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18

2008.01.08

구수하고 쫄깃한 돼지고기 고구려 기상 듬뿍 담았네

  • 허시명 여행작가 twojobs@empal.com

    입력2008-01-07 09: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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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수하고 쫄깃한 돼지고기 고구려 기상 듬뿍 담았네

    두대문집 된장고기쌈밥

    서울 인사동 두대문집 조리부장으로 있는 이기승 씨를 만났다. 요리 경력 17년. 스무 살에 호텔 주방에서 요리세계에 첫발을 내디뎠다. 처음엔 몸집이 크다고 설거지만 죽어라 시키고 요리는 손도 대지 못하게 했다. 몸집이 크면 몸놀림이 둔해서 남들 5년 공부할 것을 10년 해야 익힐 수 있으니 애초 그만두라는 게 주방 선배들의 조언이었던 것. 몸무게가 100kg에 육박하지만 그가 유도 3단의 몸놀림 좋은 재목인 줄 모르고 한 말이었다.

    그가 능력을 발휘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6개월 만에 설거지를 털고 요리를 시작하게 됐는데, 그의 체력이 오히려 도움이 됐다. 연회가 많은 호텔이라 주말이면 2000~3000명분의 요리를 해야 했으니 좋은 체력은 필수조건이었다. 그가 2007년 인사동으로 진출하기 전까지는 김포공항 스카이시티 컨벤션센터에서 주말이면 5000명분의 음식을 준비했다. 산더미 같은 식재료들에 온기를 불어넣었으니 장사가 아니면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가 만든 음식 중에서 손님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것이 된장고기쌈밥이라고 했다. 고기 양념에 된장을 넣는다? 요즘은 매운 고추가 득세하는 세상이라 고추장 양념이 익숙한데, 된장 양념이라니 낯설게 들린다.

    양념 때 10분간 정성껏 주물러 … 직장인들 점심 인기메뉴

    그가 내놓는 요리의 모양새를 보니, 큰 접시에 손바닥만한 상추를 9장 돌려 그 위에 깻잎을 얹은 뒤 주먹밥을 하나씩 놓았다. 주먹밥이 모두 8개라 빈자리 하나엔 겉절이김치를 올렸다. 접시 가운데에는 저민 양파에 영양부추 한 줌을 깔고 그 위에 구운 돼지고기를 올렸다. 이렇게 한 접시의 된장고기쌈밥이 한 끼 식사다. 점심때 직장인들이 많이 찾는다고 했다.



    된장고기쌈밥이라고 표현했지만 이 요리는 불고기의 원조라 일컬어지는 고대(古代)의 맥적(貊炙) 요리의 계보를 잇는다. 불고기는 쇠고기를 진간장에 양념하지만, 맥적은 돼지고기를 국간장에 양념하면서 된장까지 넣는다.

    두대문집에서는 한 번에 돼지고기 목살 10kg을 양념하는데, 마늘 참기름 깨소금 생강 청주를 넣고 배 양파 파를 갈아 넣는다. 부족한 단맛은 흑설탕으로 조절하고 주무르기 좋게 물을 약간 넣는다. 맥적 요리는 불고기 요리와 달리 오래도록 주물러야 한다. 쇠고기야 양념한 뒤 재놓으면 되지만, 돼지고기는 물이 나오기 때문에 그냥 두면 싱거워져 10분 정도는 정성껏 주물러야 한다. 두대문집(02-737-0538)에서는 이렇게 양념한 고기를 ‘맥적철판구이’로도 내놓는다.

    우리 민족의 가장 오래된 요리로 지금까지 맥을 잇고 있는 게 맥적일 것이다. 맥적이 우리의 고대 음식이라고 규정한 사람은 최남선이다. 최남선은 4세기경 집필된 중국의 ‘수신기’를 인용하면서 맥은 동북에 있는 부여인과 고구려인을 가리키며, 맥적은 우리나라 북쪽에서 수렵생활을 하며 개발한 고기구이라고 했다. 맥적 요리 된장고기쌈밥을 맛보면 고구려적 대륙의 기운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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