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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대 법학교수의 ‘국민연금’ 탄핵사건

이문호 경북대 교수 “강제가입·강제징수 등 헌법에 위배” 위헌 신청의 辯

  • 이문호 경북대 교수·법학 lmoonho@knu.ac.kr

국립대 법학교수의 ‘국민연금’ 탄핵사건

  • 검사, 변호사를 거친 현직 국립대 법학교수가 “국민연금 강제징수가 헌법에 위반된다”며 지난해 11월 위헌법률심판제청 신청을 한 사실이 확인됐다. 말 많고 탈 많은 국민연금에 대해 누구보다도 법을 속속들이 아는 법조인 출신 교수가 관련 소송을 제기한 건 이례적인 일. ‘주간동아’는 이번 위헌법률심판제청 신청 당사자인 이문호 경북대 교수가 직접 밝힌 신청의 변(辯)을 싣는다. (편집자 주)
국립대 법학교수의 ‘국민연금’ 탄핵사건

2006년 3월20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바른정책포럼 정책 세미나’.

필자는 지난 8년간 국민연금에 강제가입돼 총 2064만9600원의 연금 보험료를 납부했다. 그러던 중 지난해 10월 국립 경북대 교원으로 임용돼 국민연금 가입자 자격을 상실했다. 필자는 국민연금보험공단(이하 공단) 측에 그동안 낸 연금의 반환을 청구했다.

하지만 공단은 필자의 반환 요청을 일거에 거부했다. “법이 개정돼 반환할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대신 공단 측은 “앞으로 20년간 위 돈을 보관하다, (필자가) 63세가 되면 돌려주겠다”는 어처구니없는 답변만 보내왔다. 공단의 주장대로 20년 후 연금을 돌려받는다면, 이미 그 돈은 그동안의 물가상승률과 화폐가치 절하를 감안할 때 부스러기돈으로 변한 뒤일 것이 분명한데도 공단 측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가입 자격 상실해도 연금을 20년 후 돌려주겠다니”

국민연금 가입 자격이 상실됐으면 그간 납부한 연금을 돌려받는 것이 상식에 부합하고 법 감정에도 맞지만, 실상은 전혀 다르다는 사실에 필자는 무척 놀랐다. 공단 측은 “국민연금을 공무원연금으로 전환해달라”는 필자의 간곡한 요청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국민연금은 강제가입도 문제지만 공단 측의 납득하기 어려운 강제징수, 제멋대로인 임기응변적 연금징수 등이 더 문제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아마도 대다수 국민이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하면서도 시간적·경제적 제약과 거대 시스템에 대한 일종의 심리적 포기 등으로 이의를 제기하지 못한 채 연금을 납부하고 있을 것이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우리 국민 대다수는 어려운 경제사정 속에서 죽음에 가까운 고통을 체감했다. 하지만 국가는 국민의 호주머니 사정은 고려하지 않고 허울 좋은 탁상공론에만 빠져 노령복지와 소득재분배라는 이데올로기로 국민을 기망하면서 이들이 힘들게 벌어들인 돈을 세금처럼 강제징수 해왔다.

직장에서 쫓겨나 부도 위기에 몰린 국민이 “돈 500만원만 있으면 개인파산을 막고 재기할 수 있다. 늙어서 국가 복지제도의 혜택을 안 받아도 좋으니 그동안 낸 연금을 돌려달라”고 요구해도 국가와 공단은 이를 외면했고, 결과적으로 국민과 그 가정을 좌절과 파탄에 빠뜨렸다.

법은 평균적인 인간의 건전한 상식에 부합해야 한다. 상식의 법칙은 실제로도 최상위의 법원칙에 속해 기능한다고 필자는 믿는다. 법과 제도가 인간에게 봉사해야지, 인간이 법과 제도에 봉사해선 안 된다는 생각이다. 현대국가의 개념과 경험칙에 따르면 국가는 국민 합의에 의한 관념적 형태로서 실체가 존재하며, 실제 구성원인 국민의 고통과 국민 대다수의 합의를 외면하면서까지 존재가 인정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 헌법 제1조는 “국가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고 밝히고 있다. 헌법 전문도 “자율을 바탕으로 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국가의 이념으로 하고 있으며 국민의 천부인권적인 기본권(교육, 의료,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재산권 보장 등)의 절대적 보장”을 규정했다. 그 보장의 제도적 장치로서 입법 행정 사법 등 통치구조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법과 현실 사이엔 분명한 괴리가 존재한다.

최근 언론에 보도된 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 국민의 71.4%는 “정부가 소수 특권층의 이익을 위해 움직인다”고 답했고 “정부가 세금을 낭비한다”는 응답은 60.0%에 이르렀다. “경제정책의 혜택을 못 받는다”는 대답도 무려 86.3%였다. 또 다른 조사결과도 국민의 77% 이상이 “국민연금제도에 심한 피로감과 혐오를 느끼며 고통받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는 국민 대다수가 통치구조로서의 국가 및 그 정책과 도덕성을 믿지 않음을 보여준다. 또한 국민이 더는 국가가 기본권을 보장해주리라 믿지 않으며, 국민적 의무를 이행할 생각이 없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사실이 이렇다면 그에 대한 당연한 반작용으로, 국민이 더는 그들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국립대 법학교수의 ‘국민연금’ 탄핵사건

인터넷상에 개설된 ‘안티 국민연금’사이트들. 현재 수십 개의 카페와 블로그가 활동 중이다.

허울뿐인 소득재분배 … 누구 위한 노후보장인가

민주적 통치구조(국가행정 서비스)는 국민 대다수가 원하는 정책과 제도가 시행될 때 빛을 발한다. 그래야 국민은 안전보장, 질서유지, 공공복리를 위한 기본권 제한을 의무로서 저항 없이 받아들인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국민의 80%가량이 국민연금을 조세로 인식해 “노후보장은 국가가 신경 안 써도 좋으니 연금만 안 내게 해달라”며 신음하고 있는 상황은 분명 뭔가 잘못됐음을 방증한다.

헌법에 보장된 국민 저항권이 발동될 수도 있는 작금의 상황에 대해 왜 정부와 국회, 사법부는 이를 외면한 채 형식논리만 내세우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정부와 사법부가 내세우는 논리는 “국민연금제도에 소득재분배 기능이 있고 노후를 보장하는 복지정책인 만큼 공익을 위해 희생을 감수하라”는 것이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소득재분배이고 누구를 위한 노후보장이라는 것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 국민연금에는 소득재분배 기능이 거의 없다. 월 360만원 이상 소득자는 똑같은 액수를 납부하며, 소득구조가 투명하지 않은 탓에 부(富)의 이전효과도 분명치 않다. 현재의 경제성장과 노령문제 해결을 위해 미래 세대의 경제를 희생시키는, 즉 미래 세대의 수고 대가를 현재 세대가 당겨씀으로써 세대 간 부의 기형적 이전을 가져오는 좋지 않은 효과만 남아 있을 뿐이다.

소득재분배 효과가 나오려면 국민의 소득구조가 투명해 공평한 연금 징수가 이뤄져야 하고, 정부에 대한 신뢰가 제고돼 70~80%에 이르는 불신감이 신뢰감으로 바뀌어야 한다. 겉보기에 좋은 제도의 도입만이 능사가 아니라, 제도가 잘 시행되기 위한 선행 필요조건들을 국민의 뜻을 물어 따져야 하는 것이다.

“2001년 합헌 판결 … 이젠 판례도 바뀌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정부는 저출산, 고령화 문제를 국민연금 같은 ‘대증요법’으로 해결하려 들기보다 고령인의 취업 기회를 넓히고 보장하는 등 근원적인 방법으로 해결해야 한다. 그리고 미래에 대한 보장은 국민 각자의 몫으로 남기는 게 바람직하다. 국민을 바보 취급하면서 “시혜적인 복지제도를 시행해주는데 왜 취지를 모르고 아우성이냐”라는 정부의 태도는 분명 문제가 있다.

우리나라보다 먼저 공적연금 정책을 추진한 서구 국가들도 저출산, 고령화, 저경제 성장으로 인한 연금재정의 불안정성 때문에 골머리를 앓을 뿐 아니라, 공적연금 제도는 해당 국민의 심각한 저항에 부딪히고 있다. 최고의 복지정책을 자랑하는 국가에서도 공적연금 제도는 실패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지금의 국민연금법은 여러 면에서 위헌 법률로 폐지돼야 마땅하다. 강제가입, 국세에 준한 강제징수는 헌법에 규정된 재산권 보장, 평등권, 국민 일원으로서 자존감을 유지하는 등의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공익이라도 기본권의 본질적 내용 침해 금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와 시장경제 원리 등에 위배된다. 게다가 국민은 국민연금을 사실상의 조세로 체감하고 있어 저항감이 심하다.

2001년 헌법재판소는 “국민연금법은 소득재분배의 공익이 크므로 기본권을 침해할 수 있지만 국민은 이를 참아야 한다”는 취지로 강제가입, 강제징수 규정에 대해 합헌 판결을 했다. 하지만 이젠 판례도 변경돼야 하는 게 마땅하다. 소득재분배는 허울 좋은 명목일 뿐 소득 투명화와 징수의 균등성, 정부 신뢰감 제고 등 선행조건이 충족되지 않는 한 효과가 없기 때문이다. 헌법 제37조 2항은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해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는 바, 국민연금법은 기본권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므로 분명 위헌이다. 국민연금 가입자격 상실 시 연금을 반환하지 않게 한 규정과 타 연금과의 호환을 인정하지 않는 것도 현실과 국민정서에 맞게 바뀌어야 한다.

국가는 국민 노후보장을 이들의 자율에 맡김과 동시에, 국민연금으로 노인층의 지지를 얻고 노령문제를 해결하려 하거나 예산 외의 연금기금으로 환율방어 또는 투자를 빙자, 주식시장 같은 시장에 개입하고 경기부양을 위한 공공건설 등의 명목으로 사용하려는 유혹을 떨쳐야 한다. 지금 국민은 생계를 위해, 자녀들의 기형적인 사교육에 대처하기 위해, 젊은이들은 취업의 암울한 미래를 보면서 고통당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가 보장하는 허울 좋은 소득재분배나 노년의 장밋빛 인생을 꿈꿀 정신적 여유는 전혀 없다. 헌법에서 정한 천부인권적인 국민 기본권으로서의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교육 의료 근로의 권리 보장이 시급하다.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범죄의 상당 부분은 생계형 범죄와 부양가족의 생활비 및 사교육비 부담으로 인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차라리 교육연금을 만들어 사교육의 필요성을 없앰으로써 자녀 교육에 대한 부담을 덜어준다면 국민은 진정 국가를 신뢰하리라 믿는다. 다음은 필자의 주장에 꼭 어울리는 노자의 말이다.

“小國寡民,…甘其食, 美其服, 安其居, 樂其俗(작은 나라에 적은 백성으로서… 음식을 달게 먹고 옷을 아름답게 입고 편안하게 거주하며 미풍양속을 즐기는 국가 사회가 이상형 국가다).”



주간동아 2008.01.15 619호 (p20~22)

이문호 경북대 교수·법학 lmoonho@k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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