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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호의 휴대폰 문화인류학

연인들 감정 가늠하는 온도계

연인들 감정 가늠하는 온도계

연인들 감정 가늠하는 온도계

영화 ‘내 사랑’의 한 장면.

얼굴 없는 인사/ 신호음이 울린다/ 잘 잤느냐는 안부인사에/ 마음이 찌릿해왔다// 나는 지금 기계와 감정을 주고받는 것이다/ 누군가 저장해놓은 메시지를 읽으며/ 나는 다시 기계 속에 내 감정을 저장한다// 사랑이 떠나고 난 자리/ 문자메시지를 읽으며/ 지금 기계와 연애 중이다// 내 사랑의 방식을 가장 잘 아는/ 피치 못할/ 가장 지독한 연인인 것이다. (임정일, ‘문자메시지 연애학’)

언제 어디서든 접속할 수 있는 모바일 환경에서 소통에 대한 기대치는 무한 상승하게 마련이다. 집에 있는 유선전화로만 통화하던 예전과 비교해보자. 내가 결혼 전 연애할 때를 회상해보면 일주일에 한 번 정도 통화하고 한 번 만나는 게 보통이었다. 그리고 집에 전화했을 때 아내보다 장인이나 장모가 받을 때가 더 많았다. 아직 그분들께 인사드리지 않은 처지라 아내를 바꿔달라고 말씀드리기가 좀 껄끄러웠던 기억이 생생하다. 아내와의 통화가 가족에게 모두 노출되고 ‘검열’됐던 것은 당연지사다.

그러나 이젠 전혀 다른 세상이 됐다. 개인미디어가 된 휴대전화로 거의 언제든 상대와 닿을 수 있다. 설령 전화 받기 곤란한 자리에 있더라도 조금만 움직이면 ‘안전한’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 단둘이 주고받는 대화, 그 내밀한 세계는 순식간 증폭되면서 서로의 존재를 사로잡는다. 자주 만나지 못해도 휴대전화만 켜져 있으면 친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그 자그마한 기계가 그렇게 고맙고 예쁠 수 없다.

물론 늘 진지하고 깊은 대화만 나누는 것은 아니다. ‘밥 먹었어?’ ‘나 지금 친구랑 헤어지고 집에 가는 중이야’ ‘아이 졸려, 오늘 일찍 자야겠다’ 등 일상의 소소한 상황도 문자로 주고받는다. 수업을 들으면서 ‘오늘 강의는 왜 이렇게 지겹냐’라는 메시지를 보내기도 한다.

휴대전화로 인해 연인들은 자신의 일상과 그에 대한 느낌을 실시간 보고하는 셈이다. 깨어 있는 동안엔 언제나 곁에 있는 기분으로 지낼 수 있는 관계(full time intimate relationship)인 것이다. 어느 광고의 문구대로 ‘나의 모든 것을 라이브로 발신할 수 있는 세상’이다.



지난 학기 수업 중 휴대전화에 대해 몇몇 학생과 연구하면서 ‘연애와 휴대전화의 관계’를 조사한 적이 있다. 과제를 담당한 학생은 주위의 연애하는 친구들에게 일주일 동안 상대와 휴대전화를 쓰지 않으면서 그 관계에 어떤 변화가 오는지 관찰해달라고 요청했다.

5명의 남학생이 거기에 응했는데, 그중 4명이 다음 날 와서 취소하더라고 했다. 이유인즉 자기는 괜찮은데 여자친구가 용납하지 않는다고, 그렇게 하려면 차라리 헤어지자고 협박(?)하더라는 것이다. 이제 연인 사이에서 휴대전화 없이 지낸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어렵게 됐다.

소통만큼 오해 소지 커 사소한 갈등 유발

그러나 연애가 안정궤도에 접어들고 설레는 감정이 자연스럽게 식어가는 과정에서 휴대전화는 오히려 거추장스러워질 수도 있다. 이때 휴대전화는 소통보다 상대의 행동을 체크하는 도구로 쓰인다. ‘어디야?’ ‘뭐 해?’ 보통 친구끼리도 휴대전화로 통화할 때 첫마디로 내뱉는 이 질문은 연인들 사이에선 감시와 모니터링으로 느껴질 수 있다. 언제든 통화가 가능하기에 통화에 대한 기대수준은 높아지지만, 다른 한쪽(대부분 남자)이 예전만큼의 정성이나 열정을 보여주지 않을 때 그것은 곧바로 통화 빈도로 객관화된다. 조금만 연락이 되지 않아도 불안해하고 변심한 것 아닌지 의혹을 갖게 된다. 사소한 말투나 표현 때문에 갈등이 생기고, 배터리가 떨어지는 등의 의도하지 않은 상황으로 인해 오해가 빚어진다.

특히 문자메시지는 문장이 짧고 억양이나 말투 같은 중요 정보가 생략되기에 수신자가 그 여백을 알아서 채워야 한다. 그것은 즐거운 긴장이기도 하지만, 때로 엉뚱한 오해도 낳는다. ‘지금 뭐 해?’라는 문자는 ‘너의 일상을 알고 싶어’일 수도 있고 ‘내 생각 하고 있는 거 맞지?’일 수도 있다. ‘나 심심해’라는 메시지의 의도는 ‘함께 있고 싶지만 참을 만해’인데, 받는 사람은 ‘나랑 놀아주면 안 되겠니?’라고 해석한다. ‘저녁에 뭐 해?’라는 메시지는 ‘저녁에 나 시간 있는데…’라고 독해될 수도 있지만, ‘저녁에 다른 여자 만나는 거 아니지?’라고 곡해될 수도 있다.

휴대전화가 없었을 때는 만나지 않는 동안 일어난 감정의 기복이나 무관심 등이 드러나지 않은 채 넘어갔다. 그런데 이젠 하루에도 몇 번씩 심경을 알려야 하는 통신환경에서 한쪽의 작은 파장이 상대방에게 불길한 상상을 불러일으키며 관계를 위태롭게 몰아간다. 하루 이상 아무 소식이 없으면 불안해진다. 문자메시지를 보냈는데 답장이 없을 땐 싸늘한 외로움이나 배신감이 밀려온다. 이 모두가 휴대전화가 없던 시절엔 경험하지 못한 일들이다. 온라인 덕분에 짧은 시간에 관계가 급진전되듯, 식어가는 과정도 고속으로 진행된다.

잘돼가던 연인들이 몇 번의 문자메시지 교환 끝에 간단하게 이별을 통보하는 경우도 많다. 실제 예전에 비해 연애기간이 짧아진다고 느끼는 젊은이들이 많다.

이렇듯 휴대전화는 소통을 촉진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그로 인해 마음은 더욱 여려지고, 관계는 사소한 갈등으로 깨지기 쉽다. 사람과 사람을 잇는 길이 널리 열리는 지금, 연인들은 단단한 심지로 자기 존재를 동여매지 않으면 타인의 반응에 따라 흔들리고 표류하기 쉽다. 휴대전화는 연인들에게 평상심을 가늠하는 온도계가 되고 있다.



주간동아 2008.01.15 619호 (p7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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