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35

2008.05.13

정부와 농민 사이에서 미국 소 해법 찾을까

  •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입력2008-05-07 11: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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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쇠고기를 전면 수입하는 대신 삼계탕 대미(對美) 수출을 덤으로 받았습니다.”4월30일 국회 농림해양수산위원회. 야당의원들의 관심은 농림수산식품부(이하 농림부) 정운천(53·사진) 장관에게 쏠렸다. 그러나 검역주권이나 국민안전에 대한 소견이 아닌 뜬금없는 ‘삼계탕 얘기’가 나오자 즉각 장관의 무소신을 비난했다. 뒤이어 농산물 품질관리법과 관련한 야당의원들의 십자포화가 난무했고,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정 장관은 퇴장하고 말았다.

    ‘얼리 버드’라는 수식어로 불리는 MB정부에서도 정 장관은 가장 바쁜 인물이다. 그는 취임 직후 이명박 대통령의 ‘쌀국수, 쌀막걸리’ 발언을 뒷수습하기 위해 뛰어다녔고, 곧 면류용 쌀 수입이라는 특단의 조치를 내려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4월에는 고향 전북에서 발생한 AI(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 파동으로 과천정부청사보다 지방에서 거주한 시간이 더 많았을 정도다.

    그러나 지금까진 예고편에 불과하다. 이 대통령의 방미(訪美) 성과(?) 가운데 하나인 미국산 쇠고기 전면 수입 개방 조치로 정 장관이 한국사회의 치열한 논쟁 최중심에 서게 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대통령의 방미기간 중 시장개방 분위기를 감지한 축산 관련 시민단체들은 정 장관을 항의 방문해 강하게 압박했다.

    그러나 정 장관 역시 이 대통령 못지않은 ‘확신범’이었다. 정 장관은 ‘농업도 상품이다’라는 철학을 갖고 있다. 그는 지난 10여 년간 줄곧 “한국 농업은 생산 중심에서 판매 중심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정 장관은 자신의 철학을 삶으로 보여준 인물이기도 하다. 1980년대 초 대학 졸업 직후 고향 해남에서 20여 년을 고생한 끝에 3000여 명의 지역 농민을 끌어들여 국내 최초의 농민주식회사 ‘한국참다래유통사업단’을 설립한 그는 ‘참다래’라는 브랜드로 국내 키위시장을 석권했다. ‘참다래’는 한국농업의 이정표를 세웠으며, 그의 성공담은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렸다. 이 대통령 역시 정 장관의 성공담과 경영철학에 반해 ‘변방의 농부’였던 그에게 단박에 장관이라는 감투를 씌웠다.



    판매와 유통을 강조하기 때문에 정 장관의 관심은 자연스레 유통망과 브랜드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 국회에서 ‘삼계탕 수출’을 강조한 것도 그로서는 전혀 무의미한 발언이 아니었던 셈이다.

    그러나 미국 쇠고기 수입 문제는 그가 지금껏 쌓아온 성공을 뒤흔들 정도로 위협적이다. 무엇보다 그의 이력이 농업에만 집중됐기 때문에 축산 분야에는 문외한이라는 비판이 적지 않다. 입으로는 검역주권을 얘기하지만, 실제 검역에 대해서는 무지하다는 비판이다.

    그 대신 맡은 일에 투철하고 정치적으로 기민하다는 점에 대해선 이견이 없다. 미국에서 돌아온 이 대통령이 “원산지 표시를 확실히 하겠다”고 발언하자, 곧장 1000여 명의 단속반원으로 구성된 육류원산지 합동단속반을 꾸린 정 장관은 4월28일 발대식 직후 단속반원들과 함께 유명 음식점과 유통업체를 돌며 원산지 표시를 직접 확인하기도 했다. 일단 정 장관이 MB정부의 첫 악역을 맡은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는 MB정부의 악역으로 그칠 것인지, 아니면 상황을 역전시켜 농축산어민을 구한 ‘천사’로 기록될 것인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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