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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동아’가 만난 따뜻한 세상 ⑩

한글 가르치고 배우며 ‘마음’으로 소통

안산이주민센터 한글학교 자원활동가… 외국인 노동자들, 생활밀착 회화 큰 호응

  • 이은정 자유기고가 whynot0692@naver.com

한글 가르치고 배우며 ‘마음’으로 소통

한글 가르치고 배우며 ‘마음’으로 소통

한글학교의 ‘스타 강사’로 통하는 은연옥 씨(맨 오른쪽)와 한글학교 학생들.

“마영씨, 봄바람 났나봐요~! 머리 모양이 또 바뀌었네!”

봄꽃이 피어 나들이라도 떠나고 싶은 일요일 오후 3시. 다섯 평(16.5㎡) 남짓한 교실에 태국인 야외렛트, 와나치펀, 중국인 마영, 신춘매, 반영운 씨가 자리를 채우고 앉자 곧 수업이 시작됐다. 서로 지난 한 주간의 안부를 묻고 인사를 나누는데 중국에서 온 마영 씨 머리 모양이 화창한 봄날씨와 함께 화제에 올랐다. 춘심(春心)에 가슴 설레는 마영 씨의 ‘그냥’ 바꿔본 머리 모양에 한 번, 퇴근시간만 되면 유독 일이 몰려 짜증이 난다는 신춘매 씨의 “빨리 퇴근하고 싶은데, 못 가요” 이 한마디에 교실은 또 한 번 웃음으로 가득 찬다.

안산이주민센터 안에 있는 한글학교는 매주 일요일 외국인 노동자에게 무료로 한글을 가르치는 곳이다. 수업에 참석한 사람들은 주로 경기 안산시 인근 반월공단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로 자신의 실력에 맞춰 초급반, 중급반에서 한글과 한국 문화에 대해 배운다.

한글학교에서는 6명의 자원활동가가 돌아가면서 한글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한글 수업을 진행한다. 2년째 한글을 가르치고 있는 은연옥 씨는 이곳 학생들에게 ‘스타 강사’ 뺨치는 인기를 누리고 있다. 초급반부터 중급반까지 종횡무진 활약하는 그는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학생들에게 ‘생활밀착형’ 한국어를 가르친다.

“출석부에 등록된 학생은 10명이 넘는데, 오는 학생은 대여섯 명 됩니다. 이분들이 일요일만 쉬기 때문에 한글 배우러 나오기가 쉽지 않아요. 잠시 한국에서 돈 모아 가겠다고 생각하는 단기 연수생이 많기도 하고요. 그래서 같은 중급반이라도 학생들 실력은 들쑥날쑥이에요.”은연옥 씨



한글학교에 등록한 지는 1년이 넘지만 그야말로 띄엄띄엄 학교에 나와 아직 초급반에 머물러 있는 학생도 있다. 또 한국어 실력은 좀처럼 늘지 않지만 친화력이 좋아 한글학교의 명물로 통하는 이도 있다. 사실 출석률과 수업에 대한 열의는 별개 문제다. 모르는 것은 바로바로 질문하고, 거기에 평소 궁금한 것까지 덧붙여 질문하는 센스. 이런 배움에 대한 열망은 자원활동가들로 하여금 더 많이, 더 열심히 가르치도록 부채질한다.

매주 일요일 오후 3시, 배움의 열기 가득

한글학교 교사들은 대부분 학생이나 직장인 자원활동가다. 이곳 중급반 교사 은연옥 씨는 대학원생이고, 이제 한글학교 자원활동 3개월째인 정신영 씨는 올해 2월 대학을 졸업했다. 지난해 7월부터 자원활동을 시작한 직장인 설정하 씨는 초급반 수업을 주로 하다, 이달부터 중급반을 가르치기 위해 다른 활동가들의 수업을 참관하며 교수법을 연구하는 중이다.

바쁜 가운데서도 시간을 쪼개 일요일을 자원활동에 바칠 만큼 한글학교에 대한 이들의 열정은 남다르다. 자원활동 교사들의 남다른 노력 덕에 2006년부터는 경기도의 지원을 받아 한글 수업뿐 아니라 문화체험 프로그램까지 제공할 수 있게 됐다.

“5월에는 이천 도자기축제에 가서 도자기를 만들고, 한지공예 체험도 해요. 아, 봄소풍과 가을소풍도 가고 10월에는 수료식도 가질 예정입니다. 수료식요? 일종의 축제죠. 각자 자기 나라 음식을 가지고 와서 나눠 먹어요.”설정하 씨

2008년 한글학교 운영계획을 설명하는 설씨의 목소리에선 신바람이 느껴진다. 자기보다 손위인 학생들을 상대로 수업하는 게 쉽지는 않지만, 되도록 한국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고 우리말을 가르치려 애쓴다. 예컨대 존댓말과 반말을 설명할 때는 나이를 중시하는 우리 문화를 먼저 설명하고, 사람들이 처음 만났을 때 왜 나이와 결혼 여부를 묻는지에 대해 설명하면서 궁금증을 풀어준다고 한다. 이에 대한 학생들의 반응도 좋다.

“모르는 말을 회사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제대로 답변을 못해줍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책에 나오는 설명이 아니라 실생활에서 쓰이는 표현을 가장 명쾌하게 대답해줘요.”신춘매 씨

중국에서 와 남편과 함께 일하고 있는 신춘매 씨는 한글학교에서 모범생으로 통한다. 한국어 실력뿐 아니라 한국 주부들도 만들기 어려운 한식요리를 척척 만든다니, 반은 한국 사람인 셈. 그가 이만큼 한국어를 잘하게 된 바탕엔 지난 2년간 한글학교에 다닌 열성과 꾸준함이 있었다.

“선생님, ‘완소’ ‘뽀대’ ‘간지난다’는 무슨 뜻이에요?”

새로운 한국말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은 그칠 줄 모른다. TV 드라마나 쇼 프로그램에서 들었지만, 잘 모르는 말은 꼭 기억해뒀다 수업이 끝난 뒤 질문한다. 아침저녁으로 방송되는 한국 드라마를 열심히 본다는 와나치펀 씨는 한국어를 배우고 싶지만 생각보다 잘 안 된다고 말한다. 반면 이제 막 한국말을 배우기 시작한 자신의 아이는 자기보다 배우는 속도가 빠르다며 손가락을 치켜세운다.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인식 개선이 먼저

한글 가르치고 배우며 ‘마음’으로 소통
초급반을 맡고 있는 정신영 씨는 한글교육 자원활동을 하면서 자신이 오히려 배움의 기회를 갖는다고 말한다.

“수업을 하다 보면 우리 문화나 언어를 객관적으로 보게 돼요. 그리고 외국인 노동자들과 소통하는 방법을 제가 배우는 경우도 많습니다. 하지만 학생에 비해 교사 수가 모자라 실력이 들쑥날쑥한 학생들을 한 교실에서 가르쳐야 한다는 게 좀 안타까워요. 될 수 있으면 일대일로 각자의 수준에 맞는 수업을 해주고 싶은 게 제 바람입니다.”정신영 씨

외국인 노동자들이 한국어 실력을 기르기 위해선 한국인과 대화할 수 있는 환경이 먼저 갖춰져야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자국에서 온 이들과 쉬는 시간에 잠깐 이야기를 나누는 게 고작이다. 이 때문에 여전히 외국인 노동자를 ‘기피 대상’으로 보는 그릇된 인식이 무엇보다 바뀌어야 한다고 자원활동 교사들은 한목소리를 냈다. 더불어 이들은 스스로가 뛰어난 선생님이기에 앞서 정이 담긴 한마디를 나눌 수 있는 진정한 친구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사람과 소통한다는 것은 단순히 ‘말’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나누는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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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동아 2008.04.22 63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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