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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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전후 질서 뒤흔드는 트럼프 월드

미국은 지금 내전 중…

트럼프 이민 규제 행정명령에 반발, 미국 한인사회도 유학  ·  취업 어려워질까 우려

  • 이승헌 동아일보 워싱턴 특파원 ddr@donga.com

    입력2017-02-03 16:2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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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한 지 한 달도 안 됐지만,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가 송두리째 뒤흔들리고 있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워 안보, 통상 분야에서 미국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겠다고 선언하더니, 급기야 이민자들이 세운 나라인 미국의 이민정책을 트럼프 식 쇄국정책으로 바꾸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1월 27일 이슬람 7개국 국민의 미국 비자 발급과 입국을 90일간 중단하고 모든 난민 수용을 120일간 멈추는 이른바 이민 규제 행정명령을 발동했다. 이란, 이라크, 시리아, 수단, 소말리아, 리비아, 예멘 등 테러위험국으로 분류된 나라의 여권을 소유한 이들 중 최소 375명이 미국 입국과 미국행 비행기 탑승이 금지됐고, 상당수가 공항에 억류되거나 아예 발길을 돌렸다.

    워싱턴과 뉴욕 같은 미국 주요 대도시 공항은 물론, 영국 런던 등 세계 주요 도시 공항에선 이번 조치에 항의하는 집회가 동시다발적으로 열려 글로벌 반(反)트럼프 운동으로 확산되고 있다. 1월 29일 워싱턴덜레스국제공항 입국장 앞에선 시위대 300여 명이 하루 종일 ‘노(NO) 트럼프’ ‘우리는 무슬림 이웃을 사랑한다’ 같은 구호를 외치며 행정명령 철회를 요구했다. 이라크에서 미군 통역사로 10여 년간 일하고 특별 이민 비자를 받아 27일 뉴욕 존 F 케네디 국제공항에 도착한 하미드 칼리드 다르위시 씨는 19시간 구금 끝에 미국시민자유연맹(ACLU)의 백악관 상대 소송 덕에 그다음 날 풀려났다. 그는 “내가 이 나라에서 무슨 일을 했기에 수갑을 채우는가. 이 손으로 수많은 미군과 일해왔다”며 눈물을 흘렸다.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이 일부 무슬림 국가에 대한 이민 제한을 넘어 백인 주도의 미국을 건설하고자 이민 규제의 폭을 더 넓히려 한다는 점이다.





    외국인 취업 비자 까다롭게

    미국 ‘블룸버그’가 입수한 행정명령 초안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는 전문직 취업 비자인 ‘H-1B’는 물론, 기업 주재원 비자인 ‘L-1’, 투자 이민 비자인 ‘E-2’, 문화 교류 비자인 ‘J-1’, 유학생이 취업을 위해 발급받는 ‘OPT(Optional Practical Training)’ 등을 개선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미국인을 많이 고용할 수 있도록 외국인 취업 비자를 줄이거나 발급 조건을 깐깐하게 바꾸겠다는 것이다. 특히 이는 한국 유학생이나 미국에 진출한 기업체 주재원에게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2015년 현재 미국이 신청을 받아 추첨으로 배정한 H-1B 비자는 8만5000개로 한국은 3000개가량을 배정받았다. E-2 비자 쿼터가 줄어들고 발급 조건이 까다로워지면 자녀 교육 또는 사업을 위해 미국으로 이주하는 투자 이민 기회도 줄어들 수 있다.

    벌써부터 미국 한인사회는 불안해하고 있다. 뉴욕주립대에 재학 중인 A(20·여)씨는 “학교 당국에서 ‘행정명령 대상 7개국 국적의 학생들은 정당한 학생 비자(F-1)가 있더라도 해외로 나가지 마라’는 안내 e메일을 전교생에게 보냈다. 유학생인 만큼 ‘나와 상관없는 일’이란 생각이 들지 않고 덩달아 불안하다”고 말했다. H-1B 비자 축소 소식은 이런 불안감에 절망감을 더하고 있다. 미국 유학생은 외국인이란 이유로 장학금이나 정부 지원 혜택을 거의 받지 못한다. 웬만한 주립대의 4년 학비도 10만~15만 달러(약 1억1700만~1억7550만 원)이고, 일부 명문 사립대는 25만~30만 달러에 이른다. 이렇게 많은 돈을 들여 공부했는데도 졸업 후 취업의 길이 더 좁아지게 된 셈이다.

    이번 조치로 미국은 트럼프 취임 2주일도 안 돼 정치적 내전 상황에 돌입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1월 30일 케빈 루이스 대변인을 통해 “시민이 모여 조직을 이루고 목소리를 내는 헌법적 권리를 행사한 것은 미국의 가치가 위태로워졌음을 보여준다”며 이민 규제 행정명령을 비판하는 성명을 냈다. 전직 대통령이 퇴임 직후 현직 대통령을 비난하는 것은 미국 현대사에서 매우 드문 일이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임명된 샐리 예이츠 법무장관 대행은 직원들에게 이민 규제 행정명령으로 인한 정부 상대의 소송을 변호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백악관으로부터 전격 해임됐다. 하지만 국무부 소속 외교관들은 이번 행정명령에 반대하는 연판장을 돌리고 있으며, 지금까지 1000명 이상이 이 문서에 서명했다. 외교관들은 연판장에서 “제2차 세계대전 기간에 일본계 미국인을 억류했던 최악의 시절로 되돌아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숀 스파이서 백악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행정명령에 반대하는 외교관들은 균형을 잃었다. 따르든지, (싫다면) 나가든지 하라”고 경고했다.



    트럼프는 왜 이민 규제에 집착할까

    여기에 이민자 출신 기술자가 많은 실리콘밸리도 집단 반발하고 있다. 구글 공동창업자 중 한 명인 세르게이 브린은 1월 29일 샌프란시스코국제공항에서 열린 반대집회에 참석해 “나도 옛 소련의 열악한 환경을 피해 부모를 따라 6세 때 미국으로 건너온 난민 출신”이라며 부당성을 지적했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자도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민 규제 행정명령에 우려를 표명했다. 저커버그는 평소 자신의 증조부모가 독일, 오스트리아, 폴란드 등에서 살다 미국으로 건너왔고 중국계인 부인 프리실라 챈의 부모도 중국과 베트남 출신 난민이라고 밝혀왔다.

    트럼프 대통령과 상대적으로 가까웠던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도 “이번 조치는 미국이 처한 어려움에 대항하는 방법으로 적절치 않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렇게 미국은 물론, 전 세계의 비판을 감수하면서까지 이민 규제 행정명령을 밀어붙이는 이유는 뭘까. 트럼프 대통령은 2월 1일 자신의 트위터에 “이번 조치를 입국 금지라고 부르든 말든 마음대로 해라. 중요한 것은 미국의 안전”이라고 주장했다.

    그만큼 이번 행정명령이 미국인의 안전과 일자리를 최우선으로 여기는 ‘미국 우선주의’ 기조의 핵심적 조치라는 얘기다. 트럼프 대통령은 1월 29일 논란이 확산되자 개인 성명을 내고 “이번 조치는 무슬림 입국 금지도, 종교에 관한 것도 아니다. 기성 언론은 알면서도 말하지 않지만, 이는 테러로부터 미국을 안전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못 박았다.

    여기에는 미국 내 보수성향의 기독교 세력을 결집해 국정운영의 동력으로 삼으려는 정치적 목적이 깔려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대통령선거에서 보수적인 기독교 복음주의 유권자의 81%로부터 지지를 받아 미 남부 지역과 일부 중서부 지역을 석권했다. 트럼프는 많은 미국인이 교회에 가는 일요일인 1월 29일 자신의 트위터에 “수많은 기독교인이 중동 지역에서 처형당하고 있다. 이런 끔찍한 일이 계속되도록 할 수 없다”며 종교적 메시지를 던지기도 했다.

    실제로 1월 30일 보수성향의 여론조사 전문기관 라스무센리포츠의 조사에선 미 유권자의 57%가 이민 규제 행정명령에 찬성한다고 응답했다. ‘샤이 트럼프’(Shy Trump·숨어 있는 트럼프 지지자들) 성향의 미국인이 적잖다는 것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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