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18

2008.01.08

개발 신음 백두산을 어쩌란 말이냐

중국 측 북→서→남 곳곳서 위락시설 공사 중 … 한민족 흔적 사라지고 ‘중국만의 백두산’으로

  • 중국 옌볜=한상진 기자 greenfish@donga.com

    입력2008-01-02 14: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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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발 신음 백두산을 어쩌란 말이냐

    북파(北坡)에서 바라본 백두산 천지.

    ‘백두산’이 사라지고 있다. 중국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창바이산(長白山·백두산의 중국식 이름) 공정(이하 백두산 공정)’의 이름 아래 한민족의 영산(靈山) 백두산과 한민족의 흔적이 조금씩 자취를 감추고 있는 것이다.

    중국 정부는 2018년 동계올림픽을 백두산에 유치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백두산에 대한 중앙정부 차원의 개발을 체계적으로 진행 중이다. 백두산 주변의 크고 작은 도시에서는 수년째 개발의 굉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백두산 북쪽 산문(북파·北坡)에서 시작된 개발 열기는 서파(西坡)를 넘어 북한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남파(南坡)로 점차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중국 정부는 2005년 5월 옌볜조선족자치주 관할하에 있던 백두산 관리권을 지린성 정부로 옮겨옴과 동시에 개발을 책임질 기관으로 ‘창바이산개발관리위원회’(이하 위원회)를 출범했다. 부청(副廳)급 기구로 출범한 ‘위원회’는 산하에 지서(池西), 지북(池北), 지남(池南) 등 3개 개발구를 두고 관리구역 내 경제개발과 행정업무, 각종 천연자원 개발에 대한 지도권을 행사한다. 개발의 핵심은 옌볜조선족자치주와 백두산 서쪽 관문인 바이산(白山)시의 경제·사회 발전 계획이 맞물리도록 하는 것. 옌볜에서 만난 한 중국 공산당 간부는 “중국이 최근 몇 년간 가장 많은 자본을 투자한 관광명소가 바로 창바이산”이라며 자랑하듯 말했다.

    ‘백두산 공정’이 진행 중인 중국 옌볜, 그 현장을 찾았다.

    중앙정부 차원서 옌볜조선족자치주 무력화



    개발 신음 백두산을 어쩌란 말이냐

    백두산 서파 입구의 창바이리조트 건설현장. 3000객실 규모의 종합 레저타운이 들어설 예정이다.

    중국의 동북 3성(지린성, 헤이룽장성, 랴오닝성) 가운데 조선족이 가장 많이 살고 있는 옌지시에서 백두산의 북파가 있는 이도백하(二道白河)까지는 약 200km, 승용차로 3시간 거리다. 원래 지린성 안투현의 작은 진(鎭)에 불과하던 이도백하에 최근 몇 년 사이 개발 광풍이 불고 있다. 그에 따라 인민폐로 몇십원 하던 3.3㎡당 땅값이 수십 배로 뛰었고, 진의 규모나 인구 수는 안투현을 압박한다.

    이도백하는 중국이 추진 중인 백두산 개발의 중심이다. 전통적 관광코스인 백두산 북쪽 산문인 이곳은 백두산 개발의 시작과 끝을 보여준다. ‘유럽 같기도 중국 같기도’ 한 공원과 호텔, 위락시설은 ‘동양의 알프스’라는 별칭이 어색하지 않게 느껴질 정도.

    개발 신음 백두산을 어쩌란 말이냐

    창바이산 공항 건설현장의 차량통제소. 외부인의 출입과 사진촬영이 금지돼 있다.

    개발이 진행되면서 이도백하는 이름도 슬그머니 바뀌었다. 행정구역상 명칭이 천지의 북쪽을 뜻하는 ‘지북(池北)’으로 바뀐 것. 이도백하에 본부를 두고 있는 ‘위원회’의 이름도 2007년 초 ‘지북관리위원회’로 개명됐다.

    백두산 관리 권한이 지린성 정부로 이관된 2005년부터 시내 중심의 간판과 안내문에서 조선어가 사라진 점도 개발과정에서 생긴 큰 변화다. 옌볜조선족자치주 어디에서나 볼 수 있었던 조선어가 사라진 이 지역은 조선족에게도 서서히 ‘낯선 땅’이 되고 있다. 이곳에 사는 많은 조선족들은 이러한 일련의 변화를 “조선족 흔적을 지우기 위한 중국 정부의 준비된 계획”으로 받아들인다.

    옌볜에서 진행 중인 ‘한민족 흔적 지우기’는 자치주 주도(州都)인 옌지에서 더욱 뚜렷이 확인할 수 있다. 지난해 중국 정부는 백두산 개발을 이유로 백두산 주변 도시인 ‘옌지-룽징-토문’을 모아 ‘옌징시’로 이름을 바꾸는 행정구역 개편을 단행했다. 옌볜 내 최대 규모의 신도시가 탄생한 것. 게다가 새로운 시의 관리권은 옌볜조선족자치주가 아닌 지린성 정부로 이관될 전망이다. 이를 두고 옌지지역에서는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다음은 취재 중 만난 한 옌볜대학 교수의 설명.

    “옌볜조선족자치주를 무력화하기 위한 중앙정부의 계획으로 봐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자치주를 해체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계획이다. 백두산 개발의 주도권을 중앙정부가 쥐겠다는 의도도 상당히 반영됐다고 봐야 한다.”

    현재 옌볜지역의 조선족 인구비율은 37%까지 떨어져 있다. 옌볜의 조선족 학자들이 작성한 각종 통계자료에 따르면, 1996년부터 조선족 인구는 매년 1% 이상 감소하고 있다. 이런 추세가 계속된다면 몇 년 후에는 옌볜조선족자치주가 해체될 수 있다고 이 지역 학자들은 입을 모은다(자치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소수민족이 전체 인구의 33% 이상을 차지해야 한다). 한 조선족 사업가는 “시간이 지날수록 옌볜조선족자치주의 의미가 퇴색될 것이다. 조선족 인구도 점점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중앙정부의 직접 통치를 받게 된다면 몇 년 후에는 자치주가 소멸될 수도 있다. 중국 정부가 노리는 것이 바로 이 점이다”라고 귀띔했다.

    12월14일, 이도백하에 도착한 기자를 가장 먼저 반긴 것은 밤새 내린 눈으로 얼어붙은 도로와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공사장 굉음이었다. 북파로 이어지는 국도변에는 이미 5~6개의 호텔이 들어서고 있었고, 도시 전체에 10층 전후의 아파트들이 줄지어 들어서 있었다. 한 조선족 주민은 “대부분 외지인들이 투기를 위해 사들이는 아파트다. 과거 이곳에 살던 사람들은 외곽으로 모두 쫓겨갔다”고 말했다.

    중국 정부의 백두산 개발을 주도하고 있는 ‘위원회’ 본부를 찾아갔지만 취재는 불가능했다. “백두산 개발과 관련된 내용은 모두 철저히 보안이 지켜지고 있다”는 것이 이유였는데, 취재를 위해 접촉한 한 위원회 관계자는 “한국 언론이 백두산 소유권을 주장하면서 중국 정부에 대한 악의적인 기사를 쓰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며 강한 경계의 눈빛을 보였다. 이미 우리 언론에 수차례 보도된 바 있는 백두산 내 한국인 운영 호텔의 철거도 위원회 주도로 이뤄지고 있다.

    관광객이 없어 문을 닫은 ‘창바이산자연박물관’은 사실상 백두산 홍보관 구실을 하고 있다. 박물관에는 마오쩌둥(毛澤東), 덩샤오핑(鄧小平), 장쩌민(江澤民) 등 역대 중국 정부 최고지도자들이 창바이산에 보인 관심을 담은 사진과 해설 등의 전시물이 많았는데, 특히 박물관 입구 현판에 적힌 “창바이산은 중국의 자랑스러운 자연문화유산”이라는 홍보용 설명이 눈길을 끌었다.

    개발내용 보안 철저, 한국 언론에 강한 경계의 눈빛

    개발 신음 백두산을 어쩌란 말이냐

    이도백하에 자리한 창바이산스키장. 2~3년 안에 대규모 확장 공사가 진행될 전망이다.

    백두산 개발 현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지린성 창바이현 바이산시에 건설 중인 창바이산 공항이다. 백두산 서파에서 불과 20여km 떨어진 곳에 건설 중인 이 공항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 맞춰 개장한다는 목표로 막바지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이 공항이 건설될 경우 백두산에서 가장 가까운 공항은 백두산 북파와 비교적 가까운 옌지 공항에서 창바이산 공항으로 바뀐다. 서파에서 차로 불과 20여 분 거리에 있고 인근 바이산시에서 동남쪽으로 10.6km 떨어져 있는 이 공항은 활주로 길이만 2600m에 이르며, 연간 54만명의 수송능력(2015년 기준)을 갖게 될 전망이다.

    창바이산 공항 건설현장을 찾은 12월15일, 공항 건설본부 측은 외부인의 출입을 철저히 막고 있었다. 공사차량과 군 관련 차량만이 쉴새없이 드나들었다. 취재 요청을 받은 건설본부 한 관계자는 “공사장 내에 군사기지가 있어 취재진은 물론 일반인의 출입도 통제하고 있다”며 협조를 거부했다. 취재진을 안내한 가이드에 따르면 바이산시와 서파 입구, 공항로 주변 곳곳에 국경수비대가 주둔해 있다고 한다.

    서파에서 약 10km 떨어진 바이산시 초입의 한 마을에도 각종 숙박 및 휴양 시설 공사가 한창이었다. 공사현장에서 만난 한 중국 공산당 간부에 따르면, 이곳에는 ‘창바이리조트’라는 이름의 종합 레저시설(총 3000객실 규모)이 들어설 계획이다. 이 관계자는 모든 준비가 끝나는 2009년쯤에는 전통적인 백두산 등반코스인 북파보다 더 번창할 것이라고 자랑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전문 산악인들의 등산코스로 인식되던 백두산 서파관광이 지난해부터 일반인에게 활짝 열린 것도 공항 건설과 관련된 변화다. 공사현장에서 만난 한 중국 정부 관계자는 “‘위원회’가 이 지역 인근 개발에만 약 20억 위안(2600억원 이상)을 투입한다는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도백하에서 서파로 가는 130km의 길은 여전히 비포장 상태였다. 한겨울에는 1~3m 이상 눈이 쌓인다는 이곳은 툭하면 교통이 두절되는 그야말로 산간오지. 공항 준공에 맞춰 포장을 실시할 예정이라고 하는데, 이 길이 완공되면 백두산의 북파와 서파를 잇는 1박2일짜리 관광코스도 가능해질 전망이다.

    자연이 그대로 보존돼 있는 이 길은 곳곳에서 멧돼지 노루 담비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을 만큼 원시림 상태 그대로였다. ‘위원회’는 이 지역 전체를 자연보호구역으로 지정해놓고 외지인의 벌목 등을 철저히 금하고 있다. 청나라를 세운 만주족이 성지로 여기는 지역이라고 알려진 이 길 곳곳에는 인삼밭이 조성돼 있어 눈길을 끈다. 다음은 이 지역에 얽힌 전설 가운데 하나.

    “청나라 초대 황제인 누르하치는 호랑이의 도움을 받아 이 지역(이도백하-서파 원시림)에서 산삼밭을 발견했다. 이 산삼을 팔아 만든 자금은 이후 부족의 통일과 정복전쟁에 쓰였다. 누르하치의 모친이 빨간색 산삼 열매를 먹고 누르하치를 잉태했다고 알려진 지역도 바로 이곳이다.”

    옌볜지역 조선족 상인들에 따르면, 이곳에서 재배된 인삼은 중국에서 한국산 인삼에 이어 비싼 값에 거래되고 있다고 한다.

    ‘창바이산 브랜드’로 각종 관광상품 대대적 개발

    공항이 들어서는 바이산시에는 국제 규모의 스키장도 만들어진다. 2018년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한 시설이라는 것이 지역 관계자들의 설명. 이도백하에도 ‘창바이산스키장’을 중심으로 한 레저시설들이 자리잡고 있지만, 사실상 영업은 안 되고 있었다. 교통 요지인 옌지에서 자동차로 3시간이나 떨어져 있다는 점도 문제이고, 시간당 인민폐 180원(약 2만3000원)에 이르는 스키장 이용료도 중국인 관광객들에겐 부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키장 관계자는 “2~3년이 소요되는 스키장 확장공사가 끝나면 본격적으로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을 것”이라며 자신 있는 전망을 내놨다.

    중국 정부는 ‘창바이산’을 브랜드화한 각종 관광상품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바이산시에서 개발을 추진 중인 ‘창바이산 광천수’와 ‘천연온천’. 현재 옌볜조선족자치주와 지린성 정부는 총 32곳을 광천수 개발 예정지로 확정하고 매년 광천수 축제 등을 열어 대대적인 홍보에 나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1990년대 후반 한국 기업들이 북파에서 처음 상품화한 백두산 온천은 지금은 중국 정부 주도로 곳곳에서 개발이 추진되고 있다. 지린성 정부 이미 인삼 녹용 벌꿀 등 창바이산에서 나오는 모든 상품에는 ‘창바이산’이라는 이름의 상표를 붙이도록 조례까지 마련해두고 있다.

    옌볜조선족자치주란?

    경상도와 전라도 합친 면적 조선족 82만명 거주


    옌볜조선족자치주는 1952년 9월3일 설립된 중국 내 가장 큰 조선족 집단거주지역으로, 중국 동북지역의 유일한 소수민족 자치주다. 자치주 산하에는 옌지, 토문, 둔화, 룽징, 훈춘, 화룽 등 6개 시와 왕칭, 안투 등 2개 현이 있으며, 주도는 옌지다. 자치주의 총면적은 4만3559㎢로 지린성 총면적의 3분의 1에 해당하는데, 이는 우리나라의 경상도와 전라도를 합친 면적과 비슷하다. 서쪽이 높고 동쪽이 낮은 형태인 이 지역에는 220만여 명의 인구가 살고 있다. 이 가운데 조선족은 82만여 명으로 전체 인구의 38.76%를 차지한다. 1955년 자치주가 만들어진 이후 북한, 러시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이곳에 중국 정부의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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