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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건우, 단 7일 베토벤 소나타 전곡 연주

  • 유혁준 음악평론가

백건우, 단 7일 베토벤 소나타 전곡 연주

백건우, 단 7일 베토벤 소나타 전곡 연주
흔히 바흐와 베토벤의 건반악기 음악을 구약성서와 신약성서로 비유한다. 바흐가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으로 태초의 혼돈에서 세상을 창조했다면, 베토벤은 32개의 피아노 소나타로 신약에서 예수가 그랬던 것처럼 인간구원의 메시지를 던지며 완결을 보았기 때문이다.

피아노 소나타는 교향곡, 현악 4중주와 함께 베토벤이 평생을 두고 천착한 분야였다. 그래서 그 속에는 인간 베토벤의 모든 역정이 담겨 피아노 음악의 역사 자체라 할 만하다. 때로는 상쾌한 자연에서 시정(詩情)에 젖기도 하고, 때로는 삶에 지쳐 허덕이다 마침내 달관의 경지에 도달하게 된다.

특히 1815년 이후의 후기 소나타는 그야말로 머나먼 피안의 세계로 들어가는 관문으로 형이상학적인 세계랄 수 있다. 이미 ‘고난을 뚫고 환희에 도달한(Durch Leiden zu Freude)’ 자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무념무상(無念無想)의 영적인 깊이는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다. 그래서 20세기의 위대한 피아니스트들은 베토벤 소나타 전곡의 장정을 떠나면서 더불어 자신의 삶을 완성하곤 했다. 러시아의 여성 피아니스트 타티아나 니콜라예바는 생전에 베토벤 소나타 전곡 연주회만 40차례 열었을 정도이며, 1983년에는 한 달 만에 전곡을 완주해 세계 음악계를 놀라게 했다.

피아니스트 백건우가 베토벤에 도전한다. 이미 2005년부터 세계무대에서 베토벤을 연주해온 백건우는 그 마지막 대장정을 고국에서 마무리한다. 12월8일부터 14일까지 단 7일! 이처럼 짧은 기간에 어느 거장 피아니스트도 해내지 못한 대역사를 마무리하게 된다.

백건우가 연주하는 베토벤을 듣기 위해 연말 황금 같은 저녁시간을 반납한 ‘베토벤 클럽’ 회원 800명은 8회 콘서트 전부를 보는 시리즈 티켓을 지난 1월 일찌감치 손에 쥐었다. 백건우의 베토벤 리사이틀은 올해 국내 공연계 최고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26세에 라벨 전곡 연주회로 포문을 연 백건우는 드뷔시, 무소르그스키, 스크랴빈 등 특정 작곡가 집중탐구라는 힘든 노정을 거쳐왔다. 프랑스 파리 동남쪽 뱅센숲 근처의 아파트에서 28년째 살고 있는 백건우는 피아노와 음악 외에는 일체의 세속적 여흥을 배제하며 구도자처럼 살고 있다. 12월14일 저녁 8시 마지막 콘서트의 끝 작품은 역시 베토벤 최후의 피아노곡인 작품번호 111의 C단조 소나타다. 천국으로 가는 계단을 연상케 하는 2악장 후반부의 피안의 세계를 백건우는 어떻게 표현할까.

백건우, 단 7일 베토벤 소나타 전곡 연주
2000년 백건우는 세계 굴지의 음반사 데카와 손잡은 후 첫 결실로 바흐-부조니 작품집과 이듬해 포레의 소품을 녹음해 찬사를 받았다. 그리고 3년 전부터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녹음에 들어가 마침내 이달 ‘후기 소나타’를 마지막으로 완결을 보았다.

나이 60줄에 들어선 백건우가 풀어내는 베토벤은 콘서트에서 보여줬던 열정이 더욱 정제된 느낌이다. 작품 109 도입부 연주에선 마치 그가 노래하는 듯한데, 이는 그가 한국인의 감성으로 베토벤을 이해하고 있음을 입증한다. 최후의 소나타는 백건우의 모든 면을 담고 있는 대서사시다. 치달아가는 그의 격정은 이내 불꽃으로 화해 해탈의 경지에서 멈춘다. 숱한 거장들이 남긴 베토벤 음반목록에 반드시 추가돼야 할 결정판이다. (DECCA DD7120)



주간동아 615호 (p81~81)

유혁준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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