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35

2008.05.13

5월은 아직도 푸른가

  • 편집장 김진수

    입력2008-05-07 11: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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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악할 노릇입니다. 대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벌어진 초등학생 집단 성폭력 사태 말입니다.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로 시작하는 노래가 울려 퍼질 어린이날을 며칠 남겨두지도 않은 4월30일, 세간에 실체를 드러낸 이번 사태를 들여다보면서 동심(童心)이란 게 21세기에도 존재할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습니다.

    문제의 초교에선 지난해 11월부터 상급생이 하급생을 학교 운동장과 놀이터 등에서 성적으로 학대하는 등 강제추행이 확산돼왔다고 합니다. 그런 사태가 빚어지게 된 직접적 계기가 인터넷과 케이블TV의 음란물에 노출된 아이들이 동성(同性)을 상대로 자신들이 본 내용을 따라한 때문이라니 말문이 막힙니다. 변태적 행위에 동참하지 않는 아이들은 매를 맞고 집단 따돌림까지 당했다니 더욱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문득 초년 기자 시절 기억이 납니다. 당시 경찰서를 출입하던 저는 형사계장의 책상 서랍에 감춰져 있던 사건보고서에서 흔치 않은 사건 하나를 접하고 어안이 벙벙해졌습니다. 경쟁매체 기자들 몰래 친하게 지내던 방범과장의 방에서 직접 면회까지 한 그 사건의 장본인은 여드름이 잔뜩 돋아난 동안(童顔)의 남자 중학생이었습니다.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든 듯한 그는 놀랍게도 한 동네에 사는 남자 초등학생을 성폭행한 혐의로 검거된 상태였습니다.

    “왜 그랬냐?” 대답은 이랬습니다. “포르노 비디오를 봤는데, 흉내를 내보고 싶었어요.”



    지금부터 13년 전 일이니 당시로선 동성 간 성폭력이 희한한 사건으로 치부될 수밖에 없었지요. 그런데 단독 범행도 아니고 떼로 모여, 그것도 백주대낮 교정에서 자행된 이번 집단 성폭력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그것 또한 세월의 흐름에 따라 업그레이드(?)된 결과물쯤으로 이해해야 할는지요?

    그때나 지금이나 아이들의 범행 동기가 음란물이란 사실이 시사하는 건 어른들의 노력 여하에 따라선 유사 범죄를 예방할 수 있다는 교훈일 겁니다. 이번 사태도 해당 학교와 관할 교육청이 문제를 인지한 한 교사의 보고를 수차례 묵살하고 쉬쉬해왔다는 점이 이를 방증합니다.
    5월은 아직도 푸른가
    처음부터 전면적인 조사에 나섰더라면 피해가 확산되는 걸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뻔한 소리를 되풀이하고 싶진 않습니다.

    다만 유괴, 납치 등으로 가뜩이나 어른들에게 무방비 상태로 놓여 있는 오늘날의 아이들이 또래들에 의해서까지 ‘희생양’으로 수난을 겪어야 하는 현실이 서글플 따름입니다. 아이의 몸으로 어른의 그릇된 흉내를 내는 건 아이도 어른도 아닌 ‘괴물’에 가깝습니다. 폭력의 일상화가 공고히 뿌리내리고 있는 대한민국의 5월. ‘잔인한 4월’이 가도 ‘가정의 달’이 푸르지 않은 까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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