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27

2008.03.18

세계사 바꾼 무기의 진화

  • 공병호경영연구소 소장 www.gong.co.kr

    입력2008-03-12 13: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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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사 바꾼 무기의 진화

    <b>Made in War, 전쟁이 만든 신세계</b> 맥스 부트 지음/ 송대범·한태영 옮김/ 플래닛미디어 펴냄/ 968쪽/ 3만9800원

    ‘새로운 과학기술은 새로운 전술과 결합하여 군사변혁을 이루어낸다.’ 그 결과는 국가의 흥망으로 연결되기도 하고, 역사의 물줄기를 바꿔놓기도 한다. 맥스 부트의 ‘Made in War, 전쟁이 만든 신세계’는 기술변화가 전쟁의 승패와 역사의 흐름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다룬 책이다.

    세계 각국은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라도 기술 발전을 유심히 지켜보면서 사전에 대비해야 한다. 국가 사이에 경제적인 상호의존성이 높아지면 전쟁이 발발할 가능성은 크게 줄어든다고 한다. 이 때문에 어떤 역사가들은 군사력보다 ‘소프트 파워’에 더 의존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역사는 낭만주의자들의 그 같은 바람을 무시해버린다.

    이 책은 역사 속 기념비적인 전쟁들의 모습을 생중계하듯 보여준다. 저자는 전쟁의 승패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 기술로 네 가지 혁명, 즉 화약혁명, 제1차 산업혁명, 제2차 산업혁명, 정보혁명을 든다.

    후대의 역사학자들이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그리고 반종교개혁이라 부르는 일들이 일어났던 1450~1650년 동안 유럽 대륙은 과거의 천 년보다 더 많이 바뀌게 된다. 그 이전의 유럽은 분열되고 가난한 지역이었다. 1450년에 유럽인이 전 세계에서 차지하던 비중은 15%였다. 하지만 16세기 초반이 되면 유럽은 지구상에서 가장 부유하고 활기 넘치는 지역으로 탈바꿈한다. 그리고 1800년에 이르렀을 때 유럽은 전 세계 대륙의 35%를 차지하게 된다.

    이런 변화에 중대한 역할을 한 것이 화약의 보급과 관련 기술의 확산이다. 그런데 화약기술이 확산되기 시작했을 때, 화약이 가져올 군사변혁을 주목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다. “귀족들은 명예를 중시하는 기사도 정신을 폐물로 만든 무기들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어느 당대인은 ‘적의 얼굴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는 겁쟁이들이 멀찌감치 떨어져 쏜 총탄에 많은 용감무쌍한 사람들이 목숨을 잃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누가 도도한 기술변화를 막을 수 있는가? 1494년 가을, 화기로 무장한 프랑스의 샤를 8세는 2만7000명의 군대를 이끌고 이탈리아로 쳐들어가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의 항복을 받아낸다. 1588년 에스파냐의 무적함대를 무력화한 영국 해군의 활약도 월등한 화력에 힘입은 바가 크다.

    영국 네덜란드 같은 해양국가들은 프랑스나 에스파냐보다 인구나 영토 면에서 보잘것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이들이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대륙국가의 육군은 자유를 말살할 수 있지만 해군은 그렇지 않다. 이 때문에 해군력이 강한 나라일수록 ‘상업적 가치’, 즉 계약의 신성함이나 사유재산권, 정치적·종교적 자유, 대의제 정부, 법치주의 등이 일찍 자리잡게 됐다. 이처럼 자유주의 제도의 뿌리가 제대로 자리잡은 나라에서는 교역을 전문으로 하는 상인계급과 금융기관이 번성했다. 예를 들면 영국의 중앙은행인 영국은행은 영국과 프랑스의 전쟁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1694년 설립됐다.

    두 번째 군사변혁은 산업혁명으로 인한 후장총, 철도 같은 신기술 도입과 이들이 연쇄적으로 가져온 기관총, 속사포, 야전전화 등 신기술의 광범위한 확산을 들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신기술만으로 전쟁에서 이길 수는 없다. 신기술들이 제대로 힘을 발휘하려면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즉 전쟁계획과 전쟁을 관리하는 시스템이 필요했다.

    전쟁계획의 추진에서 괄목할 만한 나라로 프로이센과 메이지유신 이후의 일본을 들 수 있다. 특히 일본은 1896년에 이미 10개년 계획에 따라 해군 발전 프로그램을 추진했고, 그 결과 대한해협에서 러시아의 극동함대를 물리친다. 산업혁명의 영향은 전쟁기술과 전술의 변화를 가져왔을 뿐 아니라, 대규모 군대를 유지하기 위한 국가의 성장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실제 1913~1918년 영국 프랑스 독일 정부의 지출 규모는 1200%까지 상승했고 군사지출은 2000%까지 치솟게 된다.

    제1차 산업혁명이 석탄과 증기로 동력을 얻었다면, 제2차 산업혁명은 석유와 전기로 동력을 얻는 시대였다. 제2차 산업혁명은 1920년대와 1930년대에 걸쳐 전쟁의 양상을 바꿔놓고 1940년대까지 영향을 끼친다. 이런 군사기술이 사용된 대표적인 경우가 1940년 일본의 진주만 공습과 1945년 미국의 도쿄 공습이다. 호기 있게 제2차 세계대전을 시작한 일본과 독일의 전세가 날로 기울게 된 것은 그들이 군사물량 면에서 연합국에 적수가 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울러 이 시기에 무선통신, 레이더 그리고 장거리 폭격기 같은 기술이 차례로 등장했다. 전쟁물자의 생산이 최고조에 달했던 1944년 3월 미국의 공장은 294초마다 항공기 한 대를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군사기술의 마지막 변혁은 현재 진행 중인 정보혁명이다. 걸프 전쟁이나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라크 전쟁이 대표적인 경우라 할 수 있다.

    한마디로 이 책은 전쟁기술의 발전과 응용이란 프리즘을 통해 세계사의 흐름을 이해하도록 돕는 책이다. 책 읽기를 마무리할 즈음, 독자들은 전쟁이 논리나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서 불현듯 자신의 문제로 다가올 수 있음을 느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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