 이상이 ‘이탈리아 아이들은 버릇없는 응석꾸러기이며, 노인들은 생각보다 가족의 공경을 못 받는다’고 답했다고 한다.

한 사회학자는 이탈리아 가정의 가장 소중한 가족 구성원인 자녀와 노부모들이 모두 외국인 손에 보살핌을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외국 이민자들을 무조건 믿어서라기보다는 어느 나라 사람이든, 불법체류자든 발에 떨어진 불똥만 꺼주면 그만이라는 식으로 이들을 고용한다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르데냐 장수촌 노인들의 유전자를 수년간 연구하고 있는 데이아나 교수는 친자식, 친손자의 사랑과 보살핌은 100세를 넘기는 장수 비결의 하나라고 말했다. 그러나 싫든 좋든 이탈리아 가정의 글로벌화는 이미 시작됐고 앞으로 더욱 확산될 전망이다.



주간동아 2008.05.13 635호 (p34~35)

로마=김경해 통신원 kyunghaekim@tiscali.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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