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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대 특파원의 중국 차세대 지도자 열전|⑨ 왕치산(王岐山)

실력半 행운半 거침없는 출세가도

오지로 쫓겨갔다 권력자 딸과 결혼 … 장인 후광·겸손한 일처리로 ‘신뢰 한 몸에’

  • 하종대 동아일보 베이징 특파원 orionha@donga.com

실력半 행운半 거침없는 출세가도

실력半 행운半 거침없는 출세가도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왼쪽에서 세 번째)이 2006년 4월18일 중국 베이징현대차 제2공장 기공식에서 김하중 주중 한국대사(왼쪽에서 두 번째), 왕치산 베이징 시장(왼쪽에서 네 번째) 등과 함께 첫 삽을 뜨고 있다.

부모가 고관대작이 아닌데 태자당(太子黨)이고 칭화(淸華)대학 출신도 아닌데 칭화방(淸華幇)이며 역사학과를 나왔지만 ‘금융통’으로 불리는 사람이 있다. 바로 지난해 10월22일 중국 공산당 제17기 중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중앙정치국 위원으로 뽑힌 왕치산(王岐山·59·사진) 부총리 내정자다.

태자당이란 권력 실력자인 부모의 후광으로 중국 정치권력의 핵심 요직에 포진한 4000여 명의 당정 간부를 일컫는 말이다. 칭화방이란 칭화대학을 졸업한 동문을 지칭하는 말로 이과 계통이 많다.

왕치산이 태어난 곳은 산둥(山東)성 칭다오(靑島)시. 하지만 고향을 물어보면 부모의 고향을 대는 한국인처럼 중국인도 부모의 출신지인 조적(祖籍)으로 대답한다. 왕치산의 조적은 산시(山西)성의 톈전(天鎭)이다. 톈전은 산시성 북쪽 끝으로, 예부터 북방 민족의 침략을 막는 요새였다.

칭화대 출신 아닌데도 칭화방으로 분류

왕치산의 부친은 칭화대학 교수로 지식분자였다. 하지만 문화대혁명이 터지자 가족은 모두 베이징(北京)에서 멀리 떨어진 오지 산시(陝西)성 옌안(延安)으로 하방(下放)됐다. 여기서 부총리를 지낸 야오이린(姚依林) 일가를 알게 돼 그는 야오의 딸과 결혼했다. 장인이 고관대작인 덕택에 태자당이 된 셈이다.



왕치산은 하방 시절 산시성 시안(西安)에 자리한 시베이(西北)대학을 졸업했다. 하지만 후원자인 주룽지(朱鎔基) 총리의 배려로 칭화대학에서 경제학원 교수를 지낼 수 있었다. 게다가 장인도 칭화대학 출신이다 보니 그는 칭화대학을 나오지 않았음에도 칭화방으로 분류된다.

현재 4세대 지도자 중 권력서열이 각각 1, 2위인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과 우방궈(吳邦國)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상무위원장이 칭화대학 출신이며, 차기인 5세대 지도군 중 권력 1인자인 후 주석의 자리를 예약해놓은 시진핑(習近平) 국가부주석 내정자도 칭화대학을 졸업했다.

1971년 산시성 박물관 근무를 시작으로 역사와 인연을 맺은 왕치산은 73년 시베이대학에 들어가 역사를 전공했고, 졸업한 뒤에는 다시 산시성 박물관에서 79년까지 근무했다. 그리고 79년부터 82년까지 3년간 중국사회과학원 근대역사연구소에서 실습연구원으로 일했다. 역사 관련 업무만 12년간 한 셈이다.

그러나 장인의 후광으로 1982년 중국 공산당의 싱크탱크인 중앙서기처 농촌정책연구실에 들어가면서 농촌 전문가로 변신했다. 장인의 후원이 없었다면 공산당원도 아닌 그가 농촌정책연구실에 들어가는 것은 꿈도 꾸기 어렵다. 그는 이곳에서 근무하던 83년 2월에야 중국 공산당에 정식으로 가입했다. 그리고 88년 중국농촌신탁투자공사 총경리로 근무하면서 금융통으로 변신했고 중국인민건설은행 부행장, 중국인민은행 부행장, 중국인민건설은행장, 중국건설은행장을 역임했다.

왕치산은 ‘행운의 사나이’로도 불린다. 부모가 오지로 하방되는 바람에 정치권력을 가진 장인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2002년 11월 제4세대 지도부가 출범하면서 주룽지 총리는 그를 다이상룽(戴相龍) 인민은행장 후임에 임명하려 했다. 하지만 주 총리는 자신의 측근인 저우사오촨(周小川)을 미는 장쩌민(江澤民)에게 밀려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왕치산은 대신 중국의 남단 하이난(海南)성의 서기로 밀려났다. 하지만 다음a 해 초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인 사스(SARS)가 터지면서 그에게 행운이 찾아왔다.

사스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막 권좌에서 물러난 장 전 주석과 정권을 잡은 후 주석이 정치적 타격을 공유하기로 하면서 장 전 주석의 측근인 장원캉(張文康) 위생부장과 후 주석의 측근인 멍쉐농(孟學農) 베이징 시장이 한꺼번에 해임되고 그가 베이징 시장으로 임명된 것이다.

그러나 그가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은 장인과 주 전 총리의 후원이나 행운 때문만은 아니다. 중화권 매체들은 그가 착실할 뿐 아니라, 자신을 드러내놓고 자랑하기 싫어하며 서민들을 사랑하고 작은 일에도 빈틈이 없다고 평가한다. 또 허풍을 떨지 않고 실질을 중시하며 입담도 걸출하다고 한다.

금융위기·사스사태 극복 일등공신 ‘불 끄는 소방대장’ 명성

그는 ‘불 끄는 소방대장’으로 불린다. 금융위기가 아시아를 휩쓸어 중국 경제를 견인하는 광둥(廣東)성이 흔들릴 때 위기에서 구출했고, 베이징 시장으로 임명돼서는 사스로 하룻밤 사이 수백만명이 시내를 탈출하는 혼란을 차분하게 수습했다. 베이징 시장에 임명된 첫날 그는 “1은 1이고 2는 2다”라면서 “절대 사태를 축소하거나 은폐하지 말고 사실 그대로 보고하라”며 혼란의 근본이 사스 자체보다 당국에 대한 시민들의 불신에 있음을 강조했다. 이런 그에 대한 베이징 시민들의 신뢰는 여론조사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사스 사태가 진정된 2002년 말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왕치산은 베이징 시민들에게서 70.5%의 지지를 받았다.

그는 베이징의 골칫덩어리인 교통문제를 해결한 시장이기도 하다. 1200만명의 상주인구와 500만명의 유동인구가 함께 살아가는 베이징은 하루 교통인구가 836만명에 이른다. 따라서 2008년 8월 올림픽을 치러야 하는 베이징으로서는 교통문제 해결이 가장 큰 난제.

하지만 그는 2006년 11월 중국 정부가 48개 아프리카 정상급 인사를 초청해 ‘중국-아프리카 협력 포럼’을 열 때 시민들에게 지하철과 버스를 이용하라고 계도하는 방법으로 이 문제를 해결했다. 포럼이 열린 11월3~5일 베이징의 시내 교통은 어느 때보다도 한산했다. 조사결과 베이징의 300만 차량 중 90만 대가 운행을 멈추고 대중교통을 이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왕치산은 2008년 3월 전국대표대회에서 금융 담당 부총리로 임명될 예정이다. 경기 과열과 소비자물가 억제가 시급한 과제로 떠오른 지금 그가 또다시 ‘소방대장’으로서 임무를 톡톡히 해낼지 주목된다.

왕치산 프로필



·한족

·1948년 7월생

·산시(山西)성 톈전(天鎭) 출신

1969~1971년 산시(陝西)성 옌안(延安)현 핑좡(馮莊)공사 근무

1971~1973년 산시성 박물관 근무

1973~1976년 시베이(西北)대학 역사학과 수학

1976~1979년 산시성 박물관 근무

1979~1982년 중국사회과학원 근대역사연구소 실습연구원

1982~1986년 중앙서기처 농촌정책연구실 근무

국무원 농촌발전연구센터 처장, 부국장급 연구원, 연락실 부주임

1986~1988년 중앙서기처 농촌정책연구실 국장급 연구원

국무원 농촌발전연구센터 연락실 주임 겸 전국농촌개혁실험구 판공실 주임

국무원 농촌발전연구센터 발전연구소 대리소장, 소장

1988~1989년 중국 농촌신탁투자공사 총경리, 당서기

1989~1993년 중국인민건설은행 부행장, 당조(黨組) 성원

1992년 9~11월 중앙당교 성부급 간부 진수반 연수

1993~1994년 중국인민은행 부행장, 당조 성원

1994~1996년 중국인민건설은행 행장, 당조 서기

1996~1997년 중국건설은행 행장, 당조 서기

1997~1998년 광둥(廣東)성 당 위원회 상무위원

1998~2000년 광둥성 당 위원회 상무위원, 부성장

2000~2002년 국무원 경제체제개혁 판공실 주임, 당조 서기

2002~2003년 하이난(海南)성 당서기, 성 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주임

2003~2004년 베이징(北京)시 당 부서기, 대리시장

베이징올림픽조직위원회 집행주석, 당조 부서기

2004~2007년 베이징시 부서기, 시장, 베이징올림픽조직위원회 집행주석, 당조 부서기

2007~현재 중앙정치국 위원, 베이징올림픽조직위원회 집행주석, 당조 부서기

제15기 중앙위원회 후보위원

제16, 17기 중앙위원회 중앙위원

제17기 중앙정치국 위원




주간동아 618호 (p30~32)

하종대 동아일보 베이징 특파원 orion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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