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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대선후보들 “I ♥ Hispanic”

유권자의 9% 캐스팅보트 세력으로 급부상 환심성 공약 마구 쏟아져

  • 전원경 작가 winniejeon@hotmail.com

美 대선후보들 “I ♥ Hispanic”

美 대선후보들 “I ♥ Hispanic”

2008년 미국 대선에서 전체 유권자의 9%를 차지하는 히스패닉 유권자들이 절대 놓칠 수 없는 존재로 떠오르고 있다. 공화당 대선후보들.

2008년 미국 대선주자들은 요즘 히스패닉 유권자들의 환심을 사기에 바쁘다. 미국 최대 스페인어 방송국인 ‘유니비전’은 지난해 9월 버락 오바마, 힐러리 클린턴 미 상원의원을 비롯한 민주당 대선후보들을 모아 토론회를 연 데 이어, 12월9일에는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 시장 등 무려 7명의 공화당 대선후보를 한자리에 모아놓고 토론회를 개최했다.

유권자들의 스페인어 질문을 동시통역사가 영어로 통역하는 식으로 진행된 토론회에서 공화당 후보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히스패닉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만한 대답으로 일관했다. 줄리아니, 미트 롬니 매사추세츠 주지사 등 공화당 후보들은 “국경 경비를 강화해 불법이민자의 입국을 막되 히스패닉 시민들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국가를 통치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줄리아니는 “히스패닉이 미국에 있기 때문에 미국은 더 살기 좋은 나라로 변화하고 있다”며 노골적인 아부성 발언을 했다. 존 매케인 상원의원은 불법이민자들에게 합법적인 체류 권리를 주는 것을 골자로 한 이민개혁법안을 다시 추진하자는 주장을 펼쳤다.

AP통신은 이날 토론회에서 가장 호평받은 후보는 마이크 허커비 애리조나 주지사였다고 보도했다. 허커비는 “불법이민자들도 영주권을 받을 수 있게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그렇게 하면 영주권을 얻기 위해 오랜 시간 기다린 다른 이민자들의 기회를 빼앗게 되지 않겠는가”라며 조심스레 대답을 비켜갔다.

9월 열린 민주당 대선후보 토론회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 후보들은 부시 대통령의 이민개혁법안 추진을 무산시킨 공화당을 맹비난하며 이민개혁법안을 통과시켜 불법이민자의 체류 기회를 늘릴 것을 약속했다. 이 밖에 스페인어를 영어에 이은 미국 공용어로 만들겠다거나, 불법이민자들을 돕는 이까지 처벌하는 반(反)이민법은 약자를 돕는 예수를 처벌하는 것과 같다는 둥 감정적인 지지 호소와 약간은 비현실적인 공약도 난무했다.

히스패닉 인구 늘면서 자체 대선후보도 등장



민주, 공화 양당 후보들이 히스패닉의 환심을 사기에 바쁜 이유는 히스패닉 유권자들이 2008년 미 대선의 캐스팅보트 세력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인종의 용광로’ 미국에서 히스패닉계는 더는 소수민족이 아니다. ‘히스패닉’ 또는 ‘라티노’로 불리는 중남미 이민자는 총 4600만명으로 전미 인구의 15%를 차지해 백인 다음으로 비중이 높다. 2004년 통계에 따르면 미국 내 백인이 1년간 0.8% 늘어나는 데 비해, 히스패닉은 그 4배가 넘는 3.6%가 증가하는 추세라고 한다.

히스패닉 인구가 급격히 늘면서 히스패닉 대선후보도 등장했다. 민주당 예비후보군인 빌 리처드슨 뉴멕시코 주지사가 그 주인공이다. 또 같은 민주당 후보인 크리스 도드 상원의원은 스페인어를 유창하게 구사한다. 이 때문인지 민주당과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들은 더는 “비엔베니도스 아미고스(여러분 환영합니다)!” 같은 어색한 스페인어 인사 한두 마디로 히스패닉계의 환심을 얻으려 하지 않는다. 유니비전 TV는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토론회에서 모든 후보들에게 영어만을 사용하도록 했다.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히스패닉 유권자들의 마음은 민주당 쪽으로 기울었다. 히스패닉 유권자들의 57%가 민주당, 23%가 공화당 지지 성향이라는 것이다. 이는 조지 W 부시 현 미국 대통령이 2004년 대선에서 히스패닉 유권자 44%의 지지를 얻은 것과 큰 차이를 보이는 결과다.

미국의 히스패닉 유권자들이 민주당을 지지하는 이유는 명백하다. 공화당이 불법이민자 추방 등 반이민법에 대해 민주당보다 강경한 태도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합법, 불법을 막론하고 히스패닉계는 미국 내 이민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부시 대통령은 2004년 대선 당시 불법이민자의 합법화를 추진하는 법안 개혁을 약속했고, 이 덕분에 히스패닉 유권자의 지지를 얻을 수 있었다.

또 부시 가문과 히스패닉의 끈끈한 인연도 높은 지지율에 한몫했다. 부시 대통령의 동생인 제프 부시 플로리다 주지사는 히스패닉계 여성과 결혼했다. 이들의 아들인 조지 P. 부시는 공화당의 2004년 전당대회에 연사로 등장, 유창한 스페인어로 연설해 히스패닉계의 열렬한 지지를 끌어냈다.

‘퓨 히스패닉 센터’의 통계에 따르면 2006년 여름까지만 해도 민주당과 공화당의 히스패닉 지지도는 각각 49%, 28%로 차이가 21%포인트까지 좁혀 있었다. 그러나 이 차이는 공화당이 불법이민자 문제에 대해 강경한 태도를 보이면서 다시 급격히 벌어졌다. 지난해 6월 부시 대통령이 추진해온 이민개혁법안이 공화당 의원들의 반대로 상원을 통과하지 못했던 것이다. ‘USA 투데이’와 갤럽의 공동조사에서도 히스패닉 유권자의 4분의 3이 민주당 후보를 지지할 것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공화당 후보들의 적극적 공세에도 히스패닉은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공화당의 태도를 비난하고 있다. 히스패닉계인 민주당의 로버트 메넨데즈 상원의원은 “민주당은 우리(히스패닉)를 하나의 정치세력으로 대접하는 데 비해, 공화당은 우리를 부정하고 있다. 공화당은 히스패닉이 가진 힘을 이번 기회에 톡톡히 맛보게 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민주당 전국위원회의 하워드 딘 의장도 “공화당은 더 이상 이민자들을 희생양으로 삼지 말아야 한다. 유니비전 TV의 토론회에서 공화당 후보들이 보여준 태도는 그들에 대한 모독이었다”고 일침을 놓았다. 이에 대해 마이크 던컨 공화당 전국위원회 의장 역시 “유니비전 토론회는 히스패닉과 공화당이 ‘아메리칸드림’을 이루기 위해 손을 맞잡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고 애써 의미를 부여했다.

반이민법에 강경한 공화당보다 민주당 지지자 많아

히스패닉이 미 대선의 ‘캐스팅보트’로 떠오른 이유는 이들이 거주하는 지역과도 무관하지 않다. 히스패닉 유권자들은 주로 뉴멕시코 플로리다 캘리포니아 네바다 콜로라도 등에 거주하는데, 이 주들은 하나같이 미 대선의 접전지로 꼽히는 지역이다. 이중 플로리다주는 부시와 앨 고어 후보가 맞붙은 2000년 대선 당시 재검표까지 가는 진통 끝에 공화당이 승리를 거둔 곳이다.

선거 전문가들은 민주당이 히스패닉에 대한 약간의 동정과 관심만 보여주면 이들의 표를 쉽게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예측한다. 그러나 히스패닉에 편중된 공약을 내건다면 백인 유권자들의 마음을 놓칠 수 있다. 또 히스패닉 불법이민자의 지위 상승을 약속함으로써 합법적으로 미국에 정착한 이민자들이나 흑인 유권자의 반감을 살 위험도 있다.

이번 대선에서 히스패닉 유권자의 비율은 전 유권자의 9% 선으로 역대 미 대선 중 가장 높다. 코앞으로 다가온 대선 예비선거에서 과연 히스패닉이 얼마만한 위력을 보여줄 것인가? 이번 미 대선의 주요 관전 포인트 중 하나다.



주간동아 2008.01.15 619호 (p36~37)

전원경 작가 winniejeo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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