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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CUS②

그들만의 權不十年 진보, 초라한 몰락

失政과 개혁 역할 부재로 대선 참패 … 4월 총선 기사회생 돌파구 가능할까

  •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그들만의 權不十年 진보, 초라한 몰락

그들만의 權不十年 진보, 초라한 몰락

그람시는 “과거의 것은 죽어가는데 새로운 것이 나타나지 않는 게 위기”라고 했다. 기존의 질서를 뒤엎은 마르셀 뒤샹의 작품 ‘샘’.

‘진보의 위기.’ 최근 2~3년간 한국 진보 지식사회를 관통한 최대 논제다. 대선 정국이 시작되던 지난해 초 이 논란은 정점에 달했다. 같은 해 2월 고려대 최장집(65·정치외교학) 교수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정부가 실패하고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했다면 교체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한 발언 내용이 문제가 됐다.

당시 인터뷰에서 진보개혁 세력이 안고 있는 문제점에 대한 최 교수의 지적은 직설적이었다. 다음은 인터뷰 내용의 일부다.

“기존의 권위주의 체제는 우리가 개혁해야 할 과제와 그 내용을 분명하게 남겨놓았다. 분명한 개혁과제와 이슈가 있는데 그간 이에 최선을 다하지도 않았고, 개혁의 방향과 내용을 달리해왔으면서 무작정 보수파 집권만은 막자고 한다면 안 된다. 내용도 없으면서 정치적·이념적 라인을 따라 다시 모여 재집권을 위해 노력하자는 것은 민주주의 원리에도 맞지 않는다. 지금까지는 민주파라 자임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정책 비전이 뭔지, 대안이 뭔지, 한국 사회가 어떤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는 것인지에 대해 제대로 말하지 않았고, 그걸 실천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그런데 보수파 집권 가능성을 강조하면서 자신들이 꼭 재집권해야 한다고 한다. 재집권에 실패하면 역사에 죄를 짓는 것이라고 하는데 그때의 역사는 뭐고, 그때의 민주주의는 뭔지 모르겠다.”

최 교수의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다. 지난해 12월19일 치러진 17대 대통령선거는 보수 진영의 대승으로 끝났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과 이회창 후보 등 보수진영 후보를 지지한 유권자가 65%에 이른 반면, 진보진영 후보를 지지한 유권자는 35%에도 미치지 못했다.

진보진영 학자들은 ‘진보의 위기’가 현실화됐다는 데 의견을 달리하지 않는다. 대다수 학자들은 참여정부의 실정(失政)과 진보개혁 세력의 대안 부재 등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그들만의 權不十年 진보, 초라한 몰락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과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 등 당직자들이 1월1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을 찾았다.

65% 대 35% 지지 … 진보 같지 않은 진보 가장 큰 위기

성공회대 조희연(52·사회학) 통합대학원장은 대선 이후 한 언론사 기고문을 통해 “출발점은 아무래도 참여정부에 대한 국민의 광범한 실망과 이반이 될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중도개혁 세력이나 진보세력이 대안적 프레임을 제공하지 못했다는 점에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연세대 김호기(48·사회학) 교수는 한 언론사와의 대담에서 “그람시는 ‘과거의 것은 죽어가는데 새로운 것이 나타나지 않는 게 위기’라고 했다. 진보개혁 세력이 현재의 가치, 리더십을 가지고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가? 없을 것 같다. 이게 위기다”라고 진단했다.

그렇다면 참여정부에 몸담았던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의 시각은 어떨까?

참여정부는 진보개혁 성향 시민사회운동가들의 전폭적 지지를 바탕으로 출범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임기 중 만든 수많은 위원회에 시민사회단체 지도층 인사들이 대거 참여했다. 참여정부의 실패가 곧 진보개혁 세력의 실패로 평가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도 진보개혁 세력이 최대 위기에 빠져 있다는 현실 인식에서는 앞서 언급한 학자들의 분석에 대체로 동의한다. 참여연대 김민영(41) 사무처장은 “진보를 자임하는 정치세력이 진보 같지 않은 게 문제다. 진보적인 지지자들에게도 선택받지 못한 것이 이번 선거의 결과”라고 말했다.

대안에너지운동 ‘시민발전’ 박승옥 대표는 “이번 대선에선 2002년 대선 때 활발했던 시민사회운동이 전혀 주목받지 못했고, 진보진영의 한 축이라 할 노동조합의 연합체인 한국노총이 이명박 후보 지지를 표명한 것 자체가 진보진영의 명백한 패배이자 위기로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은 참여정부의 실정이 진보의 위기를 초래한 직접적 원인이라는 분석에 대해선 동의하지 않는다. 참여정부 임기 중후반부터 범사회적 이슈로 제기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이라크 파병, 비정규직 법안 처리 문제 등에서 시민사회단체는 이미 반(反)정부로 돌아섰기 때문이라는 것. 이들은 기본적으로 노무현 정부를 진보 성향의 정부로 인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노무현 정부는 우파 정부에 가깝다”는 것이다. 참여연대 김 사무처장의 이야기다.

“노무현 정권은 친(親)재벌적일 뿐 아니라 굉장히 미국 추종적이었다. 복지정책은 형식적인 수준에 머물렀다. 또한 생태문제는 뒷전으로 미루고 기업도시, 혁신도시 등 전국적으로 개발 붐을 만들어낸 주역이었다. 임기 내내 이런 양상이 반복됐다. 진보진영이 주창한 것과는 전혀 다른, 우파적 정책들을 수용한 정부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표현 방식이 기존 민주화운동에 뿌리를 둔 개념을 갖다 썼기 때문에 실제 집행된 정책과 개념들 사이에 불일치가 발생했다. 그 결과가 바로 양극화 심화 등 제반 사회적 문제다.”

김 처장은 “참여정부 임기 말 ‘좌파 신자유주의’ ‘실용적 진보’ 등 애매모호한 개념들이 등장하면서 진보 개념 자체가 모호해진 측면이 있다”며 “보수진영이 전략적으로 참여정부를 진보정부라고 규정짓고 참여정부의 몰락을 진보진영의 몰락으로 규정짓는 황당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처장은 이런 과정에서 진보개혁 세력이 참여정부 실정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결국 위기를 맞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비전이나 정책 또는 하나의 세력으로 진보적 대안을 분명히 제시하면서 노무현 집권세력과 차별화할 수 있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보수화한 노무현 집권세력부터 극좌파까지 싸잡아 한 덩어리로 평가받은 측면이 있는 것 같다.”

진보개혁 세력의 위기를 초래한 또 다른 원인으로 지적되는 것은 참여정부의 실정으로 발생한 신자유주의의 폐해들이다. 대표적인 것이 개인주의화다. 실업난과 경제침체 속에서 사회·정치 문제에 관심이 없어지는 대신, 개인의 문제를 풀기 위해 자신의 경쟁력을 높이는 방식을 선호하는 사회로 급속히 재편되고 있는 것이다.

시민발전 박 대표는 “그 결과 우리 사회에 공동체형 마을은 거의 사라져버렸다. 가족과 친구 등으로 구성되는 마지막 공동체, 다시 말해 최소한의 사회안전망마저도 붕괴되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결과적으로 경쟁에서 이긴 사람만 살아남는 자본주의의 극대화 속에서 진보개혁 세력이 설 자리를 잃고 있다는 것이다.

진보개혁 세력의 한 축이던 노동조합이 노동집단의 대표성을 잃은 것이 그 실례로 지목된다. 현재 우리나라의 양대 노동조합 기구는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다. 하지만 이들 노조에 가입한 조합원은 ‘대기업-남성-정규직’ 사원 중심이다. 사실상 전국 노동자의 10%도 채 안 되는 집단인 것이다.

이들보다 열악한 여성이나 비정규직을 대변하는 조직은 현재로선 없다. 민주노총이 이처럼 제한적인 틀 속에서 의견을 수렴하다 보니 정작 필요한 나머지 90% 노동자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더욱이 이번 대선 때는 조직된 10%의 노동자 내에서도 의견이 엇갈렸다. 한국노총이 이명박 후보 지지를 선언한 것이다.

여성민우회 유경희 대표는 “비록 노무현 정부 임기 중후반부터는 반정부 성향으로 돌아섰다 해도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이 정부조직에 직접 참여하면서 고유의 비판기능을 일정 부분 상실한 것은 진보의 위기 원인 가운데 하나”라고 분석했다.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이 정부 정책입안과 입법과정에 참여하면서 현실과 타협하는 경우가 적지 않게 발생했다. 최선의 선택이 어렵다는 이유로 차선을 선택하는 경우가 생긴 것이다. 시민사회단체로선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태도라는 지적이 많았다. 특히 이런 과정을 거치는 동안 사안에 따라 시민사회단체들의 입장과 목소리가 달라지면서 국민을 혼란스럽게 한 측면도 있다. 결국 이슈마다 100% 동의가 이뤄지지 않고 힘이 분산되는 문제점이 나타났다.”

그들만의 權不十年 진보, 초라한 몰락

2006년 6월 열린 ‘2006 노벨평화상 수상자 광주 정상회의’ 개회식에 참석해 나란히 앉아 있는 노무현 대통령(왼쪽)과 김대중 전 대통령.

정책과 개념의 불일치 … 국민 혼란보다 안정 선택

분명 진보는 위기에 처했다. 그렇다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무엇일까?

김 처장은 이번 17대 대선에서 보수진영인 이명박 후보가 승리하게 된 원인을 많은 사람들이 변화와 개혁을 이끌어갈 적임자로 그를 선택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김 처장은 바로 여기서 해법을 찾는다. “그동안 진보개혁 세력은 민주 대 반민주 구도 내에서 뭉뚱그려져 있었다. 일부 새로운 진보를 만들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큰 흐름에서 분화되지 못하는 한계가 있었다. 이젠 변화해야 한다. 자유주의적인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그룹과 사회민주주의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그룹 등으로 분화해 재구성돼야 한다.”

박 대표와 유 대표도 김 처장과 비슷한 해법을 제시했다. 박 대표는 다만 “무엇보다 시민사회단체들이 지역과 조직 내에 공동체를 회복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전제하면서 “이 토대 위에서 진보정당의 재구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들은 진보개혁 세력이 위기를 탈출하는 데는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위기를 맞은 진보개혁 세력, 과연 4월 총선을 앞두고 돌파구를 찾아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주간동아 2008.01.15 619호 (p16~18)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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