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19

2008.01.15

“대충 민방위 교육? 진짜 유익하네!”

각 분야 전문가 우리 동네 명강사 4인…응급처치 등 실생활에 큰 도움

  • 윤재석 자유기고가

    입력2008-01-09 17: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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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예비군 8년을 ‘졸업’한 김 대리. 이제는 2박3일 동원훈련도, 8시간짜리 향방훈련도 안 받게 돼 좋았는데 웬걸, 아파트 경비실에서 민방위 소집통보서가 나왔다고 받아가란다. ‘4시간밖에 안 되는 교육이지만 지겨울 게 분명한데 어쩌나’ 싶어 스포츠신문과 MP3 플레이어로 ‘중무장’하고 교육장인 구민회관으로 향했다.

    하지만 김 대리는 구민회관에서 신문도 MP3도 꺼낼 수 없었다. 뻔한 안보교육, 고리타분한 정신교육일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각 분야별 전문가인 민방위 강사들이 실생활에서 맞닥뜨릴 수 있는 여러 위기상황에 유용한 응급조치 방법을 프레젠테이션, 동영상 등의 교육시스템으로 가르쳤기 때문이다. 수많은 ‘김 대리들’에게 잠잘 틈을 주지 않는 우리 동네 민방위 명강사들을 소개한다.

    “대충 민방위 교육? 진짜 유익하네!”
    [임만철 강사·응급처치]“심장마비는 5분 안의 응급처치가 생사 갈라”

    30대 남성이 대부분인 민방위 교육 참가자들에게는 나이 든 부모와 어린 자녀의 건강과 안전이 최대 관심사다.

    “노부모가 갑자기 쓰러지거나 수영장에서 아이가 물에 빠지는 등 위기상황의 대처요령을 가르치면 딴 짓 하던 대원들도 ‘어! 이거 들어둬야겠구나’ 하면서 정신을 바짝 차립니다.”



    베트남 전쟁에 장교로 참가했던 임만철(58) 강사는 1988년 전역 이후 모 금융회사 비상기획관으로 근무하며 민방위 교육을 시작해, 정년퇴임한 2002년부터 본격적으로 강의를 하고 있다.

    “부모가 심장질환을 앓고 있는 참가자들은 교육이 끝난 뒤 일대일 교육을 요청하기도 합니다. 심장마비는 5분 안에 응급처치를 해야 하거든요. ‘고맙다, 큰 도움이 됐다’는 말도 많이 듣습니다.”

    임 강사는 운전이나 운동하다가 생길 수 있는 골절, 출혈, 화상 등 위기상황에 대한 대처방법을 비롯해 심폐소생술 및 기도폐쇄 시 응급처치법(하임리히법) 등을 가르친다. 특히 베트남전 참가 당시 부상한 병사들을 응급처치한 사례를 들려주거나, 교통사고 현장이나 병원 응급실에서 심폐소생술로 환자를 살려낸 사례를 영상으로 보여줘 교육 참가자들의 호응이 높다.

    “동영상을 많이 보여주는 편이에요. 2000년 4월18일 당시 30세였던 롯데 자이언트 임수혁 선수가 경기 도중 심장마비로 쓰러지는 충격적인 장면을 보여주면 남의 일 같지 않죠.”

    임 강사는 강의자료를 확충하고 교수방법을 연구하는 데 힘을 쏟는 노력파다. 자비를 들여 필요한 영상물을 구입하는가 하면, 강의 잘하는 강사가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먼 곳까지 찾아가 강의를 받고 오기도 한다. 임 강사는 “끊임없이 노력해야 참가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다”며 활짝 웃었다.

    “대충 민방위 교육? 진짜 유익하네!”
    [정태식 강사·생화학 테러]“유독가스 발생 때 손수건에 물 적시면 10분 거뜬”

    ‘생화학 테러’가 실생활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 1995년 도쿄 지하철 독가스 테러를 일으킨 옴진리교 한국지회가 세워진 것도 아닌데 말이다. 하지만 생화학 테러를 교육하는 정태식(60) 강사의 말은 다르다.

    “우리 사회에서도 산업체의 유독물질이나 유독가스가 누출, 누수될 수 있고, 몇 년 전 대구지하철 방화사건처럼 화재로 인해 유독가스가 퍼질 경우 대응요령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화학부대 출신인 정 강사는 1993년 중령으로 예편한 이후 개인사업을 하다 2001년부터 서울과 경기도 지역 민방위 강사로 일하고 있다.

    “한 번 교육 시 참가자가 200명에서 250명 정도 됩니다. 이들을 장악하는 데는 강사의 능력이 90%를 차지하죠. 군에서 교관으로 생활했던 경험이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간단하지만 알아두면 유용한 유독가스 응급대처법 한 가지. 유독가스가 발생할 경우 손수건을 물에 적셔 코와 입을 막으면 10분가량 견딜 수 있고, 손수건이 없을 때는 옷소매로 가린 뒤 맑은 공기가 남아 있는 아래쪽으로 몸을 숙인다.

    정 강사는 민방위 교육 참가자 대부분이 위급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을 모를 뿐 아니라, 잘못 알고 있는 경우도 많다고 말한다.

    “일례로 화상 입었을 때 연고를 바르는 경우가 있는데요. 연고는 환부의 열이 빠지는 것을 차단하거든요. 연고는 나중에 바르고 가장 먼저 20분 정도 차가운 물에 환부를 담가 화기를 빼야 합니다.”

    오전 9시부터 2시간 교육을 마친 뒤 다른 동네로 이동해 오후에 2시간 교육을 하는 바쁜 일정이지만, 민방위 대원들이 ‘좋은 교육 받았다’며 음료수라도 대접하면 정 강사는 보람을 느낀다.

    “생활 속 안전사고 대처방법을 가르치는 곳은 민방위 교육장밖에 없어요. 민방위 교육에 대해 부정적인 사람들도 직접 받아보면 생각이 달라질걸요.”

    “대충 민방위 교육? 진짜 유익하네!”
    [정인화 강사·지진]“한반도에서 큰 지진 일어나지 말란 법 없지요”

    “지진이나 재난과 관련한 기록을 뒤져보고 내셔널지오그래픽에서 재난 다큐멘터리가 나오면 밤을 새워가면서 봅니다.”

    ‘지진’ 과목을 가르치는 정인화(63) 강사는 자타가 공인하는 지진전문가. 1995년 일본 고베 지진 이후 방재계획의 필요성이 대두되자 전문가의 자문을 받아 ‘지진의 이해’라는 책자를 발간했다.

    “당시만 해도 지진 관련 학술단체나 연구기관은 있었지만 일반인을 상대로 한 교육용 자료는 없었거든요. 서울시에서 처음으로 국민교육용 책자를 만든 것이죠.”

    1967년 서울시 공무원을 시작해 방재기획과장을 마지막으로 2004년 은퇴한 정 강사는 “기상재난이나 화재, 건물 붕괴 등 인위적 재난, 전산망 장애 등 사회적 재난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시민 모두가 안전요원이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2000년을 전후해 민방위 교육이 남북화해 무드에 발맞춰 기존 안보교육에서 생활민방위 교육으로 성격이 바뀌었습니다. 재난 발생 시 초기에 얼마나 신속하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피해규모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민방위 교육은 매우 중요합니다.”

    정 강사는 우리나라도 지진의 안전지대라 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일본에서 큰 지진이 일어나면 한두 시간 안에 해일이 우리 해안에 도착합니다. 그리고 보통 지진은 판의 경계에서 일어나지만, 판 내부에 있는 중국에서 큰 지진이 일어났던 것만 봐도 한반도에 그런 지진이 일어나지 말란 법은 없습니다.”

    정 강사는 “교육 끝나고 나면 자기 회사 안전교육에 초청하겠다는 교육생도 있다”며 “교육시간에 야한 농담이나 하면 잠깐 주목을 끌 수는 있겠지만 그보다는 전문가 처지에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내용을 가르치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대충 민방위 교육? 진짜 유익하네!”
    [김종선 강사·교통안전]“실감나는 뺑소니범 검거 사례에 눈이 번쩍”

    김종선(62) 경찰종합학교 교수는 우리나라 뺑소니 사건 수사의 최고 전문가다. 경찰간부 출신으로 도로교통안전관리공단 교통사고조사부장으로 일한 김 교수는 지난해부터 민방위 교육 교통안전 강사로 일하고 있다.

    “옛날처럼 칠판에다 쓰면서 말로 설명하면 다들 졸게 마련이죠. 저는 주로 실제 교통사고 현장의 동영상이나 시내 교차로 감시카메라에 찍힌 영상을 보여줍니다. 대원들 대부분이 운전자다 보니 아무래도 실감날 수밖에 없죠.”

    서울시내에서 교통사고가 가장 잦은 신촌오거리, 강남교보타워 사거리, 영등포 로터리, 광화문, 광진교차로 등을 사례로 들어 설명하면 자연 민방위 교육생들의 집중도가 높아진다.

    뺑소니 전문 수사관 출신으로 경찰종합학교에서 뺑소니 사건 수사요령을 가르치는 김 교수는 일선 경찰관에게서 수사 관련 문의도 받는다. 뺑소니범 검거를 도와주고 범인을 잡은 뒤에는 검거사례를 교육에 활용해 민방위 교육생들의 경각심을 높이고 있다.

    “교통사고 사망자가 한 해 6300명에 이르고 부상자는 34만명이나 됩니다. 하지만 운전자는 면허증 딸 때 한두 시간 학과시험 문제 풀어보고 안전교육 받으면 끝이거든요. 도로교통법이 바뀌고 자동차 성능, 도로환경이 달라져도 교통안전 교육을 제대로 받을 수 있는 시간은 거의 없는 게 현실입니다. 법규를 위반해 도로교통안전공단에서 안전교육을 받지 않는 한 민방위 교육 시간이 유일한 셈이죠.”

    김 교수는 “저한테 교육받은 대원들이 나중에 운전하면서 ‘아차, 그때 민방위 교육 시간에 강사가 이렇게 말했지’라고 기억하고 안전운전에 임하게 된다면 그거야말로 큰 보람”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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