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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래블게릴라의 개성만점 배낭여행|(47) 히말라야 트레킹

가도 가도 끝없는 고산길 봐도 봐도 눈부신 눈천지

  • 글·사진=신범숙

가도 가도 끝없는 고산길 봐도 봐도 눈부신 눈천지

가도 가도 끝없는 고산길 봐도 봐도 눈부신 눈천지

만년설로 뒤덮인 히말라야 고봉들과 언제나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이 ‘네팔’의 매력이다. 돌틈에서 피어난 이름 모를 들꽃(오른쪽).

산악국가 네팔의 11월은 ‘트레커(trekker)들의 천국’이라 부를 만하다. 눈으로 뒤덮인 히말라야를 감상하기에 최적의 날씨이기 때문이다. 네팔의 지형은 히말라야 설산(雪山)에 에둘러 싸인 분지지만, 산들이 동서로 넓게 펼쳐져 있어 시야가 탁 트이는 느낌이다.

트레커들이 가장 많이 몰리는 코스는 안나푸르나 산군(山群)과 에베레스트 산군, 랑탕-헬람부 산군, 그리고 히말라야를 넘어 티베트로 가는 이름 없는 루트 등이다. 트레커들에게는 ‘지도만 보고 있어도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곳이 바로 네팔 분지다.

에베레스트 지역 가운데에서도 쿰부히말의 ‘고쿄리(Gokyo Ri) 루트’는 아직까지 한국인에겐 생소하다. 그러나 이 길목은 에베레스트 산군을 가장 아름답게 조망할 수 있는 뷰포인트인 데다, 호수들이 만들어내는 절경 덕분에 최근 인기가 급상승하고 있다.

고쿄리 트레킹의 들머리는 에베레스트와 동일하다. 가장 초입인 ‘지리(Jiri)’와 조금 더 들어간 ‘루클라(Lukla)’ 두 곳. 초반부터 힘을 빼기엔 체력상태와 일정이 여의치 않다고 판단해 필자는 중간 기점인 루클라에서 시작하기로 하고 여장을 꾸려 비행기에 올랐다. 소형 국내선 비행기들이 루클라 비행장에 트레커들을 쏟아놓자마자 현지 포터들이 경쟁하듯 달려든다.

날씨 좋은 날 아침녘엔 에베레스트 조망할 수 있는 행운



가도 가도 끝없는 고산길 봐도 봐도 눈부신 눈천지

단단히 차려입은 한 서양 트레커. 히말라야 곳곳에서 티베트어가 씌어진 사원을 만날 수 있다(아래).

11월은 하늘이 한창 눈부실 시기인데, 설봉들이 구름에 가려 마치 트레커들과 숨바꼭질하는 듯하다. 우기가 끝난 티베트도 이상기후로 연일 비가 내리고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이곳 네팔의 기후도 예측이 어려웠다.

팍딩까지는 순탄한 길. 하지만 둘째 날 남체 바자르(Namche Bazar)까지는 지루한 오르막이 계속됐다. 숨이 머리끝까지 차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3420m까지 800m 넘는 고도를 평지 하나 없이 올라가자니 당연한 일. 이럴 때는 버틸 힘이 돼줄 주문이 필요하다.

‘그나마 짐이 가벼우니 온갖 먹을 것을 지고 가는 지리산 종주보다 훨씬 낫지. 암, 낫고말고!’

전 세계에서 몰려든 트레커들과 그보다 더 많은 포터들과 함께 걷는 재미는 꽤 쏠쏠하다. 두드코시 강(Dudh Koshi River) 주변에 훌륭한 캠핑장이 있는 포르체탕가(Phortse Tanga)를 지나고, 최초로 4000m를 통과하게 되는 돌레(Dole), 그리고 마체르모(Machhermo)까지 가는 길은 날씨 때문에 희끗한 설봉들과 어깨걸이를 하며 걷거나, 앞뒤가 보이지 않는 운무에 휩싸여 발끝만 보고 걸었다.

루자(Luza)라는 마을에서는 오래도록 머물고 싶었다. 하루 종일 차를 마시며 책만 읽어도 행복할 것 같아 한참을 쉬어 갔다. 그리고 마체르모를 출발한 날, 드디어 하늘이 걷히기 시작했다. 고산의 거친 숨을 고르며 걷다가 어느 순간 고개를 들었다. 그 유명한 촐라체와 타보체피크가 손에 잡힐 듯 가까이에서 하얀 숨을 내뿜고 있었다. 그리고 뒤이어 아마다블람이 수려한 얼굴을 드러냈다.

강폭이 좁아지고 바로 옆에서 흐른다 싶더니, 고쿄리로 가는 길에 만나게 되는 세 개의 호수 중 첫 번째 호수가 나타났다. 마치 이름 없는 어느 연인의 사랑처럼 평범한 호수였다.

하지만 두 번째 타보체 초(Taboche Tsho)를 지나, 세 번째 호수인 두드 포카리(Dudh Pokhari)를 만나고 나니 왜 이 시즌에 많은 사람들이 고쿄리로 향하는지 알 것 같았다. 검고 흰 고산들에 둘러싸인 두드 포카리는 고산에서만 볼 수 있는 깊고 푸른 색을 간직하고 있었다.

트레커들은 대부분 하루 중 유일하게 에베레스트를 조망할 수 있다는 아침녘에 산에 오른다. 그런데 필자가 두어 시간 늦게 올랐다고 눈보라가 휘몰아쳤다. 저 멀리서 “후퇴하라!”는 외침이 울려 퍼졌다. 아쉬웠다. 하지만 에베레스트의 파노라마를 보지 못한다고 해서 내 걸음이 무의미해지는 것은 아니다. 옷섶에 눈이 쌓이고 시야가 온통 하얘질 정도로 위험천만한 순간이었지만 놀랍게도 저 멀리 동쪽 하늘에 시선이 쏠렸다. 어느 틈엔가 맑은 하늘이 보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래, 내가 정상에 올라갈 때쯤이면 하늘이 맑아져 있겠지.

급히 갈 이유가 없었다. 예상대로 정상에 올라서니 이미 눈보라는 걷혔고, 흰 산봉우리들만큼이나 하얀 구름이 홀로 된 트레커를 맞이했다. 5357m의 고쿄리 정상에 서니 머리가 어지럽다.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구름이 기다리라고 말하는 듯했다. 눈부시게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햇볕을 즐겼다.

보일 듯 말 듯한 저 설산 뒤는 티베트 땅이다. 네팔의 히말라야는 티베트의 연속이나 다름없다. 에베레스트 지역의 모든 문화가 티베트와 흡사하기 때문이다.

전통의상, 관습, 종교는 물론 그들의 언어까지 티베트의 판박이다. 이곳에 살고 있는 셰르파(sherpa)족의 이름 또한 ‘동쪽에서 온 사람’이라는 뜻의 네팔어다. 그들은 티베트의 동쪽 지역 캄(kham)에서 이주해 왔다고 한다.

다시 지도를 펼쳐본다. 오래전 최초의 셰르파족이 넘어왔다는 낭파라(Nangpa La, 5741m) 루트를 손끝으로 따라가본다. 1년에 겨우 5월부터 8월까지만 열리는 길이다. 기약할 순 없지만 어느 날엔가 그 길을 힘겹고도 행복하게 걷고 있을 내 모습을 그려보며 하산하기 시작했다.



주간동아 618호 (p92~93)

글·사진=신범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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